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점심 식사

누구의 잘못일까

by 조유리

2020년 8월


'환자는 집에서 5일간 보호자와 연락이 되지 않은 상태로 혼자 있다가 발견되었으며....'

- C 병원 수간호사의 답변서 중.


과연, 5일이었을까? 정말, 5일이었을까? 우리는 그렇게 무책임한 자식이었을까? 정말, 그랬을까?




2020년 4월


월 초, 기존 우리 집에 들어올 세입자를 구하고, 친정이 있는 지역에 역시 전세로 한 번 살아볼 만한 타운하우스를 구했다. 그 타운하우스에 대해서는 일단 가계약을 해두고 4월 15일, 정식 계약을 하기로 한 상태였다. 그전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아버지를 찾아가는 리듬을 몇 주간 유지했다. 코로나에 대한 걱정으로 다른 식구들은 놔두고 나만 혼자 찾아가 아버지의 근황만 살핀 뒤 금방 일어나곤 했다.


갑자기 일도 하게 되었다. 한 달 정도 걸리는 프로젝트로 몇몇 인물을 취재하여 인터뷰를 한 뒤 소책자로 엮는 일이었다. 나는 오랜만에 들어온 일을 덥석 물었다. 엄마를 보낸 후 글을 쓰며 너무 오랫동안 내 안의 감정에 침잠한 뒤라 슬슬 밖으로 나가 사람을 만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게다가 인터뷰의 주제 또한 '다양한 가족의 얼굴'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고민을 시작하여 아픈 엄마를 돌보다가 결국 그렇게 보내고 난 후 더 집착하게 된 '사회적' 주제다. 일을 핑계 삼아 바람을 쐬려는 목적, 일을 통해 내 관심 주제를 확장해 나갈 목적이 동시에 충족될 거라 믿었다.


취재를 위해 한 창 돌아다니 던 때였다. 집에만 있다가 밖으로 나가니 먹는 리듬도 달라지고 피곤도 겹치면서 몸이 안 좋아졌다. 20대 이후 쉬지 않고 마셔온 커피가 몸에 안 받기 시작한다고 절실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커피를 마시면 어깨부터 결리면서 몸이 굳고 체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과감히 끊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카페인의 힘을 빌어 정신을 차려야 할 순간은 나이가 들 수록 더 자주 찾아왔으므로.


4월 둘째 주, 그 주에도 취재를 하며 커피를 마셨다. 속이 더부룩하고 몸이 안 좋은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 주 금요일이었던 4월 10일, 찌뿌둥한 몸 상태로 회 한 접시를 사들고 아버지를 방문했다.


"뭘 이렇게 비싼 걸 사 왔냐?"


광어+우럭의 식상한 조합 대신 도미를 섞어 사온 데 대한 코멘트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회를 사 온 딸이 반가워서가 아니라도, 평소와는 확연히 달라 보였다. 항상 바닥에 깔려있던 이불은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고 얼굴은 유난히 밝아 보였다. 이미 잠옷이 아닌 일상복으로 갈아입고 어딘지 모르게 활기차 보였다. 그날따라 나보다도 컨디션이 좋아 보이는 아버지 얼굴에 난 한시름 덜었다. '이제 아버지도, 계속 누워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셨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속으로 다행이라 여겼다.


"아버지, 이제 우리 다음 주면 정식 계약하고, 5월 말에는 이 동네로 이사와요. 어쩌다 보니 주택을 구하게 됐는데 마당도 있으니 같이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어요."


무뚝뚝한 아버지의 입가에도 숨길 수 없는 옅은 미소가 번졌다. 아버지는 회와 함께 소주 한 잔을 하셨고 나는 그런 아버지를 흐뭇하게 지켜보며 같이 회를 먹었다.


그렇게 점심을 같이 하고 친정을 떠나며 나는 말했다.


"아버지, 무소식이 희소식이에요. 제가 집에 잘 갔나 확인 전화 안 하셔도 돼요. 저도 집에 가면 정신없어 전화 못 받기도 하니까, 그냥 잘 갔으려니 하시고 계세요, 네?"


왜 하필 그 날 그런 말을 했을까. 아버지는 가끔, 내가 다녀 간 날 저녁 즈음 집에 잘 도착했는지 확인 전화를 하곤 했는데 나는 집에 도착하면 집안일을 하랴 정신이 없어 전화를 못 받기도 했다. 나중에서야 부재중 전화 기록을 보며 걱정하셨을 아버지에게 미안하곤 했는데 그 기억이 하필 그 순간 떠올랐던 것이다. 나중에 생각하니 아버지에게 내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한 그 말이 사실 내가 아버지 걱정을 안 하기 위한 잠재적인 핑계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후 희소식일 줄 알았던 아버지의 무소식은 내 눈 앞에 전혀 반대의 결과를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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