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소년, 아니 노인

독거하지만 독거노인은 아닌, 아버지

by 조유리

낮 시간에 아버지와의 통화가 잘 안 된 것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엄마가 아프고 난 후 어느 순간부터 서서히 낮과 밤이 바뀌었다.

“새벽에 잠이 깨는 걸 날보고 어쩌라고.”

잠을 푹 주무시라는 잔소리를 하면 이렇게 항변하시고는 자식들이 방문한 날에도 낮에 이불을 펴고 눕기 십상이었다. 나와 아이들은 점심 식사 시간에 맞춰 아버지를 보러 갔다가도 피곤해하는 아버지가 낮잠을 잘 수 있도록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엄마가 한창 주간보호센터에 다닐 때였다. 저녁 5시경 센터 원장이 나에게 전화해서 아버지의 안부를 묻는 일이 빈번했었다.

“지금, 댁 앞에서 어머님 내려드리고 가야 하는데, 아버님이 안 나오세요. 아버님에게 무슨 일 있으신 걸까요?”

전화를 받은 나는 때로 우리 집에 있다가, 시댁에 있다가 당장 친정으로 가보지도 못하면서 발만 동동 구르곤 했다. 나라고 별 수 있나, 안 받는 전화를 끊고, 다시 걸어보고, 다시 끊고 또다시 거는 일을 한 열 번쯤 반복하고 센터 담당자에게 친정집 비밀번호를 알려줄까 생각하고 있을 때쯤에서야 아버지는 깊은 낮잠에서 깨어난 듯 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응, 응? 지금 엄마가 밖에 왔다고? 응? 알았다!”

이불속에 웅크려있던 무거운 몸을 이끌고 주섬주섬 옷을 입고 슬리퍼를 끌고 엄마를 마중 나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졌다. 애처로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40이 넘은 나이가 되자, 나는 술을 마시고 잔 날이면 꼭 새벽 3~4시경 잠이 깨졌다. 때로 잠을 잘 자고 싶어서 술을 마신 건데 새벽에 깨서 도통 잠이 안 오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할 수 없이 거실에서 그야말로 달밤의 체조를 해가며 에너지를 소비한 다음에서야 다시 잠에 들고, 그 후 다시 아침에 잠을 깨면 피로도는 더 심했다.


그런 상황이 몇 번 반복되고 나서 문득 내가 아버지의 체질을 닮았다면 아버지가 새벽에 깨는 것도 나와 비슷한 이유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주 중 이틀은 소주 한 병 이상을 드시는 분이다. 그런 아버지도 술 마신 다음날 새벽에 잠이 깨졌을 것이다. 하루의 활동을 위해 다시 잠을 자려고 애쓰는 나와 달리 아버지는 계속 깨어 있다가 낮이 되어서야 다시 이불에 몸을 맡기시는 패턴이 고착화되었다.


그래서 낮에 전화를 잘 안 받으시던 아버지는 몇 번이고 나를 걱정시켰다. 그러다가 통화가 돼서 별 일 없냐고 물으면 특유의 능청스러운 목소리로

“응, 아직은, 별 일 없다! 흐흐”라고 농처럼 대답하셨다.

“어휴, 양치기 소년이 따로 없어요.”라는 핀잔으로 전화를 끊는 일을 반복하며, 나는 서서히 아버지가 전화를 잘 안 받는 일에 '그러려니' 익숙해져 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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