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조퇴 생활 with 코로나19

매년 조금씩 달라지는 스스로를 알아가는 시간

by 아토

이렇게 화창한 하늘을 보면서 퇴근하는 게 얼마만인지.

한 해가 끝나기 전 남은 연가를 소진하기 위해 오후 1시에 조퇴를 했다. 이날은 아침부터 아니 전날 저녁부터 들떠있었다. 조퇴하고서 무얼 할까 고민했다. 물론 코로나 바이러스가 계속 번지고 있는 상황이라 어떤 거창한 것은 하지 못하지만, 남편도 출근했으니 집에 가면 나 혼자라 혼자 뭘 하고 놀까 하는 기분 좋은 고민을 했다.


연말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조퇴니 그냥 집에 가기는 아쉬웠다. 특히 이날은 승진 축하 화분을 받은 터라 내 기분이 살짝 업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고민 끝에 집 근처 동내 책방에 잠시 들르기로 했다. 결혼을 하면서 새로운 동네에 자리를 잡으며 집 주변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한번 들를 시간이 잘 나질 않았다. 코로나 때문에 집콕 생활만 해서 올해는 어디 가본 기억이 잘 없다.




살짝 들뜬 기분과 새파란 겨울의 하늘과 쏟아지는 오후의 햇빛을 받으며 책방으로 향했다. 평일 오후의 그 나른함과 한산함. 늘 직장에서 식곤증과 싸우며 일을 하던 시간이었는데 이렇게 밖으로 나와 새로운 공간에 있으니 새로운 내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또 이럴 땐 평소엔 그렇게 밀려오던 식곤증도 누가 쫓아내기라도 한 듯 싹 사라진다.


책방에 들어서니 따뜻한 공기와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따뜻한 햇살을 듬뿍 받은 책들은 반짝이며 나를 반긴다. 얼마 만에 느끼는 책방의 냄새인지.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엔 매일 집에 틀어박혀 공부하는 게 일상이어서 가끔 서점에 책을 사러 가는 것은 손에 꼽는 특별한 외출이었다. 직장인이 된 지금도 사무실에 갇혀있는 일상을 잠시 빠져나와 책방에 들른 것은 나름의 특별한 외출처럼 느껴진다.


어떤 책을 살지 정하지 않고 그냥 무턱대고 온 책방이었다. 그래서 책장에 꽂힌 책을 꼼꼼히 훑어보며 서점을 한 바퀴 빙 돌았다. 여행, 교육, 동화, 에세이 등 책들이 다양하게 있었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이 무엇인지 몰라 고르는데만 한참이 걸렸다. 책 고르기가 이렇게도 힘든 일이었다니.. 29년을 함께한 나 자신이지만 매년 조금씩 달라지는 스스로를 계속해서 배워가고 알아가야 한다는 것을 책을 고르며 느꼈다.




요즘 내가 관심 있는 것은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다. 그냥 사는 이야기.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까. 세상의 스물아홉을 겪은 그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이 과정들을 지나갔을까. 어떤 경험들을 했으며 어떤 선택을 했을까. 스물아홉이었던, 스물아홉인, 스물아홉이 될 그 많은 스물아홉들에게 물어보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한참을 둘러보다 고른 책들은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 이성갑 작가의 “오늘도 삶을 읽어나갑니다”, 젠 캠벨 작가의 “진짜 그런 책은 없는데요” 이렇게 세 권이었다. 내 질문에 적합한 책들을 골라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흥미로운 책을 세권 사들고는 신나게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제일 좋아하는 자리인 거실 소파에 앉아 오후 3시의 나른한 햇살을 받으며 한 권씩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저 책방에서 관심 있는 책을 사서 집에 와 읽는 것일 뿐인데 이렇게까지 행복해도 되는 건가. 직장인의 평일 오후 연가는 정말 달콤하고 행복하다.


책을 읽다 거실 창밖의 겨울 풍경 구경도 하고, 낮잠도 자고, 그냥 뒹굴거리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슬기로운 조퇴 생활이 아니겠는가. 비록 코로나로 인해 집콕하는 생활이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며 이렇게 혼자 가지는 조용한 시간도 정말 만족스럽다. 2021년에도 슬기로운 조퇴 생활은 계속된다. 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