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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리 Oct 15. 2020

글을 잠시 멈추고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돌아보면 불만 가득한 어린애 일기 같은 글들이었음에도

매번 공감해주고 같이 아파해주고 힘내라고 위로해 준 구독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어 한 발 한 발 내디뎌 온 것 같다. 너무 감사하다.


뇌질환과 치매를 앓는 엄마를 돌보는 과정에서 생긴

'어디까지가 자식 노릇인가'라는 한탄과 아픈 엄마에 대한 애증으로 시작한 나의 글 <엄마의 장례식에서 웃게 되면 어쩌지>는  

요양원에서 갑작스레 사망을 맞은 엄마를 보내며 불현듯 세상에 대한, 이 사회의 제도에 대한 원망과 울분을 쏟아내게 되자 맥락의 일관성을 잃고 갈팡질팡 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억울함에 북받친 나는 나에게 일어난 일을 알려야 하겠다는 절실함에

제대로 다듬지도 못한 날 글을 여러 출판사에 보내는데 급급하였고

가뜩이나 어둡고 우울하여 대중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주제인 데다 우왕좌왕 핵심도 없이 쓴 글이다 보니

결국 글을 보내 본 몇몇 출판사에서 여러 차례 완곡한 거절의 회신만 받아보기 일쑤였다.


아, 한 곳에서 책을 내자고 연락이 왔었으나 왠지 나와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듯하여 거절하였고,

그다음 연락이 온 곳에서는 책을 낼 것처럼 먼저 내 의향을 물어보더니

이후 다시 생각해보니 안 되겠다는 답을 한참 후에야 보내왔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레 아버지마저 떠나보내 경황이 없었고,

이제 꾸역꾸역 힘든 마음 추스르고 아버지에 관한 글을 쓰고 있던 중 9월경, 나는 '올해의 브런치 대상'이 열린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엄마에 관한 글을 재정비해서 응모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내 글이 선정되지 못할 것임을 100% 확신한다.

글의 주제도, 필력도 상을 기대할 정도는 안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제발, 내 글이 많은 이들에게 읽혔으면 좋겠다. 내 이야기를 알리고 싶다.

그래서 이 참에 자식 노릇과 요양원 이야기로 뒤범벅된 내 글의 어지러운 곁가지들을 잘라내고 정리하여, 그나마 '글을 잘 알려줄 가능성이 있는' 여러 편집자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10월의 남은 날 동안 이런 작업을 할 예정이다.

-  <내 엄마의 요양원은 어디인가>라는 제목으로 새 매거진을 발간하고, 내가 썼던 엄마의 글을 '요양원 문제' 위주로 다시 정리한다.

- 매거진을 완성하고 나면 이를 동명의 브런치 북으로 엮어 브런치 대상에 응모한다.

- 그 후 기존의 엄마에 관한 글을 담은 브런치 북 3권은 모두 폐기할 예정이다.

- 그리고 그 작업을 위해 10월 동안은, 아버지에 관한 글을 조금 쉴 것 같다.


내 이러한 계획을 알고 싶어 할 분들이 몇이나 될까 싶은 자조적인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내가 글을 올리면 즉각적으로 반응해주시는 고정 구독자분들과

오며 가며 새롭게 구독해주시는 분들, 내 글에 댓글을 남기시며 굳이 위로를 표해주신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표해야 한다는 생각에 이렇게 구구절절 내 브런치에 생길 몇 가지 변화를 미리 알리려 마음먹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난 부모님에 대한 괴로운 이야기를 쓰고 있지만 나름 잘 지내고 있다.

엄마의 일은 아직 소송 중이고, 소송과 관련된 일에 맞닥뜨릴 때마다 엄마의 CCTV가 떠올라 바닥 저 끝까지 감정이 낙하하지만 남은 가족과 그동안 나를 위로해 준 지인과 함께 웃고 떠들 일도 이제는 자주 생긴다. 그 어떤 일을 겪고 나도 일상은 변함없이 돌아간다는 것은 슬프기도 하지만 어쩌면 다행이기도 하다.


좀 더 부지런해져야겠다. 좀 더 건강해져야겠다.

일상의 변화는 예기치 않게,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와 나를 정신없고 바쁘게 만들지만

그 와중에도 천천히, 글을 계속 써나가고 싶다.

아직은 있었던 일의 나열과 그 사이 생겼던 내 감정의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 글이겠지만

언젠가 이를 토대로 건설적으로 성장하는 글을 써보고 싶다.


뭣도 없이 결심만 많은 소시민적인 '글 애착가'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는 유명한 말에나마 기대며 하루하루를 버텨갈 뿐이다. 가장 개인적인 넋두리가 언젠가는, 가장 창의적이진  않더라도 일말의 대중적 공감을 얻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언젠가, 언젠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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