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동사처럼
어느 날, 누군가가 ‘인생은 동사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동사? 그럼 나는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았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시간이
동사는 아니었던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실 조용하면서 차분한 성격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남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또 자랑할 것이 있어도 그것을 요란하게 떠들거나
자랑하기보다는 그냥 조용히 누군가가 알아주기만을 기다린다.
그런데 ‘인생은 동사다’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에 종소리가 울리는 것 같았다.
오십을 넘고 육십이 더 가까워지는 나이가 되면서 이제 조용히 삶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이제 더 이상 들뜨지 말고 차분하게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내 나이는 은퇴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고 생각하고 조용히 명사(名詞)처럼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이름을 굳건히 지키며 내 자존심을 지키며, 그리고 내 존재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무엇인가를 새롭게 시도하기엔 이젠 좀 늦은 나이,
그러니 내 위치에서 부끄럽지 않은 존재가 되려고 했다.
물론 어느 한순간도 정지되어 있었던 것이 없었음에도 나 스스로 내 인생이
동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냥 보통 명사이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부사 정도로 생각했었다.
나는 사실 조용하고 말이 적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과묵하거나 진중하거나
하는 편도 아니었다. 나는 조용하면서도 발발거리며 움직이기를 잘한다.
나는 가만히 집에서 앉아 있거나 누워있는 것을 좋아하지만 무엇인가를 하거나
움직이기를 좋아한다. 손이든 몸이든 꼼지락거리거나 어딘가를 쏘다니고
끊임없이 활동하는 편이다.
다만 나는 격랑 치는 파도나 강물이 아니라 큰 강물처럼 조용히 흘러가는 것을
좋아할 뿐이다. 크게 튀지도 않고 유난스럽지도 않은, 그냥 나만의 색깔을 가지고
살아가는 내가 되고 싶었다.
큰 강물의 수면이 고요하지만, 강물 속에는 커다란 움직임이 있듯이
나 또한 겉으로 보기엔 평온하지만, 내면에서는 지치지 않는 움직임이 가득한
삶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서 나에게 주어진 가족에 대한 나의 책임을 다하고, 또 사회 구성원으로서,
직장인으로서, 국민의 책임을 다하되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만큼,
또 주어지는 만큼의 만족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다.
안빈낙도의 삶이 나에게 딱 맞는다. 무엇을 하든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고 내가 가진 것 이상의
결과를 기대하지 않고, 그저 내가 노력한 만큼, 내 능력만큼, 그리고 태어날 때 나에게 주어진
운명만큼만 주어지면 그것에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제 남은 시간을 동사처럼 살아보고 싶다. 완전한 자동사로 살 수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동사처럼 활력이 넘치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내 나이에 상관없이 에너지를 잃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