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린 마음이 삶을 지탱하는 방법

에필로그

by 조유리

얼마 전, 50대 인생 선배들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나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혹은 그 나이와 너무도 잘 어울리게 멋지게 사는 선배들이었다. 모두가 나에겐 롤모델이 되기에 충분한 분들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고민되는 점을 물으면 하나같이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건강하게 늙고 싶어요."

그중 한 분은 특히 자식에 대한 걱정을 도드라지게 드러냈다.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는 모습으로 늙고 싶은데, 물론 아이에게 기댈 생각도 없지만, 그래도 건강하지 못하면 제 마음과 달리 아이는 부담을 느낄 것 아니에요? 짐이 되지 않는 노년에 대한 걱정이 가장 크지요."


사실 엄마야 말로 누구에게 기대는 성격이 아니었다. 기대긴커녕 엄마가 우리 집안을 일으켜 냈는 걸. 우리 식구는 모두 엄마에게 기댔었다. 그랬던 엄마가 병에 걸리자, 우리는 엄마를 원망했다.

'차라리 주변에 많이 기대고 살지. 힘든 일 있으면 막 화도 내고 울부짖기도 하고 그러지. 오히려 그렇게 힘들다고 징징거리며 다른 사람 피곤하게 하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도 덜 받고 병도 덜 걸리던데!'

자식들은 그렇다. 정작 엄마가 화도 잘 내고 남 탓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 엄마를 원망했을 거면서, 아파서 우리를 힘들게 한다며 또다시 엄마 탓을 했다. 이래도 저래도 부모 탓이다. 자식은, 그렇다.


엄마를 보며, 또 엄마를 수발들러 다닌 병원과 요양원에서 다양한 병든 노년의 실체를 마주하며 나는 나의 미래에 대해 한 가지는 포기했다. '아프지 않기.'


난 요즘 운동도 열심히 하고 음식도 가려먹으며 건강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는 편이지만 그동안의 관찰로 봤을 때 병의 유무는 정말 본인의 희망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나 엄마의 병은 그랬다. 갑작스러운 혈압 상승으로 인한 뇌경색, 순간적인 낙상으로 인한 뇌출혈. 나름 건강 관리 잘하던 엄마에게도 원하지 않는 병이 생겼다. 그리고 그 병으로 고생한 것이, 자그마치 10년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요양 기관의 운영에 관심을 갖게 된다. 건강이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렇지만 자식에게 짐이 될 수는 없다면, 게다가 자식 없는 노인도 늘어난다면, 그렇다면 모든 노인들이 편안히 생활하고 인간적인 죽음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지탱해주는 사회적인 체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게 내 생각이다.




피고소인에 요양원의 대표와 원장 말고 요양보호사들 또한 포함시키면서 나는 가슴이 쓰렸다. 요양원 운영에 근본적인 잘못이 있다고 여긴 문제에 대해 말단의 보호사에게까지 책임을 물어야 할까, 마음이 약해졌다. 강자와 약자를 돈이 있고 없음, 윗사람과 아랫사람으로만 나눌 수만은 없지만 어쨌든 '내가 보기에는' 약자인 이들이 고소를 당해 힘들어할 거라는 생각만으로, 나의 가슴은 조여왔다.


그런데 나는 평소에, 어린아이를 유치원 선생에게 맡기고 눈치를 보는 부모처럼 '우리 엄마를 잘 돌봐달라'는 뜻으로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가끔은 따로 간식도 챙겨주곤 했다. 엄마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주는 것 외에는 뭔가 잔소리를 하고 싶어도 입을 다물고 꾹 참았었다. 그런 내가 엄마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보호사들에게 느낀 것은 '깊은 배신감'이었다. '나는 그동안 호구였구나' 싶은 자책감이었다. 그걸 생각하니 노인들에게 위험한 떡이라는 음식을 주고 곁에서 잘 살피지도 않은 보호사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엄마가 숨이 넘어갈 때까지 옆에서 모르고 있던 그들이 한없이 야속했다. 그래서 피고소인에서 그들을 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내 울분의 감정이 조금씩 망각되어 옅어진다면 난 요양보호사에 대한 소송을 취하할지 아닐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될 것 같다. 난 그런 사람이다. 그렇게 심정적으로 약해빠진 사람이다. 어쩌면 내가 이렇게 약한 사람이기에 엄마가 떠난 순간이 그렇듯 아팠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화가 났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화를 참지 못해 더 강한 마음을 먹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잘 버틸 수 있을지 스스로 믿지 못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변호사에게서, 피고소인 측에서, 경찰에서 연락이 올 때마다 침을 꿀꺽꿀꺽 삼키는 것은 그 한 번 한 번의 연락으로 엄마를 상기할 때마다 휘청거리지 않으려는 나의 몸부림이다.


즐겁게 살려고 한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세상을 느끼면서 살려고 한다. 세상에게 받은 상처로 인해 세상을 외면하다가는, 상처가 무서워 혼자 있다가는 나는 더 여려지고 심각해지고 그리고 무너질 것이다. 내 주변 모든 관계를 지지대 삼아, 엄마의 일이 모두 정리될 때까지 잘 걸어가 보려고 한다. 그 결심을 위해 일단 이 글을 마무리 지은 것을 감사하게 여긴다. 그리고 나에겐 아버지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가 남아있는데 이 글의 완성에 힘을 얻어 그 또한 성실히 써보려 한다. 당분간 나의 글과 사람들, 그것만이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 돼줄 듯하다. 마음 여린 사람은 이렇게 버틴다. 이렇게 삶을 지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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