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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리 Mar 16. 2020

나를 떠난 엄마에게

엄마. 


오늘 경찰서에 가서 고소인 조사를 받고 왔어. 

고소인 조사는, 변호사가 고소장을 작성해서 검찰에 제출한 뒤, 검찰이 경찰에게 수사를 의뢰해서 이루어진 첫 번째 수사 단계야. 오빠와 내가 어떤 의도로 고소를 한 것인지 직접 만나 물어보려고 한 거지. 


조사를 하는 수사관은 나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어. 


처음엔 내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 등을 묻고, 그다음엔 엄마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물었지. 내가 모를까 봐? 병원에 가거나 건강보험공단에, 요양원에 서류를 낼 때마다 그렇게 줄줄 읊어대던 엄마의 주민번호를 내가 모를까 봐? 내가 그걸 줄줄 외는데 오빠는 옆에서 감탄도 안 하더라. 쳇. 내가 그걸 왼다는 것은 내가 그걸 읊을 일이 얼마나 많았는지 증명하는 건데. 오빠는 그것도 몰라주는 것 같더라. 쳇. 


이후에 수사관은, 사고가 난 당일에 어떤 일이 있었고, 엄마가 어떻게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으며 엄마를 돌보던 사람들이 어떤 잘못을 했다고 생각하기에 고소를 했는지 물었어. 그런 질문에는 너무도 쉽게 대답할 수 있었어. 목에 떡이 걸리고, 힘들어하다가 점차 의식을 잃어가는 엄마의 모습이 담긴 CCTV 영상을 보던 순간부터 이미 난, 엄마를 돌봤어야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황당하게 엄마를 방치했는지, 그들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안 함으로써 우리 가족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이미 다 파악했고, 변호사와 상의해서 고소장을 작성하는 동안에도 그걸 수 없이 상기해서 제대로 벌주기 위한 준비를 열심히 해왔거든. 그들이 빠져나갈 구멍이 없도록 그들의 방만함을 지적하기 위한 방법을 궁리하고 찾아내며 지난 한 달을 보냈어. 그러니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못할게 뭐 있어? 수사관 앞에서 줄줄줄 막힘없이 풀어낼 수 있었지. 


그런데, 사건에 대한 모든 설명이 다 끝난 후, 수사관이 던진 마지막 질문에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어. 


"시신을 부검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


부검? 엄마의 가슴을 다 헤집어서 그 안의 심장, 위장, 폐 등의 상태가 어떤지, 엄마가 얼마나 심각하게 상처를 입었는지 확인하는 그런 과정? 그 과정을 왜 안 했느냐고? 


나는 그 앞에 대고 


"그걸 왜 했어야 하죠?"


라고 묻고, 아니 따지고 싶었어. 엄마가 그렇게 힘들게 목이 막혀 떠난 것이 CCTV상에 다 드러나는데, 응급실 의사가 엄마 목에서 흰 떡 덩어리를 빼냈다고 하는데, 이미 병원에 올 때부터 장시간 질식으로 인해 엄마가 다시 깨어날 가능성은 없다고 의사가 말했는데, 뭐가 더 필요해서 부검을 했어야 하냐고!!!!! 


수사관은 말했어. 


"사망 진단서 보셨어요? 사망의 종류에 '병사'라고 되어있어요. '외인사'라고 되어 있어야 외부의 요인에 의해 사망한 것이 증명되는데, 아마도 5일간의 연명치료 중의 증상도 '병'이라 취급해서 '병사'로 기록한 것 같아요."


분명 사망진단서상 '사망 원인'은 '다발성 장기부전' '저산소증' '질식, 흡인성 폐렴'이라 되어 있어. 나는 이제껏 사망 원인에 '질식'이 들어간 것만 보고 그들의 죄를 묻는데 문제가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사망의 종류'에 '병사'라고 되어 있는 것은 제대로 못 봤지 뭐야. 의사는 어떤 의미로 이렇게 작성했을까. 정말 사고가 난 뒤 엄마를 바로 떠나보내지 못해서 우리가 망설였던 최소한의 시간, 그 5일 때문에 이런 결론이 난 것일까? 방법이 있다면 의사에게 가서 한 번 따져봐야겠어. 


