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세상
엄마의 장례식은 1월 20일, 발인이 22일 오전이었다. 그리고 설 명절은 1월 24일부터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설 명절이 시작된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폐렴)’ 발생지인 중국 우한에서 근무하다 최근 귀국한 남성이 우한폐렴 확진환자로 확인됐다. 이로써 국내 우한폐렴 확진자가 1명에서 2명으로 늘어나 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스페셜 경제 1월 25일자
뉴스에서 '우한 페렴'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단어가 언급되기 시작했다. 엄마가 떡을 먹고 호흡이 가빠서 힘겨워하는데도 아무도 돌봐주지 않던 상황이 여실히 담긴 CCTV 영상을 무슨 무기라도 되는 양 고이 손에 들고 어느 방송국 어느 신문사에 보내서 요양원의 실태를 고발할까, 고민하던 나는 하루하루 지날 수록 스멀스멀 피어올라 온 세상의 뉴스를 다 덮어버리는 코로나19 소식에 허탈함을 감추지 못했다. 내 사연을 몇 군데 언론사에 제보성 기사 형태로 보내봤지만 채택되지 않았고 나의 사연 뿐 아니라 이 사회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싶어했던 억울한 많은 사연이 다 묻혀버리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다. 그런데 상황은 예상치 못하게 흘러갔다. 국내 첫 확진자가 확인된지 한 달여가 지난 시점, 뉴스에 '코로나'에 버금갈 정도로 많이 오르내린 단어가 있었으니 내가 뉴스에서 언급해주길 그렇게 바라던 단어, 바로 '요양원'이었다.
경북 봉화 노인의료복지시설인 푸른요양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무더기로 나와 방역 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6일 경북도와 봉화군에 따르면 현재 푸른요양원에 코로나19 확진자는 51명이다. 푸른요양원에는 입소자 56명, 종사자 42명, 주간보호센터 직원 18명 등 모두 116명이 있다. 이들 가운데 확진자가 44%에 이른다. - 연합뉴스 3월 6일자
요양원에 확진자가 많은 데 대해 언론에서는 '면역력이 약하고' '기저질환'이 있는 노인들의 '집단' 생활을 주 이유로 들었다. 내가 한 번쯤은 지적하고 싶었던 여러 요양기관의 '충분치 않은 침대 간격'이 아니나다를까 전염병을 퍼뜨리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언급되기도 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이날 "요양병원은 다인실이 많고 기저 질환이 있거나 고령인 분이 많아 감염 관리에 취약하다"고 했다. 고령 입원 환자 6~8명이 다인실에 몰려 있어 집단 감염에 취약한 고위험 시설이란 것이다. 환자 57명과 직원 18명이 무더기로 감염된 한사랑요양병원이 대표적 사례다. 이 병원의 1개 병실은 8~10개 병상이 좁은 간격을 두고 붙어 있는 형태라고 한다.
- 조선일보 3월 19일자
이렇게 요양기관에서의 단체 감염 사건이 다수 발생하자, 여러 요양원들은 직계 가족인 보호자를 비롯한 외부인 면회를 전면 금지하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예방적 코호트 격리'를 한 것이다. 그러자 부모의 안부가 궁금한 보호자들은 애가 타들어갔다. 요양기관에 부모를 맡긴 자식들이 다 나몰라라 한다는 것은 큰 오산이다. 오히려 정기적으로 요양기관에 들러 부모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안부를 살핀다. 때로는 요양보호사나 간병인의 간호가 마뜩잖아서라도 자주 찾아가는 보호자도 많다. 그런 자식들에게 이런 면회 금지 조치는 답답하기만 했다. 시인 최영미 씨도 기고를 통해 비슷한 심경을 토로했다.
경기도에서 노인요양시설, 정신요양기관 등에 대해 2주간 예방적 코호트 격리(동일 집단 격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집단 감염 위험이 높은 노인생활시설에 선제적 보호가 필요하다고 내린 조치인데, 요양병원에 어머니를 둔 보호자로서 걱정이 앞선다.
