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상 과실치상, 과실치사
아이들이 어릴 때 실수로 잘못을 저질러서 이를 지적하면 아이는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그게 미끄러졌어요.”
라고 억울함을 호소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말했다.
“네가 일부러 그러지 않은 것을 엄마는 잘 알지만, 그래도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었으면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널 아프게 해서 미안해. 다음부턴 주의할게’라고 말하면 너도 마음 편하고 사과받은 사람도 널 용서할 수 있는 거야.”
내 말을 납득한 아이는 이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지만 미안해. 다음부턴 조심할게.'
이 표현을 연극 대사 외우듯 입에 붙였고, 실수로 다른 아이 발을 밟거나 했을 때 꼭 이렇게 사과하곤 했다.
초등학교 입학 후 아이 친구 중 한 명이 우리 집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재밌게 놀다가 집에 가려고 할 때 아이가 신발을 신다가 그만, 신발장 위에 놔둔 화분을 떨어뜨려 깨져버렸다. 그 화분은 우리 아이가 매우 아끼던 거라 아이 표정은 울상이 되었다. 그런데 아이 친구 또한 표정이 굳어지더니 사과고 뭐고 아무 말을 안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 친구에게
“OO야, 실수로 그런 건 알아. 그런데 우리 아이가 아끼던 거라 많이 속상해하니까, 미안하다고, 다음부터 주의하겠다고 한 마디만 해줄래?”
라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자 그 친구는
“내가 왜요, 일부러 그런 거 아니잖아요, 그게 거기 있었는데 어쩌라고요!”
라며 오히려 나에게 쏘아붙이는 것이었다.
화분을 아끼던 내 아이는 거의 울 지경이지 그 아이가 사과를 하지 않으니 실랑이가 끝이 안나지, 나는 내가 그 친구를 타이르는 것에 한계를 느껴 옆에 있던 그 친구 엄마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으나 그 엄마는 자신의 아이에게 ‘사과하라’고 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내 아이에게
“□□야~ 우리 아이가 실수로 그런 것이니까 좀 이해해줘, 알았지?”
라며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할 수 없이 상황을 종료하고 그 엄마와 아이를 떠나보냈다.
나는 자신의 아이가 잘못을 했음에도 사과 한 마디 안 시키고 전혀 타이르지도 않은 그 엄마가 이해가 안 되었는데 그 엄마는 나중에 미안하다며 작은 화분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 그 엄마도 그렇게 사과할 정도의 예의가 있는 사람인데 왜 자신의 아이에게는 그 예의를 가르치지 않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엄마를 생각하면 ‘세상 사람들이 다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것’이 자못 씁쓸했었다.
우리나라 부모가 아이의 실수에 대해 정말 엄격해지는 경우는 따로 있다. 바로 실수로 시험 문제를 틀렸을 때다. 아이가 계산을 좀 잘못했거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틀린 답을 썼을 경우, 점수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많은 부모가 ‘실수도 실력’이라며 아이를 혼낸다. 다음에도 또 그러면 더 혼날 것이라 엄하게 구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부모들이 아이가 남에게 피해를 주는 실수를 했을 경우에는 얼마나 엄하게 혼내고 ‘실수도 잘못’이라고 알려주는지 궁금하다.
요즘은 오히려 잘못을 해도 ‘절대 먼저 사과하지 마’라고 가르치는 부모도 있다고 들었다. 잘못을 먼저 인정하는 순간, 그 잘못에 대한 책임을 모두 뒤집어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이 응당 받아야 할 벌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 그 부모가 갖은 애를 쓰는 내용의 뉴스를 접하면 특히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 부모는 심지어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한 잘못마저 '안 했다'라고, ‘잘 몰랐다’고 말하라고 가르치나 보다.
이런 세상에서, 작은 실수를 해도 남에게 피해를 주었을 때는 반드시 사과하라고 가르치는 것이 맞는 일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그렇게 사과를 하다가 상대방이
“그래? 미안하다고? 그럼 네 잘못이네. 그러니까 네가 책임져.”
라고 말한다면 참으로 난감해질 것이다. 자칫 책임을 모두 뒤집어쓸 수도 있다.
그럼에도 실수는 엄연한 잘못이고 사과해야 할 일이다. 이는 도의적인 기준에 의한 판단만은 아니다. 법률에 이미 '실수는 범죄'라고 정확히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형법
제266조(과실치상) ①과실로 인하여 사람의 신체를 상해에 이르게 한 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개정 1995. 12. 29.> ②제1항의 죄는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개정 1995. 12. 29.>
제267조(과실치사) 과실로 인하여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2년 이하의 금고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물론 피해자측 입장에서는 사람을 죽게 만든 '과실치사'의 형량은 터무니없이 적게 느껴진다. 심지어 무책임한 잘못을 '실수'로 부르는 것 조차 피해자에게는 엄청 화가 나는 일이다. 잘못해놓고, '실수'라고 하면 다인가?
요양원 관계자들이 엄마를 방치한 사건을 보는 내 관점도 '열심히 업무를 수행하다가 삐끗, 실수를 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열심히 일 할 마음조차 없었던, 책임감 전혀 없이 업무에 임했던, 실수보다 훨씬 더 큰 잘못'이다.
그럼에도 이런 경우 '업무상 과실치사'를 근거로 형사처벌을 내려달라는 고소를 진행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마저도 법률적 근거가 있는 것이 다행인 판이었다. 하지만 이 낮은 형량으로는 충분한 벌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 소송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손해배상 관련해서는 다음 글에 쓸 예정이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부모들이 '남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실수도 얼마나 중요한 잘못일 수 있는지' 가르쳤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과하게 해야 마땅하다. 남에게 피해를 준 실수에 비하면, 시험 문제 하나 틀린 것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뭣이 중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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