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잘못일까
불빛으로 물든 도심의 밤 거리. 나는 아버지와 함께 길을 걸으며 술 한 잔 할 곳을 찾고 있다. 두리번 거리다가 어느 한 곳을 정하고 안으로 들어간 나는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창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자리를 잡는다. 점원이 술과 안주를 내 오고 서로 술을 한 잔씩 따라 마신 뒤 내가 창 밖 거리를 초점없이 내다보며 아버지에게 이런저런 하소연을 주저리주저리 내뱉는다.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넋두리와도 같던 내 말을 다 들은 아버지가 크고 분명하게 한 마디 한다.
"야, 그런데 말이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네가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어."
아버지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놀라서 아버지 얼굴로 고개를 휙 돌린 순간, 잠이 깼다. 꿈이었다. 꿈에서 아버지가, 나에게 말해줬다. 내 탓이 아니라고, 내 잘못이 아니라고. 이내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훌쩍훌쩍 울기 시작한 나는 도저히 염치가 없어 넙죽 받을 수는 없는 아버지의 그 말에 가슴이 더 아팠다.
"그래도 그렇죠, 아버지, 어떻게 그래요, 어떻게 제 탓이 아니예요, 그럴 수는 없죠, 아버지, 정말 미안해요. 정말 죄송해요. 제발, 제발 건강히 깨어나기만 해주세요. 제발요."
혼잣말을 되뇌이며, 나는 밤새 울었다.
아버지가 입원한 것이 수요일, 그 주 주말까지 병원에서 별 다른 연락은 없었다. 보호자의 마음과는 달리 병원은 주말 한 번 보내는 것이 그다지 큰 일은 아닌 걸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에게는 하루 아니 몇 분도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을 그 주말이 일반적인 사회 시스템 상 '휴일이라 어쩔 수 없는' 시간으로 취급되는 것 또한 환자의 보호자로서는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렇게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마음만 불편했던 주말 저녁, 나는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한 잔 한 잔 먹다가 와인 한 병을 거의 다 마셔가자, 나는 남편에게 편의점에라도 가서 술을 더 사다달라고 말했다. 남편은 나를 말렸다.
"주말에 일도 더 해야 한다며, 그만 마셔."
일. 그래 일이 있었지. 내 마음이 이런데, 이런 내 마음을 전혀 모르는 사람과 생기 발랄하게 나눈 대화를 정리해야 하는 인터뷰 원고 숙제가 내 앞에 있었지. 그걸 어떻게 쓰나. 그럴 정신이 어디있나.
"그래도 마실거야. 마셔야겠어."
나는 고집을 부렸다. 평소에는 나와 함께 대작도 해주고 나의 말에 맞장구도 잘 쳐주던 남편은 오늘만은 단호했다. 여러 번 실랑이를 해도 남편이 들어주지 않자, 나는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소리질렀다.
"당신이 내 마음을 알아? 아주 완벽한 불효자가 되버린 내 마음을 알기나 해? 그 마음을 알아주려는 노력을, 손톱만큼이라도 하고 있기는 한거야?"
나는 애꿎은 남편에게 있는대로 화를 내뱉아 버렸다.
"죽을 것 같아." "미쳐버릴 것 같아. 어디 가서 죽어 버리고 싶어."
이성을 잃은 나는 아이들이 있는 거실에서 하면 안 될 소리를 하며 외투를 입었다.
둘째 아이가 두려움에 떨며 울먹이듯 나를 불렀다.
"엄마.."
평소 소심한 아이가 더 겁을 먹은 듯 했다. 나는 그대로 집을 뛰쳐 나왔다.
무작정 집 밖으로 나와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게 길을 걸으며 나는 그렇게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사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싶었다.
아버지를 혼자 둔 채 며칠을 보내버렸다는 것은 나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그런 자식이 되어 버렸다는 것은 내 인생 최고의 좌절이었다. 살아서 뭐 하나. 어떻게 하면 세상을 떠날수 있을까 생각하며 공원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지금 이렇게 혼자 있을 때는 죽어도 아무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죽는 게 더욱 쉬울 것 같았다. 자식이 있음에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연예인들의 소식을 종종 들으며 평소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지금 심정으로는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아이들도, 내 남편도 내가 없다해도 나름대로 잘 살아가리라 느껴졌다.
찬 바람을 쐬도 도저히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폭발할 듯한 심정으로 퉁퉁 부풀어 올라있는 이 몸뚱아리를 어디로 떨어뜨려야, 어디로 날려버려야 결국 터져버릴까. 난 어디로 가서 어떻게 해야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질 수 있을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답을 얻을 수 없던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엉엉엉.
지나가는 차 소리에도 묻히지 않고 들릴 만큼 크게, 짐승처럼 울어대면서, 차가 쌩쌩 지나가는 옆 밤거리를 하염없이 걷고, 걷고, 또 걸어대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