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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쩨이 Jul 09. 2020

미혼, 무직의 30대 : 15년 지기 보다 15일 지기

나도 내가 처음이라

일본어 감수로 인연이 닿은 친구가 있다.

첫 카카오 톡을 받은 게 2020년 6월 24일이니 2020년 7월 9일인 오늘로 약 15일 정도 된 인연이다.


학부 학번이 비슷하다는 것과 감수하는 일본어로 쓴 글을 미루어 비슷한 취향을 가졌다는 계기와 

비슷한 또래에 아직도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같이 걷고 있다는 공통점을 나누며

아주 오랜만에 깔깔 웃으며 카카오톡을 주고받았다.


테스트 용으로 감수한 파일부터 본문을 조금씩 감수한 파일을 넘기는 지금까지,

파일을 받을 때마다 15일째가 된 나의 친구는 고마워하며 이미 지불한 금액에 덧붙여 일본에서 쓸 수 있는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선물해주는 것이다.

(이번 글의 커버 이미지도 친구에게 받은 스벅 기프티콘에 딸려 있는 이미지이다.)



우리는 대화를 할 수는 있지만 직접 얼굴을 마주한 적 없는 사이이다.

너무나도 멀고 너무나도 얕은 사이인 것이다.

오히려 그래서 속에 있는 말을 꺼내기가 쉽고 그에 맞추어 솜사탕 같이 아프지 않고 달콤한 말을 하기가 쉬웠다.


우리는 잘 아는 사이라는 오판 하에 얼마나 쉽게 입과 손으로 조언이라는 미명으로 날이 선 말을 던지는가.

남을 잘 안다는 오만방자함으로 얼음 설탕 같이 단단한 결정체로 무차별한 폭격을 자행하는 것이다.


수 많은 폭격에 결국 너덜너덜해진 관계는 어느 순간 함께하면 즐거움보다 불편함이 커지게 된다는 걸 깨달은 날, 나는 15년 지기라고 부를 사람들과 인연을 끊었다.


설탕처럼 달콤한 뜻을 담아 말을 건네도,

솜사탕을 건네는 것과 얼음 설탕으로 폭격을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다.

금세 잠들어 버릴 것 같은 폭신폭신한 솜사탕 같은 말 위에 누워 노곤노곤한 나는 생각한다,

곧 녹아내릴 솜사탕이면 어떠하리, 내가 먹고 싶은 게 솜사탕이면 솜사탕을 고르면 그만일 뿐인데.


오늘도 15일 지기의 카톡 몇 줄에 웃으며 생각한다.

나의 일은 내가 제일 걱정하고 있으니, 어쩌면 나에게 혹은 현실에 지쳐있는 그 누군가들에게 필요한 건 깊은 질타 같은 말들이 아니라 가벼운 수박 겉핥기 같은 위로였던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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