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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준호 Jun 21. 2020

아내는 컨덕터

아내는 화단 심포니 지휘자

봄꽃이 한창이다.
 길을 걸어도 자동차를 운전해도 지천에 만발한 봄꽃들로 눈이 호강하고 마음 또한 상쾌해지는 계절이다.
 
 텃밭 주택에는 집 주변과 울타리 앞쪽에 화단을 조성했다. 아내는 텃밭에 이어 정원 가꾸기에 팔을 걷어 붙였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겨우내 꽃씨들을 파종하여 발아시키고, 화단을 어떻게 꾸밀 것인지를 구상하여 조감도까지 그려가며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불어대는 이른 봄부터 조금 이르다 싶었음에도 부지런을 떨며 화단에 나가 봄을 깨우기 시작했다.
 
 포트에서 발아하여 자란 꽃모종을 화단 이곳저곳에 이식하고, 꽃시장을 돌며 마음에 드는 온갖 꽃모종을 사다 심으며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디기탈리스, 로베리아. 가자미아, 샤피니어, 아스타, 란타나, 핫립세이지, 가우라, 우단동자, 패랭이, 매리골드, 데모르포세카, 너도부츠, 잉글리시데이지, 리빙스턴데이지, 백묘국, 금낭화, 운간초, 사계소국, 목단, 마가렛, 크로커스, 캄파룰라... 이름을 부르기에만도 벅찬 다양한 꽃들이 수없이 심어졌다.
 
 분홍색 앵초는 항아리 옆에 심고, 백리향은 단풍나무 아래에 넓게 심어졌다. 알리섬은 울타리 가까이에 심고, 돌단풍은 큰 화분 아래 받침돌 옆에 자리했다. 올 봄에 산에서 분양해온 여리디 여린 노루귀는 작은 돌 아래 그늘지게 심고, 시골 고향집 터에서 가져온 앙증맞은 봄맞이 꽃은 보리수 나무 아래에 조심스레 심었다.
 
 지난 여름 발트3국 여행 중에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에서 꽃씨를 채집해 온 '비덴스'는 발아시켜 데크 앞에 심고, 서울 꽃시장에서 구해온 잉글리시데이지는 작은 화분에 심어 항아리 위에 올려졌다. 로베리아는 번식한 꽃송이가 솜사탕처럼 풍성해지도록 키우겠다고 큰 화분에 심는다.
 
 무성한 붉은 잎을 자랑하는 휴케라는 어디에 심을까.
 가고소앵초는 어느 꽃과 같이 있을 때 어울릴까.
 말발돌이는 화단 맨 앞쪽에 심었다. 고놈의 화려한 자태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아내는 교향악단의 지휘자처럼 움직인다. 아내의 손놀림에 따라 꽃들은 화단의 이곳 저곳으로 하나씩 자기 자리를 찾아가면서 멋진 앙상블이 태동할 준비를 한다. 악기들이 저마다의 음색으로 강한 수련을 거친 후 천상의 화음을 이루어 내듯 아내에게 선택된 많은 꽃들은 정성어린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서 꽃을 피워 각자의 자태를 뽑내며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게 될 것이다.
 
 매일 물주고, 
 풀 뽑아 주고, 
 기온이 내려가면 덮어주고, 
 햇살이 강하면 그늘을 만들어 준다.
 
 이렇게 애지중지 사랑을 듬뿍 전해 받은 화단 속 식물들이 요즈음 서서히 기지개를 켠다.
 
 겨울을 지낸 옥잠화가 땅을 비집고 올라와 살포시 고개를 내민다. 백합도 죽순처럼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었다. 성질급한 야생화는 추위에도 아랑곳 없이 맨먼저 꽃을 피웠다. 알록제비꽃은 가느다란 줄기에 하얀 꽃잎을 매달고 무게를 못이겨 기우뚱거린다. 백리향은 푹신한 이불처럼 넓게 펼쳐져 마치 수를 놓은 비단 이불 같다.
 
 빨간 꽃잔디는 울타리를 뒤덮었고 빨간 철쭉 또한 무성하게 피어 강렬한 꽃색깔에 눈이 부시다. 리빙스턴데이지는 밤새 꽃잎을 덮었다가 햇빛을 받으면 활짝 열어 젖힌다. 라일락 꽃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진한 향기를 뿜어내고 자색 매발톱은 여러개의 봉오리가 경쟁하듯 피어났다. 핑크빛 라벤더는 가녀린 꽃봉오리가 작은 바람에도 살랑살랑 흔들린다.
 
 설란은 솜털 달린 줄기 사이로 빨간 꽃잎을 달고 몇주째 미동도 않는다. 촉감이 마치 종이를 만지듯 느껴지는 종이꽃도 화분 가득 풍성하게 피었다.
 
 제법 몸통이 굵은 모과나무에도 붉은색 꽃이 피었다. 체리나무에도 배꽃마냥 하얀 꽃이 가득 피었고, 블루베리에도 작은 종모양의 독특한 꽃봉오리가 덕지덕지 달렸다. 꽃샘 추위로 실패를 거듭한 끝에 세번째 분양해 온 천사의 나팔은 이제야 몸을 곧추 세웠고, 연약한 클레마티스는 만들어준 지지대를 감아 타고 잘도 오른다. 겨울을 이겨낸 인동초 또한 제법 굵어진 줄기로 데크로 기어 오른다.
 
 각양각색의 꽃들이 하나둘 피어나면서 저마다의 자태를 뽑내며 우리집 화단 속이 제법 시끄러워졌다. 아내가 지휘하는 화단의 앙상블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과연 영혼이 담긴 최고조의 앙상블이 화려하게 펼쳐질 날은 언제쯤일까 그 개막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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