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하지만 독거노인은 아닌, 아버지
"넌 그래서, 이사는 오는 거냐?"
주말 하루 날을 잡아 식사를 하러 갔을 때 아버지가 먼저 물으셨다.
전 해 여름, 나의 큰 아이는 6학년으로, 중학교 입학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오랫동안 관심을 두고 있던 혁신중학교가 마침 친정 가까이에 있었는데 그 학교 전형의 1차 추첨 경쟁률은 10대 1에 이르렀다. '설마 되겠어?'라는 마음으로 응시한 이 학교에 아이는 예상치 못하게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때가 7월경이었고 이후 우리 가족은 살고 있던 지역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의 이 학교를 어떻게 다닐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던 터였다.
"아직 못 정했는데, 아마도 이사는 올 거예요. 언제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친정 근처 학교에 아이가 응시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내 염두에는 부모님이 있었다. 아이가 그 학교에 합격하여 친정 옆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면 더욱 노쇠해져 가는 엄마를 보러 요양원에 더 자주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행정 처리, 은행 업무 등을 혼자 하기 어려워하고 정기적으로 병원 가야 할 일도 잦아지는 아버지를 평일에 찾아가 돕는 것도 더 쉬워질 것이었다. 나에게 아이의 그 학교 합격은 '남편과 아이에게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내 부모를 챙기는' 명분이 되는, 일종의 '허가증' 취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 너희가 이 동네로 이사 오면 내가 이 집을 팔고 너희랑 같이 살면 어떻겠냐?"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내가 진정으로 놀랐나보다. 나는 아마도 아버지 앞에서 표정관리조차 잘 못하고 그 놀라는 티를 얼굴 전면에 다 드러냈던 것 같다. 예전부터, 자식들하고는 절대로 같이 살지 않겠다고 종종 말하던 아버지였다. 그게 자식들을 위해서건 당신을 위해서건 서로 편할 거란 이유에서였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나는 아버지와 엄마가 걱정되어 자주 찾아뵙고 자주 연락하는, 충분히 부모에게 애틋한 자식이었지만 평소 '물리적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좋던 관계도 나빠진다'는 생각에 집착하는 사람이었다. 그 생각이 객관적으로 옳은지 그른지는 상관없었다. 나란 사람은 그랬다. 관계가 어그러지는 데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 스스로 쌓은 마음의 벽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저 부모님을 모시기 싫은 불효자의 핑계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나는 부모 자식 간도, 부부간도 너무 가깝게 붙어 있다 보면 설레고 애틋하고 감사한 마음을 서로에 대한 지겨움이 덮어버릴 거라 굳게 믿는 사람이었다. 이렇다 보니 포커페이스를 못하는 내가 단박에 아버지에게 싫은 내색을 하고 말았다.
"아버지, 자식들하고는 같이 안 사신다면서요?"
"야, 자식들하고는 같이 못 살아도 손녀들하고는 같이 살 수 있지 않겠냐?"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농담인지 억지인지 모를 말을 하는 아버지를 나는 뚫어져라 쳐다봤다. 한층 더 당황한 내 입에서는 점점 더 강한 거부의 말만 나오고 있었다.
"에이, 근데 아버지, 같이 살면 아버지도 불편하실 거예요. 그리고 아버지랑 우리 네 식구 같이 살려면 아파트도 큰 걸로 구해야 할 텐데, 큰 아파트들은 나중에 잘 안 팔려요. 그냥, 우리가 이 동네로 이사 오면 같은 아파트 단지에, 옆 집에 붙어사는 걸로 생각해봐요."
이건 정말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이가 그 학교에 지원할 때 난 충분히 부모님을 고려하였고, 아이가 합격했을 때도 친정 가까이 올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기뻐했다. 또 친정 옆으로 이사를 오면, 어디가 됐든 아버지와 가까이에 사는 계획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집에 같이 사는 건 아니라고, 그건 맞지 않는다고 여겼다. 내 입에서는 이런 생각들이 담긴 아주 솔직한 말이 줄줄줄 나오고 있었다.
내 말을 들은 아버지는 아무 말도 안 하셨다. 얼굴에도 아무 표정도 없었다. 그렇게 서운해하시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 대화는 거기서 끝나버렸고 나는 우리 집으로 돌아오면서 남편에게 말했다.
"그렇게 자식과는 같이 살지 않겠다고 하시더니, 아버지도 많이 늙으셨나 보네. 마음이 짠하다. 그래도, 옆집이면 몰라도 한 집에 같이 사는 건 좀 아니잖아? 장인어른과 같이 살면 당신도 불편할 테고, 딸내미들도 점점 커갈 텐데 할아버지와 한 집에 있는 건 좀…. 한 집에서 살면 있던 정도 떨어질 거야. 거리를 좀 두고 있어야 그래도 좀 애틋하지, 안 그래?"
애틋함. 그 애틋함에 집착한 나머지 나는 이후에도 아버지와의 합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리고 연말쯤, 이사를 계획하다가 갑자기 엄마가 떠났고, 이후엔 코로나 때문에 더 미뤄진 다음, 결국 친정이 있는 지역으로 이사를 결정해서 새 집 계약을 했을 때, 아버지의 그 사건이 일어났다.
나는 지금 아이의 학교 근처 친정 동네로 이사를 한 상태지만, 이제 아버지마저 나를 떠나고 없다.
가만히 생각해본다. 지금이라도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과연 나는 아버지와 함께 살기로 결정하려나. 글쎄, 그럴까? 아버지를 혼자 둔 것에 통탄의 후회를 했던 순간에도 시간을 돌리면 아버지와 함께 사는 결정을 했을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10여 년 간 아팠던 엄마, 그 엄마를 돌보느라 애쓴 아버지를 안쓰럽게 보면서도 절대 내가 직접 부모를 모실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내가 그저 그런 자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틋함이 뭐라고, 그놈의 애틋함을 지키자고 외로워하던 아버지를 계속 혼자 두었다는 생각은 그저 얼마 전 부모를 잃은 자식의 통한의 자책이지만 나는 안다. 자식은 그토록 이기적이라는 걸. 아니, 나라는 자식이, 그렇게 이기적이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