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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관민 Aug 02. 2022

편지가 가지는 문화적 가치

 마음을 담은 편지 한 장은 쓰는 이, 받는 이로 하여금 큰 힘이 되어준다. 편지 속에는 사랑, 축하, 응원, 감사, 화해와 같이 전하고자 하는 마음을 오롯이 담아내고,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편지는 우리 삶에 있어 가장 따뜻한 소통수단이라 생각한다.      


 필자는 우표와 편지를 기반한 문화를 뜻하는 우정문화의 문화기획자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편지의 따뜻함을 전해주고 있다. 편지는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콘텐츠로 다양한 문화사업에 활용되고 있다. 가볍게는 전국에 설치된 느린우체통 캠페인부터 위기가정·아동·청소년들의 심리정서지원 프로그램, 그리고 초등생부터 다문화, 문해교실 노인까지 이르는 교육프로그램까지 오늘날 편지가 공공문화사업으로서 갖는 역할은 크다.     




 과거 편지는 정보를 전달하는 서신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통신의 발달로 편지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인 정보전달을 할 수 있는 도구들이 많아졌고, 일상에서 보편화되었다. 20년 전에 비해 일반통상 우편물량도 46.8% 감소했고, 우리 주변에 항상 있을 것 같았던 빨간 우체통은 20년 전에 비해 73.5% 감소해, 지금은 전국에 1만여 개 만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주변에는 항상 편지가 있다. 서점이나 굿즈샵 한켠에는 엽서나 카드가 비치되어 사람들의 손을 거쳐간다. 전국의 관광지에는 느리게 가는 우체통이 있고, 교육부 국어과 교육과정에서는 편지쓰기를 쓰기 성취기준의 도달 방법으로 제시하면서, 학교에서는 편지쓰기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최근 코로나19로 보편화된 비대면 화상 시스템, 그리고 SNS, 문자, 전화 등 디지털 소통 도구들은 무수히 많이 생기고, 끊임없이 발전해왔지만, 역설적으로 뉴스에서는, 소통 부재에 따른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이 야기된다는 소식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특히 SNS의 일상화는 정보와 콘텐츠의 제한 없는 향유 등 긍정적인 역할도 하고 있지만, 되려 우리 사회에 대립과 갈등을 고조시키기도 하고, SNS 중독과 같은 과도한 SNS의 사용으로 사람 간 관계에 있어 피로함을 느끼는 등 사회적 역기능도 함께 가져왔다.    

 



 오늘날 편지는 통신의 역할에서 우리 사회에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로 확장 중이다. 최근 한국우편사업진흥원에서 발표한 우정문화 가치 조사보고서에는, 편지쓰기의 문화적 가치를 크게 소통, 치유, 교육적 가치로 나누어 정의하였고, 각각의 가치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를 시행하였다. 조사 결과 평가 항목 전반적으로 매우 긍정적이었다. 특히 ‘청소년 학습에 있어서 도움이 된다’는 교육적 부문, ‘편지가 단순한 메시지 전달보다 더 큰 의미를 전달한다’는 소통 가치 부문, ‘정서·감수성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치유적 가치 부문의 문항들이 97% 이상의 높은 동의도를 보이는 등 편지쓰기 활동이 공공의 이익이 제반되는 문화활동으로 인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소통”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이슈가 되었다. 우리 앞에 직면한 사회문제 중 청년·노인 고독사, 코로나블루, 대립 등 여러 키워드에서 공통점은 “소통부재”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회현상에서 편지는 사람 간 마음의 격차를 좁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2020년 코로나19로 큰 혼란을 가져온 첫 해, 불특정한 비난과 의심 속에서도 의료진 혹은 소상공인 등 우리 주변 이웃들에게 작은 손편지와 따뜻한 말 한마디로 우리 마음을 잠시나마 흐뭇하게 했던 뉴스, 다들 한 번씩을 보았을 것이다. 손편지가 응원문화의 하나로서 우리 사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그 해처럼, 편지의 소통은 우리 사회 온정을 널리 확산시킬 힘이 있다.     

