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랬을까

누구의 잘못일까

by 조유리

유난히도 밝은 얼굴의 아버지를 보고 온 뒤 항상 내 마음을 짓누르던 아버지에 대한 걱정이 한 시름 덜어진 반면 그 날부터 나는 몸져누울 정도로 아팠다. 그동안의 피로와 커피로 인한 소화불량이 극에 달했는지, 속이 더부룩하고 메스껍고 그 와중에 장염 기운도 있어서 몸은 탈진하듯 늘어졌다. 소화불량은 나의 오랜 고질병이지만 그때마다 나름의 해결책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계속 해결이 안 되고 너무 심했다. 약을 먹고, 손가락을 따고, 체조를 하고 마사지도 받아보았지만 도무지 낫지 않았다. 아버지를 보고 온 것이 금요일. 주말이 지나서까지 온통 내 소화불량이 회복되기만을 바라며 나무늘보처럼 늘어져서 며칠을 보냈다.


그 와중에 그동안 연락이 뜸하던 오빠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으신다는 거다.

아버지가 통화가 안 된 게 한두 번인가. 이제 안 속을래.

"내가 엊그제 아버지 쌩쌩한 모습 보고 왔어. 별 일 없으실 거야. 요새 맨날 밤낮이 바뀌어 계셔."

몸 상태가 안 좋아 만사가 귀찮던 나는 오빠에게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오빠는 이번 주말에 아버지를 찾아뵐까 하다가 마침 다음 주 화요일쯤 그 근처에 갈 일이 있어 그때 갈까 고민 중이라고 했다. 나는 안심시키며 말했다.

"오빠, 그럼 다음 주에 가. 아버지 괜찮으실 거야. 어제 내가 보고 왔는데 얼굴 좋아 보였어. 나도 다음 주 수요일에는 집 계약하러 그 동네 가니까 그때 들를게."

"그래, 알았다."

평소 아버지 근황을 더 잘 아는 동생의 말에 오빠는 그냥 수긍하고 말았다.


월요일 경 오빠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아버지 전화기가 꺼져있네."

나는 그때도 오빠를 안심시켰다.

"아버지는 마트 가실 때 전화기 꺼진 것도 모르고 다니실 때도 있어. 괜찮을 거야. 내일 오빠 간다며?"

"응. 그런데 내일 일 보고 저녁 때나 갈 것 같아."

"응, 그래. 그때 가도 괜찮을 거야. 나도 수요일에는 갈 거야. "


'어제까지 괜찮았다' '방금까지 아무 일 없었다'는 이유를 대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단 몇 초 간격으로도 사건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인생인 것을 대체 어제 괜찮았고, 방금 전까지 괜찮았던 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런데 나는 며칠 전 보고 온 아버지의 얼굴이 유난히도 밝았다는 이유만으로, 이제 더 이상 아버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처럼 기분이 홀가분했었다. 아마도 평소처럼 이불속에서 무기력하게 있던 아버지를 보고 왔다면 그렇게 태평하진 않았을 것 같다. 돌아보면 이 며칠은 최근 몇 년을 통틀어 아버지에 대해 내가 가장 방심했던 기간이었다. 왜 그랬을까, 무엇에 홀린 게 아니었을까? 내 몸 상태가 안 좋았던 걸 감안하더라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태도였다.

'뭐가 걱정이야, 아버지 아직 건강하시고, 이제 곧 나는 아버지 곁으로 이사 가는데. 어서 빨리 내 몸이나 챙겨서 제 컨디션을 찾아야겠어.'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수요일 새벽, 전화벨이 울렸다. 오빠였다.


"유리야, 나 지금 아버지 모시고 응급실이다."


화들짝 잠이 깼다. 제대로 내용을 듣기도 전에, 머릿속에선 벌써 한 마디가 되뇌어지고 있었다.

'아, 내가 틀렸어. 그동안 내가 틀렸던거구나.'

그저 그 시간에 오빠가 내게 아버지에 관한 긴급한 전화를 걸었다는 자체만으로도 나는 문득 그 며칠 동안의 내 태도가 안심이 아니라 무심이었음을 순간적으로 깨닫고 후회를 시작했다. 내가 틀렸었다. 그랬었다.


"내가 어젯밤에 도착했을 때 집은 엉망이고 아버지가 쓰러져 계셨어. 아무래도 넘어져서 어디엔가 머리를 심하게 부딪친 듯 해. 그런데 그게, 며칠 된 것 같다. 몇 끼 못 드신 것처럼 말라서는 힘 없이 누워 계셨어."


이어진 오빠의 말에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잠깐 어찔하며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했었던 것도 같다. 아버지가, 내 아버지가 며칠 동안이나 방치된 채 쓰러져 있었다고?


"의식은? 어때? 응?"

"의식은 있어. 날 알아보시기도 하고. 근데 좀 정신이 없으셔."


의식이 있다는 말에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였다.


"그래서, 의사가 뭐래?"

"뇌 수술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좀 더 검사 결과를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내가 지금 갈게."


