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에 하루 더 있을까 했지만 점점 드는 익숙함이 싫었다. 그래서 아기자기한 동화마을로 알려진 체스키 크룸로프로 떠나기로 했다. 사실 이곳은 프라하보다 더 매력을 느끼고,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다. 보통은 당일치기로 놀러 온다고 하지만, 반나절만 보고 올 도시가 어디 있겠느냐? 집에 돌아갈 기약도 없어 모든 것이 넉넉했고 풍요로운 나에게는 그냥 바로 짐 싸서 출발했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터미널 역으로 가니, 지하에 버스표 판매하는 창구가 있었다. 버스표를 구입하고, 근처 조금 떨어진 곳에 피자집을 찾아갔다. 그 프라하 도심과는 달리 이곳은 여행자의 흔적이 없는 한적한 가게였다. 만약에 단체여행을 왔었더라면, 쉽게 올 수 없을 곳이라 생각하니, 작은 피자가게에서도 혼자 여행하는 기쁨을 느끼며 버스 도착시간을 기다렸다.
내가 유럽에 있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건 아마 버스 시설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요새 들어 프리미엄 고속버스라고 TV가 설치되어있는 둥 생색을 내지만, 그때 내가 탄 크룸로프행 버스에는 승무원도 있고, 화장실에 좌석마다 디스플레이가 설치되어있으면서 가격까지 저렴했다. 웬만한 저가항공 비행기보다 나았다.
버스를 타고 밖을 보니 사람에 치여 복잡했던 프라하와는 달리 푸른 잔디밭으로 지평선을 그릴 수 있는 아주 평화로운 곳이었다. 띄엄띄엄 보이는 허름한 집과 조그만 마을과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저 친구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하며 궁금해지기도 하고, '저기서는 뭐해먹고살까?' 하는 아직 한국물이 덜 빠진 생각도 하면서 버스 안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12월 초겨울이라 그런가? 그 버스 안에 체스키 크룸로프로 가는 여행객은 나밖에 없었다. 여러 곳을 경유하다가 어두운 밤이 돼서야 나는 도착할 수 있었다. 블타바 강 다리 바로 옆에 호스텔을 찾았고 들어가니 그곳에서도 역시 나 혼자였다. 호스텔 매니저는 나한테 럭키가이라고 했지만, 사실 조금 무서워서, 괜히 밤에 나와 근처의 펍에서 맥주 한잔을 했다.
새벽에 일어나니 내가 무서워했던 것을 놀리기라도 하는 듯, 블타바 강 위로 올라온 안개들과 밤에는 보이지 않았던 아름다운 건물들이 내 눈을 맑게 해주었다. 얼른 옷을 갈아입고, 체스키 성 타워에 올라가 마을을 보니 하회마을처럼 블타바 강이 마을을 감싸듯 흐르고 있고, 마을 지붕은 온통 붉은색으로 색칠되어 있었다.
이발사의 다리를 건너 마을광장 쪽으로 가보니, 프라하만큼은 아니지만 이곳에서도 크리스마스 마켓을 하고 있었다. 나는 Punc라고 하는 체코 럼주 차를 마시면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겼다.
사실 체스키 크룸로프는 워낙 작은 마을이다 보니 일반적인 구경은 반나절만으로도 충분했다. 쇼핑을 하기에는 전부 짐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안될 것 같고, 레스토랑에서 뭘 먹기에는 이미 맥주로 배를 가득 채웠다. 뭘 할까 고민하다 마침 모스크바에서 만난 폴리나가 써준 주소가 생각이 났고, 체코를 떠나기 전 편지를 보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편지를 쓰려면 우선 편지지랑 봉투가 필요했고, 그걸 살 문방구를 찾아다녔다. 다행히 골목 어귀에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동네 문방구가 있었다. 영어도 안 되는 주인과 나는, 몸짓 발짓으로 겨우 편지봉투를 샀다. 그리고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 펜을 빌리고 편지를 적었다. 며칠 전 잠깐 본 친구에게 편지를 쓰는 것, 내용보다는 이 행동 자체가 큰 의미가 있었다. 그렇게 오랜 고민을 하며 짧은 편지를 쓰고, 어제 프라하 사진관에서 인화한 사진들을몇 장 넣어 동봉했다.
다음날, 나는 다시 떠날 채비를 하고, 크룸로프의 조그만 우체국으로 갔다. 군대 이후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 적은 없었는데, 이 순간이 신기하면서 즐거웠다. 나는 이 여행의 즐거움이 함께 전달되기를 바라며, 편지를 우체국에 주고, 다음 여행지를 향해 떠났다.
작고 예쁜마을 체스키 크룸로프_photo by Gabriel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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