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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토 May 18. 2024

세상에 없던 사람

새롭게 탄생한 우리의 아이

10개월의 임신 대장정을 마치고 드디어 출산을 했다.


자연분만을 바라던 엄마의 바람대로 새벽이는 순조롭게 자궁문을 열고 나와주었다.

순조롭다고 적었지만, 출산 당일 겪었던 진통을 생각하면 아직까지도 눈물이 나고 사람이 그렇게까지 아파가며 사람을 낳아야 한다는 것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출산이 이렇게 신체적 충격과 정신적 충격이 함께 오는 것이었음을 겪고 나서야 알았다.






누가 자연분만을 선불이라고 하였는가.


싫어하는 것을 미루고 미뤄서 마지막에 하기보다는 얼른 해치워놓고 여유를 즐기는 것을 선호하기에

출산도 고통이 후불인 제왕절개보다는 선불이라는 자연분만을 선호했다.


분만실 입원 후 6시간의 진통을 견디고, 마지막 분만과정에서 몸이 찢어지는 고통을 견디고, 아이가 세상으로 나와 우렁찬 울음소리를 냈을 때 이제 드디어 고통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


태반 배출을 위해 다시 한번 분만하듯 힘을 주고,

회음부 봉합 때는 바늘과 실이 한 땀 한 땀 몸을 통과하는 끔찍한 통증을 견디고,

20분에 걸쳐 겨우 첫 소변을 보고,

다시 몸속에 초음파 기계를 넣어 자궁의 상태를 확인하는 등.


끝이라고 생각한 이후에도 고통스러운 과정이 계속되었다.






눈물의 출산 과정을 견딘 후,


입원실로 가서도 고통은 끝이 없었다.


봉합한 회음부가 너무 아파서 눕지도 앉지도 못하겠고, 통증으로 인해 잠에 들지도 못했다.

몸은 이미 너무 지치고 정신은 충격에 휩싸였는데 잠을 자기도 괴롭고 깨어있으면 더 괴로운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런 와중에 알게 된 기쁜 소식.


신생아실 면회가 가능하다는 소식이었다.


방금 전 분만실에서 입원실로 올 때도 간호사선생님이 밀어주시는 휠체어를 타고 온 내가,

어디서 그런 힘이 난 건지 스스로 몸을 일으켜 링거대를 의지하고는 남편과 함께 신생아실에 새벽이를 보러 갔다.


갈 수 있겠냐는 남편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당연히 가야지"라고 대답하며 씩씩하게 발걸음을 내디뎠다.


출산 직후 내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잠시 내 품에 안겼던 새벽이.

누군가가 이렇게나 보고 싶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드디어 신생아실에 가서 깨끗하게 씻기고 싸인 새벽이를 만나게 되었다.






'저 아이가 내 아이라고?'

'내가 저 사람을 낳았다고?'

'내 뱃속에 10개월간 있었던 존재가 이 아이라고?'


처음 신생아실에서 새벽이를 마주했을 때 든 생각이었다.


10개월간 내 몸에서 함께했지만, 너무나도 새롭고 낯선 존재가 내 눈앞에 있었다.


생경함과 동시에 알 수 없는 새로운 감정이 밀려들었다.


사랑스러움, 감사함, 경외로움, 신기함, 신비함, 알 수 없는 존경심, 감탄스러움,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마음.


무슨 단어로 그 마음을 설명할 수 있을까.


세상에 없던 새로운 존재가 태어났듯, 내 세상에는 없던 새로운 감정이 생겨났다.






방금 새벽이를 보고 입원실로 돌아왔는데

또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언제쯤 또 만날 수 있을까'


아픈 와중에도 자꾸 생각나고, 자꾸 보고 싶고, 자꾸 그리워지는 존재.

몸이 찢어지는 아픔을 극복하게 하는 존재.

너무 아픈데 그만큼 너무 이쁜 존재.


그런 존재가 나에게 생기다니.


분명 10개월간 임신을 하면서 이미 새벽이라는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우린 서로 아직 얼굴도 못 본 상태였다.


누군가의 얼굴을 마주 보고 존재를 인식한다는 게 이렇게나 큰 일인 걸까.


새벽이의 얼굴을 마주 보고 존재를 확인한 이후부터

새벽이에 대한 나의 감정은 아주 달라졌다.


세상에 없던 사람이 이제 우리의 세상에 존재한다.


귀하고 귀한 우리 아기.

너의 탄생을 축하해.

너의 존재를 환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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