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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관민 Sep 13. 2019

공공기관에서 문화를 한다는 것

건방진 3년차 문화기획자 회고록

3년 전 여름.

땀을 삐질 흘리면서도 정장을 입고, 백팩을 메고 매일 남들보다 빨리 출근해서 하루를 시작했었는데, 지금은 청바지가 일상에 책 한 권 넣을 수 있는 크로스백을 매고 9시 가까스로 맞춰 하루를 시작한다. 미친 듯이 야근하면서 일의 끝을 찾아보려 노력했지만, 일의 끝은 내가 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일의 끝 기준이 누구에게도 눈치가 보이지 않음을 느꼈을 때, '아 조금 달라지긴 했구나' 하면서 스스로 뿌듯해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공공기관에서 문화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각 공공기관마다 기관 설립의 목적에 근거해서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는데, 그런 목적사업을 문화로 풀어내는 기관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저 일회적인 PR전략으로 문화를 사용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그것마저 드물다. 어쩌면, 문화기획의 직무로 공공기관을 다닌다는 사람은 아마 손에 꼽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나는 우표와 편지 쓰기를 장려하기 위해 많은 문화활동을 기획하고 운영을 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곳을 찾아가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에게 소박하면서 따뜻한 웃음을 만들어주고, 또 그 모습을 담아 수많은 곳에 전파하고, 이를 바탕으로 삼아 또 다른 캠페인을 추진한다. 문화기획 업무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패턴이다. 결국 매출 상승보다는 이미지 제고에 초점이 맞춰진 업무다.





그래서 성과가 뭔데? (feat. 경평)

라고 기획 과정에서 물어봤을 때 얘기한 대답이 그 프로젝트 추진의 유무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일이야 마찬가지겠지만, 돈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라면 모를까. 무형의 무엇을 얻게 되는 걸 설득하는 과정은 너무나 힘들다. 사례로 지금 온기 제작소와 함께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우리 CSR 활동이 어린이 청소년에 집중되어 있다. 우리가 경평에서 대상 확대에 대한 노력을 어필하기 위해서는 꼭 해야 한다' 혹은 다른 기관과 협업해서 진행한 청소년 참여 프로젝트에서는 '여기랑 협업해서 진행하면, 효과성 분석 등 환류 조사 결과를 받을 수 있다. 경평에서 우리 문화사업의 효과성을 보여주는데, 큰 도움이 된다.', 기업과 MOU를 맺고 추진하는 프로젝트에는 '이렇게 네임벨류 있는 기업과 MOU는 어렵다. 경평에서 강조할 수 있다.' 등등 나는 보통 경평과 직결되는 방향으로 열심히 어필 중에 있다.





하얗게 보이게 만들기

위에서 설명한 문화기획 업무를 보면 사람들이 볼 때 그저... 바라는 것 없이... 한없이... 긍정적으로 보이게 하는 업무이다. 하얀 도화지처럼. 그런 내 업무를 기관 홍보를 통해 접한 다른 사업실 직원들 중에는 사람들에게 쓴소리도 듣지 않는 편한 직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돈도 벌어오지는 못하고 쓰기만 하는 직무라면서 돈 벌어 오는걸 아주 감사하게 생각하길 바라는 사람들도 있다. 부러움 반, 자부심 반인 말들이겠지 하며 넘긴다.  확실히 얘기하지만, 어디까지나 하얗게 보이게 하는 업무이다. 담당자가 월급을 받고 일하는 이상 어떤 업무에도 완벽히 하얀도화지는 없다고 생각한다. 담당자가 어떻게든 하얗게 보이려고 빈틈을 메우는 것뿐이지.



공공기관에서 문화를 한다는 것

나는 문화사업 프리랜서나 대행사의 기획자가 아니기 때문에, 단일 프로젝트의 실행단계보다는 전반적인 사업기획, 성과, 환류 단계에 대한 고민과 생각이 많은것 같다. 나는 마지막으로 내 직무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고 싶다. 다른 사업들과는 달리 문화는 애초에 답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답을 찾거나 만들어내서 (내부에서나 외부에서나)공감을 받게 해야 하는 것이 이 직무 인것 같다.


공공기관에서 문화를 하는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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