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일] 백일의 기절
이토록 간절히 누군가의 잠을 바란 적이 있을까. 이토록 숨죽여 누군가의 잠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애써본 적이 있을까. 100일의 기적이라더니, 우리는 요즘 100일의 기절을 맛보고 있는 중이다.
생후 58일부터 8-9시간 통잠을 자기 시작한 우리 아이는 마치 유니콘 베이비 같았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새벽 수유를 못해도 한번, 많으면 세 번도 했던 터라 아이의 통잠은 우리 부부의 큰 숙제 같았다. 어떻게 해야 통잠을 재울 수 있을까. 과연 이 조그만 생명체가 통잠을 잘 수는 있는 걸까? 미디어에 나오는 10시간을 잔다는 아기들은 대체 뭘 어떻게 한 걸까. 그게 사실이기나 한 걸까.
품에서 겨우 잠이든 아이를 안아 든 채 우리 부부는 열띤 토론을 했다. 나는 비용이 들어도 수면 컨설팅을 받고 싶다는 입장이었고, 남편은 우리가 제대로 수면 교육을 해보지도 않은 채 무작정 비용이 드는 컨설팅을 받고 싶진 않다는 입장이었다.
아이의 잠에 맞춰 하루 일과가 형성되는 나는 아이의 잠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등센서가 있는 아이였기에 낮잠은 무조건 안아서 재워야 하고, 제법 깊게 잠들었다 싶어 침대에 살포시 내려놓으면 그 순간 깨버려 울음을 터뜨렸다. 다시 안아 들어서 어르고 달래서 재우길 반복하다 심신이 지친 지 오래였다.
이런 우리의 첨예한 토론을 아이가 잠결에 들은 걸까. 부부의 의견이 서로 다른 것을 확인한 그 깊은 밤부터 아이는 갑자기 통잠을 자기 시작했다. 가정의 평화를 지키려고 한 걸까. 본인이 나서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겠다 싶었던 걸까. 그날부터 우리의 통잠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는 다시 새벽에 깨기 시작한다. 이유는 모르겠다. 아마도 급성장으로 인해 성장통이 오는 원더윅스가 아닐까 하는 게 우리의 추측이다. 이유 없이 통잠을 자기 시작한 것처럼 이유 없이 새벽에 일어난다. 우리가 무언가를 해서 아이가 통잠을 잔 게 아니듯, 우리가 무언가를 해서 새벽에 깨는 건 아닌 것 같다는 게 요즈음 생각이다. 아이의 신체 리듬과 변화에 따라 계속 바뀌는 듯하다. 아이는 자라는 중이니까. 변화가 오는 건 당연하다.
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건 부모인 것 같다. 통잠을 자기 시작하니 언제까지고 아이가 통잠을 잘 꺼라 기대했기 때문인지 급작스러운 변화에 몸도 마음도 혼란하다. 밤잠에 이어 낮잠까지도 다시 신생아 시절로 돌아간 듯 눕히면 등센서가 발동해 금방 울어버리기 십상이다. 오늘도 아이를 겨우 재우고 나와 조용히 카레를 데우고 허겁지겁 먹는다. 혹여 아이가 깰까 모든 소리를 죽인 채. 아이 침대옆에 달아둔 카메라 화면을 보여주는 모니터만 보면서. 숨죽여 아이의 잠이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
글 쓰는 건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아 좋다. 노트북 타자소리 말고는. 물론 내면에서는 마음이 시끄럽게 떠들어대지만 아이에게는 들리지 않으니 안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