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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쩨이 Jul 09. 2020

미혼, 무직의 30대 : 두 번 우려먹는 드립 커피

어김없이 여름이라는 녀석이 찾아왔다.

올여름은 비가 유난히도 자주 내리고 있는 느낌이다.

일본의 여름이란 게 원체 습도가 높은데 이렇게 주구장창 비가 내리니 습도가 95% 정도는 되는 거 같다.


시원한 음료를 찾아 요즘 즐겨마시는 건 얼음을 넘치게 담은 컵에 갓 드립 한 커피를 부어서 마시는 아이스커피이다. 이 와중에 아이스 음료를 마시면 결로 현상이 건물에 얼마나 안 좋을까를 생각하게 될 만큼 컵 밑에 코스타용으로 놔둔 두꺼운 종이가 다 젖고 마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내가 요즘 아이스 음료를 마시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서술이고

지금부터는 드립 커피를 두 번 우려먹는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하늘하늘한 레이스 커튼이 쳐져 있는 창가에 아침 햇살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방으로 들어오면,

슬림한 몸매의 여자가 오버 사이즈 셔츠에 짧은 바지를 입고 하얀 시트가 곱게 깔려있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해가며 기지개를 켜고 다음 장면은 커피 드리퍼에 원두커피를 넣고 드립 커피를 만드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대중 매체에서 보여지는 혹은 내가 생각했던 이 장면에는 내가 없다.


내 방에는 여자 혼자 산다고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의 짙은 남색의 암막 커튼이 쳐져있으며 

늘씬하지 않은 나는 어느 계절인지 모를 다양한 이불이 섞인 침대에서 일어나 연구실에 와서 커피 한 잔용으로 된 드립 커피를 머그잔에 끼워 전기 포트의 쪼르륵 소리를 들으며 드립 커피를 만드는 것이다.

작은 머그 한 잔 분의 커피를 만들고 나면 나는 또다시 작은 머그잔에 방금 내렸던 드립 커피를 우려낸다.


맛이 떨어지거나 쓴 맛이나 떫은맛이 강조된다는 두 번째 우린 커피.


30대가 되면 멋지게(라고 할 만한 수준인지는 모르겠으나) 한 번 우린 드립 커피쯤은 가볍게 쓰레기 통에 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20대 때 혹은 10대 때도 하지 않던 두 번 우린 드립 커피를 마시며 꾸역꾸역 하루를 삼켜낸다.


궁상떠는 30대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남들이 No라고 할 때 Yes라고 하는 30대라고 하고 싶다.

두 번 우려서 직접 마셔보지 않으면 두 번째로 우려낸 드립 커피의 맛을 영원히 알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대중 매체가 그린 이미지와는 다른 내가 남들이 하지 말라는 짓을 하지만

남들이 보편적으로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정답인지 또 그게 나에게도 해당이 되는지는 나만이 알 수 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판단할 수 있는 힘을 남에게 주지 말고 나에게 쥐어줘 보자.


모두가 사소하고 즐거운 도전에서 오늘을 넘길 힘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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