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동맥 의심.
순간 눈을 껌뻑였다. 눈이 조금 침침해진 것일까?
근래 몸이 피곤해서 글을 잘못 읽은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내 눈 앞에 하얀 종이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다.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종합 건강건진을 한 달 전에 받았었다.
이미 여러 차례 종합 검진을 해본 경험이 있는 나는 기존에 받지 않았던 MRA(뇌혈관을 보는 검사)를 선택해서 검사받았다. 두통도 별로 없이 살았지만 단순히 어쩌다 그냥 선택해서 받은 검사였다.
그리고 그 검사의 결과로 내가 받은 종합 건강검진 결과 보고서에는 뇌동맥 의심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의학적 지식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당황스럽지만 단순히 생각하기로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그저 단순히 의심일 뿐이니 아직 내가 엄청난 질병에 걸린 것은 아니야. 큰 병이라면 이렇게 대충 한 줄 적어놓지 않았겠지.
그러나 그런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잠시 후 검진을 받은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상이라서 자세한 얘기는 드릴 수 없지만
꼭 병원에 오셔서 설명을 들으시고 관련 자료를 받아서 3차 병원으로 가셔야 합니다.
검진 결과를 자세히 보니 3차 병원에 가야 한다는 안내와 뇌동맥 관련하여 부풀어 오른 구멍 같은 것의 크기도 적혀 있었다. 뇌동맥류?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발생하기 전에는 증상이 없다가 일단 터지면 뇌출혈로 이어져 치사율이 굉장히 높은 위험한 병이다.
뇌출혈. 알고 있다. 처음 다닌 회사에 동료가 뇌출혈로 불시에 저 세상으로 떠났다.
나의 의식 속 터널 깊은 곳에서 꾸물꾸물 무엇인가가 올라오기 시작한다.
살면서 제일 두렵다고 생각했지만 어떠한 준비도 할 수 없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제일 마음 편하다고 생각한 것. 의식하지 않고 잊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죽음이란 두 글자가 너무 빨리 내 앞으로 오고 있는 것만 같다.
그 날 이후 아내에게 알리고, 종종 머릿속에 폭탄이 있다는 농담을 했다.
바쁜 연말이라서 2주 정도 지나고 나서야 검진받은 병원으로 가서 MRA 영상 자료를 받아서 갖고 왔다.
그리고 또다시 2주 후로 근처 대학 병원에 뇌신경 쪽으로 진료 예약을 잡아 놓았다.
조급해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터질 뇌출혈이라면 너무 오랜 시간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면 터질 것이고
그렇게 죽는다면 그렇게 죽는 것이 슬프지만 나의 운명일 것이다.
3차 병원에 아직 가기 전이라서, 가봐야 자세한 이야기를 듣겠지만 마음이 심란하다.
술자리에서만 가끔 피던 담배도 아예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혈압 관리를 위해 몸무게도 줄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조급해하지 않으려 했지만 마음은 매우 초조하다.
병원에서 생각보다 낙관적인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희망을 갖고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나올 수 있기에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