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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리 Mar 05. 2020

드디어 들었다, '불효자'라는 말

10년간 뇌질환과 치매를 앓은 엄마에 대해 쓴 브런치 북 <엄마의 장례식에서 웃게 되면 어쩌지 1, 2> 권을 쓸 때부터 내 안에는 두려움이 많았다. 


집에서 직접 부모를 돌보지도 않은 내가, 간간히 엄마를 돌보고 요양원과 소통하는 정도의 일을 하면서 힘들다고 투덜댈 자격이 있는지, 오랜 세월 하루 종일 집에서 아픈 부모를 돌보는 보호자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콧방귀 뀔 일이란 생각이 들었고 그와 비교하면 내가 나불대는 엄마의 투병기는 '같잖다'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엄마를 돌보는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나를 '효녀'라 부르는 것이 싫었던 이유 또한 부담스러워서였다. 자식 된 입장에서 병든 엄마를 돌보는 최소한의 일을 하는 것조차 힘들어하던 내가 '효녀'라 불리면 그 이름값을 하기 위해 엄마에게 더 잘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렸다. 차라리 누가 나에게 '불효자'라고 불러주면 마음이 편하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사실 엄마를 직접 돌보지 못한 이유를 말하라면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엄마가 아팠던 10년 동안, 나는 유아기의 두 아이를 키우며 간헐적으로 일을 쉰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졌다. 다행히 남편은 현재 직장에 잘 다니며 우리 집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지만 나는 2000년도에 첫 직장에 들어간 뒤 2018년까지, 그 사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정직원으로든 프리랜서로든 단 한 번도 일을 쉰 적이 없다. 부모에게 육아 도움을 받기는커녕 어린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병든 부모님을 신경 쓴다는 것의 억울함을 한탄했을지언정, 둘째 아이가 태어난 직후 뇌경색이 발병한 친정 엄마를 내가 직접 모실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내 그릇은 거기까지였다.  


내가 미혼이었거나 혹은 아이를 어느 정도 키워둔 다음에 엄마가 발병했다면 내가 직접 엄마를 모셨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그 또한 모르는 일이다. 엄마는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활동적인 치매 환자였고 그런 엄마를 하루 종일 외출도 못한 채 집에서 직접 돌볼 자신은 나에게는 애초부터 없었던 것 같다. 섣불리 내가 엄마를 맡았다가 못하겠다고 포기하면 그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섣부른 효심이 객기를 부를까 나는 매우 두려웠던 것 같다.  


https://brunch.co.kr/@atoi02/38


하지만 이 세상에는 병든 부모를 자신의 집에서 하루 종일 돌보는 효자들이 존재하고, 나는 그들을 너무도 존경한다. 그들에 비하면 누군가 나를 불효자라고 부른다고 해도 절대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요양원에 부모를 모셨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자식들이 불효자로 불리는 것에는 반대한다. 그것은 아이를 직접 돌보지 않고 어린이집에 맡겼다는 이유만으로 '나쁜 부모'라고 비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사회는 병든 노인을 믿고 맡기도록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고 그 시스템을 이용하는 이용자들이 있다. 이용하도록 만들어놓은 제도가 있다면 그 제도를 운영하는 이들에게는 최소한의 사명이 있다. 식당에 가서 돈을 냈으면 그 값에 해당하는 밥을 주는 것이 맞고, 교육비를 받는 학교에서는 학생을 제대로 교육하는 것이 맞듯이 요양원이라는 곳을 운영한다면 입소한 환자를 잘 돌봐야 하고 이런 일을 잘하도록 감시해야 할 관리, 감독 기관의 역할 도 필요하다.


엄마는 지난 1월, 요양원의 부주의로 떡을 먹고 질식해서 하늘로 떠났다. 나는 한 동안 황망함을 감출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럴 줄 알았다면 내가 집에서 직접 엄마를 돌볼 걸'하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시간을 돌린다고 해도 나는 어쩔 수 없이 엄마를 요양 기관에 맡겼을 것이다. 나는 엄마가 아팠던 10년 동안 그때그때 내가 최선이라 생각한 일들을 했다. 마지막 요양원은 불만이 가득했던 여러 다른 기관을 여러 번 거친 뒤 겨우 정착해서 1년 반 동안 엄마가 적응도 잘하고 잘 지냈던 곳이었다. 최선이라고 생각한 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 나는 더욱더 배신감에 빠졌었다. 


엄마 사건에 대해 소송을 준비하고 있지만 이는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못한 사람이 벌을 받게 하기 위함이지 엄마의 원한을 풀기 위함이 아니다. 엄마에게 원한이 남았으리라는 것도, 그 원한을 풀어줄 방법이 있으리라는 것도 나는 믿지 않는다. 이미 떠난 엄마에게 무엇인들 소용 있겠는가.   


앞으로 요양기관 운영 제도에 대해 다 깊이 있게 알아보려 하지만 이것 또한 못다 한 효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는 이미 떠났고 내가 엄마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는 이미 엄마에게 불효자가 되어버렸고 이를 만회할 기회는 더 이상 없다.


이 과정은 차라리 나를 위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맞겠다. 나는 엄마처럼 병들기도 싫지만 그렇게 되어 요양기관에 입소하더라도 그곳에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다가 편안히 잠들고 싶다. 이런 마음은 나만의 소망은 아닐 텐데, 그럼에도 이를 위한 사회 제도가 아직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확실히 알았다. 그것이 조금이라도 개선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소송을 걸고 계속 글을 쓰고 노후와 죽음에 대해 잘 알아보기로 결심한 것은 차라리 그런, 이기적인 이유 때문이다. 



최근 내가 쓴 글에 '부모를 직접 모시지도 않은 불효자가 참 말이 많다'라고 한 분이 계셨고 이것은 언젠가는 올 거라 예상했던 비난이다. 그리고 나는 '질책에 감사하다'라고 답했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내 진심이다. 나는 '불효자'라 불리는 것이 차라리 마음 편하다. 


병든 부모를 직접 돌보면 효자고 요양원에 맡기면 불효자인 것인지에 대한 치열한 논의야말로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다. 이 주제부터 시끄럽게 토론해봐야 그럼 노인들을 어떻게 돌볼지 요양 기관이란 제도는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로 이어갈 수 있다.  


나도 답을 모르겠고 아직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길을 찾는 단계다. 무엇이든 자료가 되는 것은 모으고 있지만 쉽지 않다. 이런 일에 대한 필요성을 엄마를 보내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 안타깝지만 어쩌겠나. 이것이 바로 불효자의 어리석음인 것을. 내가 그 어떤 일을 하더라도 변하지 않는다. 엄마를 그렇게 보낸 나는, 불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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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은 마감되었지만 지속적인 관심 부탁드립니다. 

<요양원 과실치사에 대해 즉각적인 형사처벌 및 즉각 폐원 가능한 제도 마련 촉구>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84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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