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만난 사람들

by 이관민

#7. 13명

6박 7일간 횡단 열차를 타면서 내 열차 방에 머물렀던 사람들 수다. 횡단 열차에 탑승하는 사람들의 이유도 제각각이다. 사업상, 가족들을 만나러 등등 각자의 이유로 이 열차를 탄다. 여행의 목적으로 탄 사람은 나를 포함해 단 2명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열차 안의 사람들을 보는 것보다 그 사람들이 나를 보는 게 더 신기했을 것이다.

유럽 근대의 기차역을 연상 시키는 듯한 발레지노역

여행 전 생각한 러시아 사람들의 이미지는 시베리아의 날씨처럼 무겁고, 차가웠지만 열차를 타고 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가 생각한 것이 큰 편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준비해간 짧은 러시아어로 열차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면, 당장 큰 웃음으로 답해주지는 않지만, 다음에 복도에서 또 만날 때에는 내 인사를 기다린다는 제스처도 취하고, 조그만 먹을거리도 챙겨줬다.


한 번은 기차가 정차해 있을 때 잠깐 뛰어가서 카드를 사온적이 있다. 내가 카드를 만지작 거리니까 자기가 러시아에서 하는 카드 게임을 알려주겠다면서 이래 저래 가르쳐주었다.(물론 지금은 기억도 안 나지만...) 이렇게 사소한 것들로 나는 러시아 친구들과 마음을 열었다.


#8. 모스크바 행 친구

수없이 바뀌었던 사람들 중에서 첫 번째 모스크바행 친구는 생각보다 일찍 만났다. 셋째 날 치타 역에서 한 남자가 탔는데, 190 정도 되는 키와 거대한 체격, 매서운 눈... 그냥 막연히 생각했던 러시아 남자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다행히 짧은 영어가 되어 이야기를 나눠보았는데, 그 친구 이름은 알렉산드르. 횡단 열차를 운행하는 기관사였다. 며칠 휴가를 내 모스크바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술이 떠나지 않는 알렉산드르와 나

다음날 새벽, 바이칼 호수를 지나 이르쿠츠역에 도착했을 때, 열차 승무원은 나보고 "프렌즈, 프렌즈~" 하면서 친구가 왔다고 나에게 이야기를 했다. 나는 무슨 말인가 하고 있었는데, 이전에 봤던 외국인과는 다른 느낌의 외국인이 탔다. 그 친구 이름은 마크, 영국인이었다. 나와 같은 횡단 열차 여행을 하는 친구로 그 친구는 베이징부터 시작해 몽골, 바이칼 호수를 지나 상트페데스부르크 까지 여행 계획을 세워논 친구였다. 마크와 친해지기는 어렵지 않았다. 나는 앞으로 영국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고, 평소에 영국 축구, 뮤지컬, 음악, 문화 등등을 좋아했던 나로서는 대화거리가 많았다.

마크와 나눠가진 알룐까 초콜렛

#9. 술과 음악은 만인의 연결다리

서먹한 사이에서 친해지게 만드는 계기는 역시 술이다. 셋다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이라 차이점도 많지만, 공통적으로 술을 너무 사랑했다. (참고로 열차 내 음주는 금지다. 하지만,) 우리 방에는 항상 보드카가 있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면서, 러시아 술을 못 마시지 않을까 걱정을 했었는데, 만난 첫날부터 마크는 주섬주섬 짐을 뒤지더니 조심스럽게 바이칼 보드카를 꺼내 들었다. 한참 침묵을 지키던 알렉산드르도 마크의 보드카를 짚어 유심히 살피면서 연신 굿~굿~ 을 외쳤다. (이 친구 술 제대로 샀다는 말일 것이다.)

시베리아의 가을(..?)풍경

평소에는 문을 열어놓지만, 술을 마실 때가 되니 방 문을 잠그고, 각자의 컵에 따라 보드카를 마셨다. 한잔씩 마실 때마다 각자의 언어로 건배를 외쳤고, 창밖에 보이는 설경이 안주를 대신했다. 대화는 어떻게 했을까? 마크와는 영어로, 알렉산드르와는 그림으로, 대화가 안될 때는 마크가 영어로 풀이를 해주면서 의사소통을 했다지만, 사실 뭐 눈빛 손짓 발짓으로도 다 통했다.


한 번은 술을 마시다 내가 하나 제안을 했는데, 서로 돌아가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려주는 것이다. 열차 칸 안에서 러시아, 영국, 한국의 음악이 번갈아 나오는데, 가사의 언어는 다르지만 멜로디만으로도 서로의 노래를 이해하고 하나되었다. 뿐만 아니라 마크는 자신이 영국에 있을 때 작사, 작곡한 노래를 틀어주고, 나는 미처 가져가지 못한 기타 대신 들고 온 하모니카로 한 소절 뽑고, 알렉산드르는 러시아에서 유명한 섹시 여가수 뮤직비디오를 보여주면서, 아마 전 열차에서 우리 칸이 가장 신나고 열광적이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10. 열차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며

이렇게 흥겹게 가다 보니 어느새 열차는 시베리아의 끝자락 우랄산맥을 건너가고 있었고, 열차는 종착지가 머지않았다. 아쉬웠다. 여기서 나는 이전엔 볼 수 없었던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외국인이라면 말도 못 걸고 피해 다녔던 내가 이들과 대화하고, 웃고 하는 것이 너무 자연스러워졌다. 어쩌면 혼자 가는 여행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최후의 만찬으로 기차 기내식을 시켜 먹었다. 엄청 비쌌다.

그리고 갇힌 공간에서 같이 생활하는 것이 정말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그렇게 특별한 일이 생긴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지는 않았다. 계속 이곳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그들의 삶도 느끼고, 생각 행동 식습관 등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 자리였다.


많은 사람들이 못해본 경험을 내가 했다는 것이 굉장히 자랑스러웠다. 이번 내 여행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은 동유럽 여행의 일부분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여러 부분으로 나눠야 될 만큼 큰 여행이었다.

지구의 1/4를 돌아보는 시베리안 횡단열차. 나는 그 여행을 마치고 모스크바에 도착을 했다.
2015.11.28

마크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Life on a train

혼자가는 여행 영상

#1 여행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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