"여러 정황상 어머님이 떡이 목에 걸려 질식사하신 것이 확실해 보이지만 그래도 부검을 안 하신 것이 좀 마음에 걸리네요. 부검을 했다면 사인이 보다 명확했을 테니까요."


수사관은 말했지. 오빠와 나는 그 자리에서 "네, 그래도 다른 여러 증거가 있으니까요."라고 말하고 조사를 마무리하고 나왔어. 


조사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며, 그리고 이후에도 한참 동안 나는 생각했어. 부검을 했어야 했는지. 안 한 것을 지금, 후회하는지. 


하지만 답은 하나야. 아무리 고소에 유리하다고 해도 나는 절대로 엄마의 부검에 동의하지 않았을 거야. 엄마가 그렇게 목이 막혀 간 것만 해도 힘들었을 텐데, 연명치료를 한 5일 동안 버텼던 것도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엄마를 갈기갈기 찢는 그런 짓을 할 수 있었겠어? 그리고, 우리가 5일간의 망설임 없이 사고 직후 엄마를 바로 떠나보냈다면 소송에는 더 유리했을 거야. 엄마가 사고가 일어난 직후 사망한 것이 되니까 확실하게 '떡에 의한 질식사'로 판명이 낫겠지. 하지만 그 당시엔 그럴 수 없었어. 단 며칠 동안의 망설임도 없이 엄마를 사고 당일에 바로 보낼 생각은 하지 못했어.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그렇게는 못했을 거야. 


안 되지, 안 될 말이지. 

수사관은 아마, 부검 결과가 있다면 모든 게 확실해지니까 일이 편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을 거야.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아버지랑 오빠, 나는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해. 

설령 승소를 못한다고 해도, 부검을 안 했다는 데 대해 조금의 후회도 없어. 안 되지. 안 될 말이지. 엄마를 그렇게 할 수는 없었어. 




엄마. 

나는 내가 왜 싸우는지 잘 모르겠어. 이런다고 엄마를 살아 돌아오게 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이것이 엄마에게 하는 마지막 효도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야. 엄마가 없는데, 효도가 무슨 소용, 원한 풀이가 무슨 소용이야. 엄마는 그냥 떠나 버린 거잖아. 

난 그저, 안 할 수 없어서 시작했어. 이 싸움을 시작해서 마무리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어. 잘못을 한 사람들이 그냥 버젓이 살아가는 게 너무 이해가 안 되어서 시작했어. 이 싸움을. 그게 엄마를 위한 것인지, 나를 위한 것인지 잘 모르겠고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결론이 날 수도 있지만 난 그냥,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 


혹시라도 재판에서 지는 일이 생기면, 나는 지쳐서 굴복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해. 난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닌 거, 엄마도 잘 알잖아? 아쉽겠지만, 엄마를 부검을 안 했단 이유로 진다면 난 그건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할 것 같아. 목이 막혀 힘들어하며 떠난 엄마의 모습을 여실히 본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어? 부검은 안 했어. 그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난 안 했을 거야. 부검은. 


엄마. 

지금은 편안해? 엄마가 지금 있는 그곳에서는 마음껏 걸어도 다니고,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들이랑 마음껏 수다도 떨고 그래? 그럴 만큼 말도 잘하고 걸음도 편안했으면 좋겠어. 정말 그것만이 내 소원이야. 정말이야. 


엄마. 

내가 지더라도 용서해줘. 그냥 내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칭찬해줘. 미안하지만, 그렇게 해 줘. 남들보다 덜 피운 어리광, 지금 피우는 거라 생각하고 그냥 지켜봐 줘, 지더라도, 부검을 안 한 나를, 제발, 용서해줘. 제발. 사랑해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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