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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리 Dec 31. 2020

2020, 평생 잊지 못할

감사합니다

지난번, 아버지에 대한 글을 잠시 멈추고 엄마에 대한 글을 재정비하여 새로운 브런치 북 <내 엄마의 요양원은 어디인가>를 만든다고 보고(?)하던 글에서 나는 이전에 마구잡이식으로 글을 쏟아낸 엄마에 대한 브런치 북 <엄마의 장례식에서 웃게 되면 어쩌지 1, 2 > 등을 삭제하겠다고 말했었다.


https://brunch.co.kr/@atoi02/185


하지만 그 후에도 한동안 기존 브런치북을 읽고 격려와 위로를 보내준 독자들이 있었고 나 또한 잠시 게을러져서(혹은 아쉬움이 남아서) 그 삭제에 대한 결행을 감행하지 못하고 미적댔었다.


그러다 오늘, 드디어 엄마에 대한 기존 브런치 북 세 권을 삭제했다. 물론 그 안에 있던 글도(브런치 팀에게 건의하고 싶은 것이, 예전 글 여러 개를 한꺼번에 지울 수 있는 기능이 있었으면 좋겠다. 소중한 글을 실수로 삭제하게 되어 좋지 않은 기능이 되려나). 그리고 새로운 매거진을 몇 권 만들어 기존 글을 분류해서 넣었다. 오랜만에 시간이 좀 나서 행동에 옮길 수 있던 일이지만 새 해 맞이, 리뉴얼이랄까. 뭐, 그렇게 의미를 부여해도 좋은 핑계가 되겠다.




사실 지난 11월, 작은 편집회사에 취직을 했다. 한 동안 프리랜서로 활동하던 나에게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정규직에 취업할 생각도,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도 별로 없던 상황에서 우연히 보게 된 구인 공고. 그 공지를 보자마자 왜인지 모르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지금은 이걸 할 때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지원을 했고 합격을 했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 한 권의 잡지를 만들기 위해 기사를 쓰고 편집하던 나에게 이런저런 다양한 편집물을 만드는 작은 사무실에서의 업무는 새로 배워야 할 일도 적지 않았고 업무량도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이제까지의 일이 내가 시간 날 때 틈내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이번 일은 정확한 9 to 6, 하루 시간을 온전히 일에 투자해야 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익숙하지 않은 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당연히 글쓰기는 게을러졌다. 아버지에 대한 글을 올리는 주기가 길어졌다. 예상했던 결과다. 하지만 이런 정규직 일자리를 구한 데에는 사실 부모님에 대한 이유도 컸다. 취직 전까지 나는 집안일을 하지 않을 때면 글을 읽거나 쓰고 살았는데, 아무리 자발적으로 쓰겠다고 마음먹은 글이라 해도 그 글이 주는, 글을 쓰기 위한 생각들이 몰고 오는 우울감을 감당한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글에서 물러나기 싫었고 힘을 내서 쓰고 싶었다. 낯선 일과 사람과의 얽힘은 새로운 생기를 주고 힘을 내게 도와줄 거라 믿었다. 글을 쓰는 시간은 줄었지만 글에 대한 욕심은 더 생긴 것을 보면 실제로 새 일상이 도움이 된 것 같긴 하다.  


부작용도 있었다. 몇 시간이고 정신없이 일에 매몰되어 있다가 일이 딱, 끝나는 순간,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이 속절없이 몰려왔다. 퇴근길, 혹은 갑자기 일도 사람도 없이 혼자 지내게 되는 단 몇 분, 슬픔은 짧은만큼 강한 것이어서 취업 전 나의 하루를 옅게 그러나 오랜 시간 채워주던 우울감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진했다. 나는 이동 중 뜬금없이 폭풍 같은 눈물을 터뜨리기도 하고 잠이 들 무렵 끙끙 앓는 소리를 낼 만큼 서러워지기도 했다. 이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바쁘게 지내면 기분이 좋아지고 많이 잊게 될 줄 알았는데, 반전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 적응 기간을 지나 변화된 일상에 아주 조금은 익숙해진 채 연말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마침 회사 휴일인 오늘, 한 해를 돌아볼 조금의 여유 시간이 생겼다.




글쓰기나 노인 문제와는 거리가 먼 출판물 편집자로 일을 다시 시작하면서 노년에 대한 공부를 하겠다는 내 계획을 잊게 되면 어쩌나 걱정이 되긴 한다. 하지만 다행히,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일들이 이어지고 있다. 엄마 사건에 대한 소송이 그러하다. 아버지에 대한 끝맺지 못한 이야기가 그러하다. 간간이 들려오는 노인 관련 뉴스가 그러하고 그 소식들을 접하며 순간적으로 벌렁대는 내 가슴이 그러하다. 그래서 나는 계속하게 될 것이다. 생각보다 천천히 길게 가는 여정이 되겠지만, 계속 글을 쓸 것이고 계속 공부하게 될 것이다.  


새로 정비한 브런치는 이런 내 마음을 담아내기 위한 것이다. 소송과 관련된 법 이야기, 노년에 대한 정보를 <이 참에 법 공부> <어디서 어떻게 늙어 죽을까>에 계속 담을 것이고 당분간은 <내 아버지의 병원은 어디인가>를 울분과 서러움과 자책의 감정을 이겨내고 잘 마무리해 볼 예정이다.

새로운 매거진 <그래도 일상>에는 슬픔 때문에 놓쳐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현재 진행형의 소중한 일상 이야기를 가끔 담을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독자 공감>에는 내 글을 읽어주는 감사한 분들에게 글쓰기의 방향을 공유하고 싶을 때 오늘처럼 한 두 개씩, 글을 올릴 것 같다.


2020년 한 해, 너무나도 큰 슬픔이 나를 스쳐갔지만 그 보다 훨씬 큰 고마움이 내 안에 머물고 있다. 그 감사함이 스쳐지나지 않도록 다짐하고 다짐하며 힘내서 살아가 볼 예정이다.


'슬픔의 존재 이유란 결국 행복한 일상의 감사함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요즘 들어 부쩍 든다. 내년에는 모두에게 슬픔이 그런 이유만으로 존재하기를,  큰일이 없었더라도 모두가 힘들었을 한 해를 보내며 간절히 바래본다.


정말 모든 이에게 감사한, 그런 날이다. 그런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모두들,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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