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연명의료의향서, 써두면 마냥 좋을까

제도에 대한 공부

by 조유리

엄마의 사고가 있기 한 달쯤 전, 나는 아버지를 모시고 건강보험공단에 가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 아버지는 당신의 마지막 순간에, 의미 없는 연명 치료를 거부하고 싶어 하셨다. 이것을 본인이 정해두지 않으면 환자 당사자의 의사도 모른 채 치료 여부를 두고 힘겨운 갈등을 해야 한다. 자식 된 입장에서 치료를 안 한다는 것 자체가 불효라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엄마는 이런 사전 의향서를 작성하지 못한 채 온전한 판단을 할 수 없는 병을 앓았고 우리는 엄마 사고 직후, 연명치료에 대한 머리 아픈 고민을 하며 그것을 안타깝게 여겼었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오히려 엄마가 이 의향서를 써두지 않은 것이 다행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만약 엄마가 의향서를 써두었다면 사고 직후 심폐소생술도 받지 않고 인공호흡기도 달지 못하고 그 날로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 갑작스러운 사고가 일어난 상황에서 환자가 거의 임종에 다다랐다고 의사가 판단하면 심폐소생술도 하지 않고 가족을 보내야 하는 것이 바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제도다.


우리 가족은 사고가 난 후 장례를 치르기까지의 5일 동안 매 순간 연명치료에 대한 갈등에 죽을 만큼 힘겨웠지만 한편으로는 이 기간이 있었기에 엄마를 보내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엄마는 의향서를 써두지 않았기에 약간의 연명치료를 하게 되었고 그 기간에 우리 세 식구는 엄마 곁을 온전히 지켰으며 공식적으로, 엄마는 가족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 길을 갔다. 반대의 경우를 상상해보니 어떤 면에서는 이 의향서가 헛된 희망이라도 붙잡고 싶은 보호자의 입장을 무시하고 단 하나의 마지막 치료조차 허락하지 않는 야멸찬 가로막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처음부터 호흡기 부착을 하지 않는 것이 나았을 거라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 자가호흡이 안되는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장착한 경우 이후 가족이 연명치료 포기 의사를 밝혀도 환자가 자연히 임종하기 전까지는 호흡기를 제거할 수 없다. 이러한 인공호흡기 제거가 '아직은' 목숨이 붙어 있는 환자로부터 생명을 빼앗는 행위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1997년 서울보라매병원에서 의사가 의학적 판단이 아닌 보호자의 의사만 묻고 환자의 호흡기를 제거했다가 살인방조죄 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 이후 의사들은 호흡기 제거에 대해 상당히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며칠을 버티던 우리가 결국 '연명치료 포기 동의서'에 서명을 한 이후에도 엄마에게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지는 않았다. 투여하던 혈압상승제(승압제)만 중단했을 뿐. 그랬는데도 바로 떠날 만큼, 엄마는 위중한 상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급격히 위독해진 부모를 갑자기 보내기가 안타까워 호흡기를 장착했다가 이후 기약 없이 무의미한 연명을 이어가게 되어 온 가족이 고통을 감내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써두려는 것은 이런 상황을 방지하려는 이유다. 이 경우 호흡기마저 제거하기 위해서는 더 복잡한 절차를 거쳐 확실한 '뇌사판정'을 받아야 한다.


- 환자가 의향서를 작성해두었어도 이를 반영하지 않는 병원도 있다.


입원해있는 병원에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되어있어야 이 사전의향서의 내용을 반영해서 연명의료중단등 결정을 이행할 수 있다. 보통 윤리위원회는 흔히 '큰 병원'이라 부르는 상급병원이나 종합병원에 설치되어 있다. 그렇지 않은 병원이라면 의향서를 써두었다고 하더라도 그 의향서를 기준으로 연명치료여부를 결정하지 않는다.


- 또 다른 동의서, DNR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2>의 14회에는 DNR 동의서를 작성해둔 환자를 두고 심폐소생술을 못해서 안타까워하던 의사가 이 사항을 무시하고 다시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는 장면이 그려진다. 실제로 요양병원이나 임종기 환자의 중환자실 입원시에 병원측에서 요구하는 DNR(Do Not Resuscitate) 동의서는 '심폐소생술 거부'의 내용을 담은 서류다. 하지만 앞서 말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는 다른 것이고 주로 임종에 다다른 환자의 보호자에게 병원측에서 서명을 받는다. 내가 엄마 사고가 난지 3일 되었을 때 더 이상 엄마가 깨어나지 못할 것 같다는 판단을 하고 온 가족이 모여 작성한 '연명치료 포기 동의서'가 그것이다.


드라마에서 의사들이 DNR을 거스르고 심폐소생술을 한 것은 환자의 사전 의사를 무시한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든 DNR 동의서든 의사가 환자에 대해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을 한 후에야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 참조 :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www.LST.g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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