라고 내뱉고 보니, 그날 오전 이사 갈 집의 정식 계약을 하기로 한 것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응급실에는 보호자가 한 명 밖에 못 들어간다는 것도. 계약을 미루고 아버지를 보러 달려가야 할 것 같았지만 어렵게 잡은 집 계약 날짜 또한 조정하기 힘들었다. 집주인이 그때밖에 안 된다고 해서 몇 번의 조정 끝에 잡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빠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재차 아버지 상태를 묻고는, 빨리 계약을 끝낸 후에 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오빠는 아버진 좀 안정되었으니 일을 보고 천천히 오라고 했다.


아버지에 대한 걱정으로 조바심이 나는 만큼이나, 이사에 대한 마음이 더 급해졌다. 아버지가 앞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로 지내야 한다면 더더욱 빨리 그 곁으로 가야 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계약을 진행하는 도중, 아버지를 전원시킨다는 오빠의 연락을 받았다.


"아버지는 뇌수술이 필요하긴 하지만 뇌 안의 부종 때문에 조금 더 지켜보다가 수술을 결정해야 한대. 그런데 여기 A 병원 중환자실에 자리가 없어서, 이곳저곳 알아보다가 B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B 병원은 다름 아닌 얼마 전 엄마를 떠나보낸 곳이었다. 주변 대학 병원에 병상이 없을 때 주로 환자를 보내게 되는 중형 병원이다. 불과 몇 달 후 아버지를 같은 병원에 입원시키다니 난 매우 몹쓸 자식이 된 기분이었다. 떠나간 엄마에게 면목이 없었다.


계약을 마치고 남편과 함께 B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마침 오빠와 아버지는 응급실에서 나와 중환자실로 이동하는 병원 엘리베이터에 타려 하고 있었다. 이동식 침대에 누워 있는 아버지 얼굴에 진한 피멍이 들어있었다.

"어휴, 도대체 어떻게 넘어졌길래.... 어휴, 참."

나는 울먹거리며 한탄을 했다. 오빠를 부르고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려 했지만 동승한 간호사가 저지했다.

"보호자는 한 분만 가실 수 있습니다."

나와 남편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뒤로 물러섰다. 엄마를 입원시켰을 때와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코로나 때문에 온 병원이 긴장 상태인 듯했다.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기다린 지 얼마 뒤 아버지를 중환자실에 입원시킨 오빠가 지친 표정으로 내 옆에 앉았다.
"휴우... 집이 엉망이더라.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난 식상하게도, 얼굴을 감싸며 또다시 이런 말을 뱉었다.

"아니, 정말, 금요일에 내가 갔을 때, 정말 컨디션 최고로 보였는데. 그래서 내가 주말 내내 연락이 안 돼도 걱정을 안 했던 건데. 아니, 정말, 왜, 왜 그랬을까!"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고 기가 막히다는 말을 그렇게 금요일의 아버지 얼굴을 다시 상기하는 방법으로밖에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화가 안 될 때 가 볼걸, 가 볼걸... 후회는 이미 늦었다. 자신도 참담한 오빠가 나를 위로했다.

"나도 주말에 오려다가 안 왔는데... 어쨌든, 너무 자책하지 마라."


면회가 금지된 중환자실에 아버지를 두고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버지 얼굴도 제대로 못 본 나는 애간장이 타고 가슴이 녹아내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한 동안 앉아있었다.




병원에서 잠시 한 숨 돌린 우리는 아버지 집으로 갔다. 현관문을 연 나는 또 한 번, 소스라치게 놀랐다.

온갖 물건들이 흐트러져 있었다. 아버지가 한 번 넘어져서 다친 다음, 이후에도 안 좋은 몸을 이끌고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것 같았다. 더 희한한 것은 아버지가 그 몸으로 생활한 흔적이 보였다는 것이다. 음식을 하다 만 흔적, 컴퓨터로 무언가 보고 있었던 것 같은 화면, 옷을 입으려 했던 것 같은 자취. 이렇게 움직일 수 있었는데 왜 전화를 안 했을까. 왜, 전화할 생각은 못하셨을까. 머리를 다쳐서 정신이 없었던 걸까? 아버진 대체 어떤 몸과 마음, 정신 상태였을까.


그런 집 상태라면 누군가의 침입마저 의심해볼 법했다. 안 그래도 오빠가 경찰에 신고할까 물어왔는데, 나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천천히 둘러본 집에는 내가 아는 아버지의 귀중품과 신분증들이 거의 다 제자리에 있었다. 바로 눈에 띄는 자리에 놓여있었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우리 가족은 누군가에게 원한 살 일도 없었다. 오히려 아버지는 아는 사람이나 모임이 너무 없어 그 외로움을 걱정했어야 했던 분이다.


나와 남편, 오빠는 한동안 넋을 놓고 집안을 둘러보다가 힘을 합쳐 집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소식을 기다리다가 뒤늦게 출발한 새언니까지 합류했다. 구석구석 청소를 할 때마다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왜 이런 거야. 왜, 왜, 왜!!!


어느 정도 정리를 마친 우리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한숨짓다가, 시답지 않은 농담을 건네다가, 결국 기가 차서 말도 안 나오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한 동안의 침묵을 깬 건 나였다.


"나 먼저 갈게."


어쩌면 엄마를 보내기 전 연명치료를 언제 끝내야 할까 고민하며 며칠간 버티던 때보다도 훨씬 복잡한 심정이었음에도 실질적으로 당장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다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그게 너무 답답했다. 난 가만히 앉아있는 것 자체로 너무 괴로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먼저 집으로 향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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