 편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상대를 생각하는 시간, 머릿속 하고 싶은 말을 손을 통해 쓰이는 시간, 상대에게 전해지는 시간. 이 모든 과정을 인내해야 편지가 되기 때문이다. 편지가 우리의 진심을 담을 수 있는 이유도, 단순히 글씨체, 글솜씨, 글의 분량으로는 평가할 수 없는 시간과 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몇 해 전 경주에 한 노인 문해교실에서 편지쓰기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생전 처음으로...” “태어나 처음으로...”할머니들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소중한 사람을 위해 이렇게 첫 글자를 띄웠다. 

... 요즘에 다른 사람들은 흔하게 말을 하든데 
나는 한번도 안해봤지만 지금 한번 말할게요. 
여보 사랑합니다. 빨리 나으세요. 
안내(아내) 000 올림”


삐뚤빼뚤한 글씨로 소소한 말 한마디 담은 편지 한 장이 그렇게 무겁게 느껴졌던 건 처음이었다. 아마도 7~90년 일평생 말로 못했던 표현을 그 편지 한 장에 가득 담아보려는 할머니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라 생각이 들었다.     




 편지 한 장을 통해 쓰는 이와 받는 이 모두가 치유와 위안을 얻을 수도 있다. 삼청동 거리, 덕수궁 돌담길 등등 서울 곳곳을 걷다 보면 노란색 우체통이 보인다. 사람들의 고민을 손편지로 답장을 해주는 온기우편함이다. 2017년 10명 이내의 봉사자들이 함께 시작했던 고민답장 편지는 어느덧 300여 명이 넘는 편지 봉사자들이 온기우체부라는 이름으로 매년 우리가 가진 수천 가지의 고민을 함께 들어주고 위로해주고 있다. 꾸준히 늘어나는 고민과 답장을 해주는 온기우체부들을 보며, 우리가 일상 속에서 위로가 얼마나 필요했는지, 그리고 그 수단이 편지라는 점이 우리 사회에 아직 편지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편지는 다른 문학 장르와는 달리 분명한 형식이 있다. 대상-첫인사-하고싶은 말-끝인사-날짜로 이어진다. 이는 편지가 단순히 감정만 드러내는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상대에게 전하고자 하는 감정을 논리적으로 전하는 글이다. 편지쓰기는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작문 활동이며, 대인관계 형성, 자기표현의 중요성, 정확하고 효율적인 국어생활 등과 관련하여 교육적 의의가 높다. 문자언어로 하는 의사표현은 음성언어보다 제약이 많고, 편지를 쓰는 이와 받는 이의 관계에 따라 표현방법과 내용이 달라지기 때문에 편지쓰기 교육은 현재까지 국어과 쓰기 교육의 주요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최근 2022 대한민국 편지쓰기 공모전이 “선물같은 편지”라는 주제로 개최되었다. 전하는 이에게는 설렘을, 받는 이에게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선물과 같이, 편지쓰기를 통해 주변 이웃들과 설렘, 행복의 감정을 나눌 수 있는 편지글을 공모받고 있다. 더불어 “선물같은 편지”를 주제로 한 편지쓰기 교육자료가 전국 교육기관에 무상으로 배포되는 등 편지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이 되고, 공모기간 동안 다양한 문화축제와 연계한 편지쓰기 공모전 참여 캠페인이 진행될 예정이다. 바야흐로 편지의 축제가 시작된다.      


 오늘날 편지가 가지는 문화적 가치는 크고 다양해졌다. 공모전 주제처럼 일상 속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소통 수단으로써, 편지를 쓰기 위해 머릿속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데 도움을 주는 교육적 역할로서, 그리고 편지쓰기 행위를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고, 위로받을 수 있는 정서적 치유 활동으로서, 편지는 우리 모두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문화콘텐츠 임에 틀림없다. 앞으로도, 연구 혹은 실무를 통해 편지의 다양한 가치들이 발굴되어 우리 사회에 따뜻한 아날로그 소통수단으로 오래 남기를 기대한다.


이관민 (한국우편사업진흥원 문화기획자)


위 글은 서강대대학원 신문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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