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하지만 '독거노인'은 아닌

독거하지만 독거노인은 아닌, 아버지

by 조유리

독거노인.

그 자체만으로 연민이 느껴지는 이 단어가 과연 아버지에게도 해당되는지 종종 생각해보곤 했었다.


아버지와 엄마는 큰 사치는 못 부려도 매일 당신들의 생활을 유지해 나갈 정도의 경제력은 되었다. 다 젊은 시절 고생한 결과였다. 엄마가 병에 걸리지 않아 치료비와 요양원 비용이 들지 않았다면 보다 여유롭게 지낼 수는 있었을 거다.


자식들은 차로 1~2시간 거리에 살고 있으며 전화를 자주 하고 1, 2주 간격으로 찾아왔다. 혼자 지내는 보통의 남성 노인에게 가장 큰 골칫거리일 수 있는 삼시 세 끼의 해결이 아버지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요리에 흥미가 있는 아버지는 TV를 보다가도 관심 가는 레시피를 적어두고 그대로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런 아버지에게 마흔이 넘은 딸인 내가 오히려 반찬을 얻어오는 적도 많았다.


오전에는 주민센터의 헬스클럽에서 두 시간 동안 운동하는 일상을 10년도 넘게 유지하고 있어 건강 또한 웬만한 편이었다.사회성이 좋은 성격은 아닌지라 친구가 많지는 않지만 예전 장사하던 시절부터 알고 지낸 동료와 점심 약속이 생기면 경기남부에서 서울 중심가로 지하철을 타고 다녀오는 일쯤은 너끈히 해냈다.


아버지가 이만큼 온전하게 잘 지내서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혼자 거주하는 아버지에게 '혼자 거주한다'는 뜻을 가진 '독거노인'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 않았던 것은 사실 내 허영심 때문이었을 거다. 어린 시절을 별 어려움 없이 보내며 나도 모르게 '여러모로 보통은 되는 중산층의 행복한 가정'으로 우리 집을 평가하며 살아왔던 것 같다. 그런데 10년간 치매 엄마의 각종 이상 행동 앞에서 자식으로 가지면 안 될 몹쓸 창피함과 부끄러움을 어쩔 수 없이 맞이하던 순간 나는 느꼈다. 그동안 내가 우리 가정을 평범하다고, 계속 그럴 거라고 생각한 것은 어쩌면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에 대한 오만함이었으며 '나와 우리 가족에게는 남부끄러울만한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 여긴 자만심이었다는 것을. 아마도 나는 그런 맥락으로, 경제적으로나 건강으로나 큰 문제는 없는 아버지에게 듣기만 해도 측은한 '독거노인'이라는 단어는 절대 쓰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걸 인정하기 싫은 허영심때문에, 그래서 난 아버지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나 보다.




본격적으로 아버지를 걱정하기 시작한 것은 엄마가 떠난 직후였다.

장례 후가 바로 설 명절이었다. 나는 시어머님께 양해를 구하고 남편과 아이들만 시댁에 보낸 뒤 친정에 남았다. 아버지는 왜 안 가냐고 물었다.

"그냥, 아버지 혼자잖아요."

"야, 내가 언제는 혼자가 아니었냐?"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동안 엄마가 요양원에 있었기에 아버지는 어차피 집에 혼자였다. 아버지가 혼자 먹고 자는 생활에 익숙하다는 것은 한편 위안이 되었다. 그럼에도 혼자 집에서 배우자가 떠난 데 대한 회한을 깊이 느끼고 있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버지 곁에 있으면서 엄마의 사망신고를 하기 위해 친정집 지역의 주민센터에 들렀을 때, 문득 노인복지 상담 창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혹시 혼자 사는 노인에 대한 지자체의 복지 제도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어떤 지역에서는 사회복지사가 종종 혼자 사는 노인의 집에 전화도 하고 밑반찬을 만들어 갖다 주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듯 해서다. 주민센터 직원은 나에게 아버지가 경제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태냐고 물었다. 그건 아니라고 하니 기초생활법 수급 대상이나 차상위계층이 아니면 특별한 지원 제도는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때도 난 혼자 사는 노인에 대한 복지 제도가 전무함에 한탄하기보다는 오히려 우리 아버지는 그런 지원의 대상이 되지 않은, 그래도 여유가 좀 있는 상태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받은 것 같아 오만한 흐뭇함을 느끼며 발길을 돌렸던 것 같다. 혼자 사는 노인은 혼자산다는 그 자체만으로 취약 계층임을, 나는 그때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아버지 집에 가정용 CCTV 시스템을 들여놓고 나와 오빠가 계속 모니터링을 해볼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일단 아버지가 싫어하실 것 같았고 그즈음 뉴스에서 그런 시스템에 엉뚱한 사람들이 해킹을 해서 몰카처럼 집 광경을 보게 된다거나 모니터링할 때 정작 보여야 할 우리 집이 안 보이고 다른 집 장면이 보이는 등의 오류가 생긴다는 기사를 접했다.

사람보다 기계를 더 못 미더워하는 아날로그적 감성의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다 해보다가 결국, 그냥 아버지에게 자주 전화를 하고 찾아뵈어야겠다는 결론으로 돌아왔다. 원래 혼자 잘 생활하던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배우자를 잃고 상심한 채 혼자 있을 한 노인에 대한 걱정을 눌러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내 아버지는 '남의 도움이 필요한, 불쌍한' 독거노인은 아니라고, 아니어야 한다고 계속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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