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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리 Mar 02. 2020

코로나에 묻힐 생각일랑 하지 마세요

지난 1월, 요양원에서 생활하던 엄마가 요양원의 부주의로 떡을 먹고 질식사를 했다. 사고를 수습하고 장례를 치른 후 나는 소송을 준비하며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브런치에 써나갔다. 


https://brunch.co.kr/magazine/january2020


또한 2월 중순쯤에는 용기를 내어 몇 군데 언론에 엄마의 사건을 제보하기도 했는데 마침, 뉴스가 코로나 19 관련 기사로 다 뒤덮인 시점과 맞물려 버렸다. 위의 글을 마무리할 시점이 다 되어서는 신천지로부터 발생된 심각한 바이러스 전파로 온 나라가 패닉에 빠져 이로 인한 피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드높아졌다. 


환자가 늘어나고, 의료진과 질병 당국의 손이 태부족해지고, 병상 부족의 하소연 또한 이곳저곳에서 들려온다. 손님의 감소로 큰 피해를 입는 기업들과 자영업자들, 한 번 확진자가 지나간 것이 확인되면 방역 문제로 강제 휴업을 해 하는 공간의 업무 마비, 이로 인한 소비재 물량의 부족, 물가의 상승 등 경제에 미칠 파장이 거의 IMF 시기를 방불케 한다. 돈 문제를 넘어, 개학 연기로 인한 아이들의 보육 문제, 각종 시험이 미뤄지는 데 대한 수험생들의 허탈감, 서로 잘잘못을 따지고 총선 연기를 운운하는 정치권의 공방 등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나도 만약 엄마 사건이 없었다면 이 이슈에 집중하며 나라 걱정만 하고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엄마의 사건을 겪고 변호사와 소송에 대해 상의하는 입장에 놓이다 보니 이 시국에 가장 걱정되는 이들은 자신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려고 고군분투하던 이들이다. 


불의의 사고로 가족을 잃은 이들, 갑작스레 자신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 믿고 맡긴 재산을 날린 사람들, 각종 의료사고의 피해자 등은 때로 소송으로, 때로 팻말을 들고 선 1인 시위로, 때로 끊임없는 민원으로, 때로는 언론의 힘을 빌어 자신이 주목받기를 원해왔다. 원래 그런 성격은 아니었던 사람도 많을 것이다. 평소엔 소심하고 내성적이어서 별로 눈에 띄고 싶어 하지 않던 이들이 갑자기 예상치 못한 억울한 일을 겪고 나면 오히려 그동안 큰 소리 안 내고 살아온 인생에 대한 회의와 후회가 밀려오고 앞으로는 그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굳은 결심과 만난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문제를 강하게 어필하기 위해,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관종'을 자처하기에 이른다. 


평화롭고 조용할 때조차 잘 들리지 않았던 그들의 목소리는 이제는 전염병이라는 크나 큰 사회적 재난 앞에 더 외면당하고 뒤로 밀릴 것이다. 더 심통이 나는 것은 그들을 억울하게 만든 가해자들이 이런 시국을 기뻐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경찰을 비롯한 사법 당국 조차 온 나라의 비상사태에 관심이 집중되어있는 이 시점에 자신이 벌인 잘못은 서서히 잊히기를 은근히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며칠 전 엄마 사건을 맡은 변호사는 다 완성한 고소장을 접수하겠다고 알려왔다. 한 달 동안 내가, 엄마가 다니던 병원과 건강보험공단 등을 돌아다니며 각종 증거를 수집하고 변호사와 입장을 정리하며 정성스럽게 작성한 고소장이다. 그래 봤자 이제 시작이다. 이걸 접수해도 검찰과 경찰이 우리 사건을 부지런히 수사해주어야 소송이 진행된다. 세상에 소송은 많고 그들은 바쁘다. 앞으로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아득한 일. 그래서 이 코로나 19 사태가 더 원망스럽다.


이 세상 모든 가해자들이여, 코로나로 묻혀서 치사하게 발을 뺄 생각일랑 절대 하지 말기를. 이 세상 모든 피해자들이여, 이 사태를 무사히 극복하고 제발, 지지 말기를. 굳건히, 힘을 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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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은 마감되었지만 지속적인 관심 부탁드립니다. 

<요양원 과실치사에 대해 즉각적인 형사처벌 및 즉각 폐원 가능한 제도 마련 촉구>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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