(중략 : 요양원 음식이 부실해서 자주 도시락을 싸서 어머니에게 가는데, 코호트 격리 때문에 찾아가지 못한다는 내용) 사정이 이런데, 바이러스에 감염되지도 않은 노인들을 2주간이나 격리하겠다니. 누가 옆에서 권하지 않으면 밥은커녕 입도 벌리지 않는 치매환자도 있는데, 간병인 혼자 5명이나 되는 할머니들의 식사 시중을 들 수는 없다. (중략) 요양병원에서 (정부의 방침이라며) 면회를 금지해 열흘 넘게 어머니 얼굴을 보지 못했다. 도시락을 전해주는 직원에게 물어보면 괜찮다고 하지만 당신의 상태를 내 눈으로 확인하지 못하니 불안할 수 밖에.
- 헤럴드 경제 3월 3일자
아무리 감염병에 대한 예방적 조치라고 하더라도 무조건 외부인 출입을 금하고 면회 금지 조치를 취하기에는, 요양기관 환자들은 매우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 필자의 요점이다. 보호자까지 동원되어 살뜰히 챙겨주고 충실히 영양 공급을 해주어야 할 노인 환자들에게 무조건 외부 접촉을 막고 요양보호사들에게만 환자들을 맡기는 격리 조치는 자칫 노인들의 면역력 약화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야기해 오히려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그렇게 온전한 '돌봄'이 우선인지 일단 '감염되지 않는 것'이 우선인지 묻는다면 나 또한 후자라고 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감염병은 그만큼 골치아픈 것이다.
예방적인 면회 금지 조치만으로도 이렇듯 안타까운게 보호자의 심정인데, 요양기관에 있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상급병원으로 이송되는 부모를 바라보는 자식들의 마음은 정말 애닯다. 음압시설에 둘러싸여 이송되는 부모를 2미터 넘는 거리에서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자식의 애타는 눈물은 삼상지탄([參商之歎)이 따로 없다.
https://www.youtube.com/watch?v=LJnacl4hZFs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거나 치매가 있어서 돌발 행동을 하는 노인이 코로나에 걸려 격리병동에 입원되면 사실 간호사와 의사만으로는 간병이 불가능하다. 그들의 일반 생활을 돌볼 요양보호사나 간병인이 별도로 필요한데, 그런 돌봄인력을 구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고 그러자면 비용도 더 많이 든다. 혼자 거동이 가능한 젊은 사람이 감염되는 것보다 사회적 노력과 비용이 훨씬 더 드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라도, 노인들 평소 건강 유지를 위해 가족과 자신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보면 부부가 함께 감염되어 같은 병원에 있게 된 아래 사례는, 차라리 다행이라 말해야 할까?
https://www.youtube.com/watch?v=hyndc31iozE
내가 알리고 싶었던 '요양원 환경 개선과 철저한 관리 감독'에 대한 주제와는 조금은 다른 방향이지만 어쨌든 이번 기회를 통해 전염병 감염의 최전선에 놓인 노인들의 취약한 실태가 수면 위로 더 드러났다. 하지만 '요양원의 집단 생활이 감염을 불렀다'는 실태보도 만으로 끝나면 결국 대중들은 요양기관은 '절대 가면 안 되는 곳'으로만 인식하게 되고 환경과 제도 개선에 대한 필요성 절감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제 가족과는 마지막이구나 생각했는데 다시 아들을 만나니 말할 수 없게 좋구나."
경북 청도군 자택에서 격리 중인 황영주(97) 할머니의 아들 홍효원(73)씨는 어머니의 퇴원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황 할머니는 1924년생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완치된 사람 가운데 국내 최고령이다.
(중략) 할머니는 13일 동안 치료 끝에 2차례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아 25일 집으로 돌아왔다. 퇴원한 다음 날 집에서 한 첫 식사는 확진 전과 차이 없다고 한다. 오후에도 평소처럼 식사하고 위장장애 관련 약을 먹고 잠이 들 정도로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다. 할머니는 확진 판정 전 친자식 못지않게 자신을 돌봐주던 주간보호센터 식구들을 다시 만나는 것을 고대한다고 아들은 전했다.
