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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쩨이 Jul 08. 2020

미혼, 무직의 30대 : 0개 국어 능력자

시작에 앞서 나는 법정스님도 아닌데 왜 언어능력조차 무소유 하고 있는가를 고찰해본다.


어느덧 일본에 온 지 만 4년 3개월 즈음이 되었다.

일본에 있지만 연구실에 유학생도 많은 관계로 연구실에서는 주로 영어를 쓴다.

하루에 꼭꼭 두 번씩은 하는 엄마와의 전화에는 한국어를 쓴다.

이렇게 쓰고 보면 나는 마치 한국어, 일본어, 영어의 삼개국어를 쓰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세 언어가 적당히 어울려 적당히 말하고 쓰고 읽고 있다.


0개 국어가 되어가는 구나를 느끼는 여러 순간들

단연 첫 번째로는 어떤 단어가 특정 언어로 바로 떠오르지 않을 때이다.

뭔가 멋있게 언어 습득 시에 언어학적으로~ 같은 표현을 써가며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내 전공이 아니므로 멋진 설명은 누군가에게 맡기도록 하겠다.

가령 대화중에 최근을 한국어로 말하고 싶은데 일본어로 最近이라는 표현이 먼저 떠오르면 한참 생각을 해봐도 최근이라는 한국어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한국어로 글을 쓸 때 너무 열심히 사전을 찾고 있을 때이다

석사 때 지도교수님께 일 년에 한 번씩은 이메일로 연락을 드린다. 교수님의 생신 축하 연락이다.

고작 A4 종이 반쪽도 안될 글을 쓰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들여 사전을 검색해가며 쓰다가 보내기 전에는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검토마저 부탁하곤 한다.

세 언어 중에 일본어는 특히 이메일 쓸 때 정해져 있는 표현이 많아서 어떤 의미로는 쓰기가 쉬운데

반대로 여기에 익숙해지니 한국어로 쓸 때 일본식 표현을 그대로 직역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세 번째는 외국어로의 대화에 한국어로 대답하고 있을 때이다. 

아무리 0개 언어를 쓴다고 해도 모국어인 한국어가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 보니 

특히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거나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 외국어로 누군가 질문을 해오거나 하면 

'아니오?' 같은 짧은 한국어로 대답을 하는 경우가 있다.

입에서 말이 나가자마자 아차, 한국어 썼다! 하고 깨닫지만 이미 말은 나간 후이니..


자조적으로 유학생들한테 몇 년 외국에서 살다왔다고 외국어를 섞어서 말하는 사람들 되게 arrogant 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절대 偉そうに(잘난 듯이)하려고 그러는 게 아닌 거 같아! 내가 점점 그렇게 되어가고 있어!

하고 말을 하니 모두 동감해주었다.

(아마 외국어를 쓰는 경우 모두 경험하는 보편적인 현상인가 보다.)


세종대왕께서 어린 백성을 어여삐 여기시어 모두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말할 수 있도록 한글을 만드신 덕분에

한국에서 한국어를 쓰며 모국어 버프로 문제없이 소위 고급 의사소통을 해왔었기에 더욱 0개 언어의 맛을 쓰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나랏말싸미 외귁에다른 현실 속에 나처럼 0개 언어를 소유하며 지구의 어딘가에서 힘내고 있을 0개 언어 소유자들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길 바라본다.


0개 언어, 그럴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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