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잘못일까
아버지를 중환자실에 입원시키고 면회도 할 수 없던 나는 무얼 해야 할지 몰랐다. 하필 그 달 따라 일을 맡게 된 나는 마감에 쫓기며 인터뷰 원고를 써야 했지만 집중이 될 리 없었다. 면회를 안 가니 일 말고는 할 것도 없었지만, '병원의 아버지 옆자리에 있어야 할 내가 왜 일이나 하고 있는가'라는, 생각과 현실의 괴리감에 마음이 불편하기만 했다.
오빠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침저녁으로 중환자실에 전화를 해서 담당 간호사에게 상황을 묻는 것뿐이었다.
"저, 조 OO 환자 딸 되는 사람입니다. 아버지 상태 좀 여쭤보려고 전화드렸어요."
"네. 움직임이 너무 크고 많으셔서 압박대를 사용한 상태예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압박대는 다름이 아닌 손목과 발목을 묶는 끈이다. 끈을 사용해서 침대에 손 발을 묶어두는 것이다. 그래야 할 정도로, 그래야 침대에서 떨어질 염려가 줄고 다른 환자에게 방해도 안 될 정도로 아버지에게 기력이 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다행이었다. 하지만 정말 정상의 정신과 몸 상태라면 그렇게 몸부림치지 않을 텐데. 의사와 간호사 말을 잘 수긍하며 본인이 받을 처치를 인내하며 받아들일 것이었다. 나는 엄마가 의식 없이 누워있던 중환자실의 침대를 기억했다. 한 몸 겨우 누일 크기의 공간에 밤에 불도 꺼주지 않는, 철저하게 간호의 편리를 위해 설계되고 세팅된 그곳. 의식이 없던 채로 그곳에 머물렀던 엄마는 차라리 나았을까. 나는 그 밝은 불빛 속, 좁은 침대 위에서 손발이 묶인 채 버둥질을 치고 있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애가 타서 미칠 것 같았다. 내가 그 자리에 있다면 한 시도 견디기 힘들 듯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그 눈물을 닦아내며 나는 겨우 말을 이어갔다.
"그래요? 의식은 있으시다는 거네요?"
"네, 그럼요. 질문하면 대답 잘하세요."
"아, 어떤 질문을 하셨나요?"
"저희가 이런 환자분에게 보통 물어보는 게 있거든요. 본인 성함, 아들, 딸 이름, 주소, 전화번호, 대통령 이름...."
"아, 대통령 이름도요? 제대로 대답하시던가요?"
"네, 제대로, 지금 대통령 이름을 답하셨어요."
"그래요?"
이건 좀 희망적이었다. 굳이 아버지의 정치색을 구분하자면 보수적이다. 전쟁을 겪은 세대의 흔한 사고방식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선호하던 당 출신의 전 대통령이 아닌 실제 현재의 대통령 이름을 또박또박 대답했다는 것은 아버지 의식이 정상 쪽으로 더 기울어져 있다는 걸 증명하는 거라고, 나는 믿고 싶었다.
"그리고는 왜 그런 걸 질문하냐고까지 하세요. (웃음)"
나는 피식, 잠시 같이 웃었다. 아버지는 괜찮다. 괜찮을 걸 거다. 나는 약간 안심하며, 아버지를 안타까워하는 간절한 마음을 간호사에게 전했다.
"저, 아버지가 의식이 좀 있으면요, 이렇게 좀 전해주세요. 아버지 딸이요, 못 가봐서 미안하다고, 가고 싶은데 못 가는 거라고, 그래도 걱정 많이 하고 있어서 전화도 자주 하고 그런다고, 아버지 딸, 유리가, 그렇게 말하더라고, 꼭 좀 전해주세요. 바쁘실 텐데 죄송합니다. 부탁드립니다."
간호사는 알겠다고 했다. 정말 전달을 했을까? 아버지가 전달을 잘 이해했을까? 알 길이 없었다. 내 가족의 병을 치료하려 돈을 내고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지만 어쩜 이렇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까. 병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왜 나는 전혀 알 수 없을까. 나는 엄마가 입원했을 때도, 아이가 입원했을 때도 그리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던 병원 앞 무기력에 대한 답답함과 막막함이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렬하게 온 몸을 파고들었다.
나는 그렇게 적어도 하루에 두 번은 전화를 걸어 아버지 상태와 병원의 조치를 물었다. 이전 대학병원의 응급실에서 이전하면서 오빠가 챙겨 온 검사 기록지가 무색하게, 마치 이 병원에 처음 온 환자처럼 모든 검사를 다시 하는 중이라고 했다. MRI 검사에 동의하냐고 묻는데, 그렇다고 하는 것 말고는 또 뭘 할 수 있을지 몰랐다. 엄마를 데리고 그렇게도 오랜 시간 통원했던 대학 병원에서 병실 하나 받지 못해 아버지를 데리고 이리로 왔고, 여기서 모든 검사와 진료가 다시 시작이었다. 오빠와 나는 선생님의 지시를 기다리는 초등학생처럼 그저 검사 결과가 나오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