- 연합뉴스 3월 26일자
그런 면에서 최고령자가 완치됐다는 이 반가운 뉴스가 조금은 다른 앵글로 쓰여졌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황 할머니는 주간보호시설에 다녔고 24시간 내내 머무는 곳은 아니라고 해도 이 또한 요양기관이다. 그 곳에서의 즐거운 생활을 상기하며 다시 살고 싶어했을만큼 이 곳의 생활은 할머니에게 큰 기쁨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최고령자의 완치'라는 팩트 뿐 아니라 이 주간보호시설의 모범적인 돌봄 서비스에 대해 좀 더 보도했다면 요양기관이라고 다 같지 않음을, 이렇게 잘 운영하면 고령자 노인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음이 알려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난 9일 폴리티코는 폭발적으로 증가한 코로나19 환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의료 시스템 탓에 의료진들이 치료 대상을 선별해야 하는 '윤리적 선택 기로'에 놓였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현재 이탈리아에선 기저질환을 가진 고령의 환자보다 집중 치료를 통해 완치될 가능성이 큰 '건강한 환자'들에게 진료가 집중되고 있다.
- 중앙일보 3월 13일자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스페인에서 노인들이 양로원이나 요양시설에서 버려진 채 발견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부는 사망한 채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 경향신문 3월 24일자
코로나19에 휘둘리고 있는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분명한 '노인차별'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노인 복지와 존엄한 죽음을 권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들은 하루 수 백명의 사망자를 보며 무기력하게 주저앉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트위터에는 일본 국적인 것으로 추정되는 한 누리꾼이 두 장의 일러스트를 게시했다. 이 일러스트에는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사람들이 수십 명의 노인들을 떠받치며 힘겨워하다 노인들이 사라지자 두 손을 치켜들며 기뻐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 일러스트에는 노인들의 머리 위에 사망한 것을 뜻하는 천사의 고리와 날개가 표현되어 있으며,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보이는 바이러스들이 노인들의 주변에 떠 있다. 상대적으로 코로나19에 노출되기 쉬운 노인들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일러스트를 올린 누리꾼은 일본어로 "빨리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 게시글은 순식간에 1만 5000여 건 이상 재공유됐으며, 7만 건 이상의 '좋아요'를 받았다. 이 게시글에 일부 누리꾼들은 "이 정도의 글은 너무 심하다"며 자성의 목소리를 냈지만, 몇몇 누리꾼들은 "(노인이 없으면)국가가 좋아지는 것은 사실"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 누리꾼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구세주"라는 답글을 남겨 500건의 '좋아요'를 받았다.
- 머니 투데이 3월 23일자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은가. '노인이 떠나면 세상이 좋아진다'는 발상의 잔인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타인의 상황이 내 상황이 될 수 있음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란 참 잔인하고도 어리석은 동물이다.
이런 전세계의 모습에 비하면, 모든 환자를 성심성의껏 치료해주고 있는 우리나라는 그나마 나은 것인가? 나는 엄마의 사건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노인 복지 제도를 한탄하고 개선을 요구하려 했는데, 이런 시국에서는 그런 시도 조차 사치스러운 것인가?
엄마가 지금까지 요양원에 있었다면 우리 가족 또한 엄마가 감염될까봐 불안에 떨었을 것이다. 만약 엄마가 한 달이라도 늦게 떠났다면 다른 코로나19 사망자처럼 장례도 제대로 못 치르고 조문객도 못 받고 최소한의 절차로 신속히 화장하여 가족을 떠나보내야 했을 것이다. 최근의 뉴스를 보며 혼란스러워졌다. 엄마가 이 사태 이전에 떠난 것을, 전염병에 걸리지 않고 떠난 것을 다행이라 여겨야 할까?
아닌데, 엄마 또한 결코 편안히 간 것이 아닌데. 우리 가족에겐 억울함도 남았는데. '다행'이라 인식되면 안 되는데. 아, 비탄스러운 이 시국, 이래저리 심경은 복잡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