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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리 Feb 09. 2021

마흔이 넘어도 하고 싶은 일 할래

얼마 전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다. 40대 중반에 새 일을 시작하는 결정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었는데 정작 일을 그만두는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구인 공고를 냈던 회사는 작은 디자인 업체였고 전단이나 현수막, 포스터, 책자 등의 전체 구성과 원고 내용, 카피를 책임지는 기획자를 뽑고 있었다. 위치는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였다.

     

이 공지를 보고 단연코 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과 가까운 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는 것이 쉽지 않으리라 여겼고 구인 활동도 하지 않던 내게 우연히도 이 공고가 눈에 띈 것은 그야말로 기회라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이 일을 덥석  ‘물은’ 것에는 더 많은 이유가 있었던 듯하다.

    

갑작스레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슬픔의 늪에 빠져있을 때였다. 하루 종일 우울을 안고 생활하던 나에게는 하루의 일부라도 온전히 다른 일에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또 집을 좀 벗어나고 싶었다. 큰마음먹고 한 번 살아보게 된 타운하우스에 여러 하자가 발견되었고 그런 집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며 끝나지 않는 집안 정리를 하다 보니 나는 어느새 영화 <사랑의 블랙홀>처럼 자고 일어나도 ‘같은 날’의 무한 반복인 것 같은 일상에 부단히도 지쳐 있었다.

 

'9 to 6'로 일하며 월급을 받고도 싶었다. 결혼 후 1년 만에 생긴 첫째, 또 2년 후 생긴 둘째 아이를 위한 육아 지원군에서 연로한 시부모님과 지병이 있는 친정 부모님은 일찌감치 제외되었다. 한 달에 열흘 이상의 새벽 야근을 보장하는 잡지 기자로서의 정규직 신분은 육아 3년 차에 깨끗이 포기하고 자는 아이 옆에 끼고 집안일을 등에 업고 식탁에서 타자를 치는 혼돈의 프리랜서로만 거의 10년을 일했다. 이제는 제발, 일과 일상을 구분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야근이 별로 없는 회사의 정직원으로 일하며 '기사 한 건 당' 원고료가 아닌 제대로 된 월급을 받고 싶었다.

      

그리고, ‘이게 마지막’이라는 절실함이 있었다. 40대 중반인 나를 누가 써줄 것인가. 프리랜서를 전전한 ‘반 경력단절’인 40대 여성이 어디 가서 자신의 경력과 연장선상에 있는 일을 새로 구할 수 있겠나. 젊은 시절 버젓한 직장에 다녔다가도 어느새 회사에서 필요로 하지 않는 ‘나이’가 문제 되거나 육아 등의 이유로 오랜 시간 단절된 ‘경력’이 이유가 되어 뚜렷한 직함이 아닌 ‘아줌마’ ‘여사님’으로 불리는 일을 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것이 아니다. 죽을 때까지 ‘생긴 대로’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한데, 그런 ‘나’로서 하고 싶은 일, ‘내가’ 좇는 꿈과 연관된 일이 아닌 그저 ‘일을 위한 일’ 혹은 ‘돈을 위한 일’을 하게 되는 상황이 올까 봐 두려워하던 참이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예전처럼 '기자'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도 다양한 형식의 ‘원고’를 쓸 수 있을 것 같은 이 기획직의 구인 공고를, '운명'이 내린 선물이라 여겼다. 이것이 이 사회에서 소속감을 느끼며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거라는 절박함에 빠졌던 것 같다.


일을 해야 할 이유가 이렇게 많으니 더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확신에 차서 회사에 이력서를 보냈다.

  

회사의 대표는 이런 작은 회사에서는 사람 구하는 일이 쉬운 게 아니라는 말로, 면접과 동시에 합격을 통보했다. 그럼 내가 아닌 누구라도 지원을 하면 다 합격을 했을거라는 말 같아 찜찜함도 있었지만 그래도 감사한 마음이었다.


남편은 나의 월급이 생활에 큰 보탬이 된다며 기뻐했다. 물론 남편은 열심히 자신의 일을 하고 있지만 생활비는 항상 부족했다. 명절날 친지들의 선물이라도 몇 개 사고 나면 연신 마이너스 통장을 기웃거렸다. 그런 상황에서 나도 오랜만에 '돈 버는 일'을 하는 효능감을 맛봤다. 2018년 말, 고정적인 월간지 편집을 그만둔 후에 거의 2년 만의 일이었다.



 

퇴사를 생각한 것은 입사 후 두 달도 안 되어서였다. '이 일을 하면서 진정한 나로 사는 것은 어렵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간간히 취재도 하고 원고를 썼지만 대표가 생각하는 기획자의 일은 오히려 마케터에 가까웠다.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무언지 물으면 ‘next 일감’을 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입사 때는 협의되지 않았던 일이다. (당시에 내가 이해를 못하고 듣고 싶은 말만 들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작은 회사에서는 일감이 중요하니 원고보다 제안서 작성이 더 우선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원고를 위해 타자를 치는 일 말고 일감을 따내기 위한 마케팅은 해 본 적도 없었고 할 줄도 몰랐다.

    

일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바로 퇴사를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내 나이와 직함에는 이런 일을 하는 게 맞으니 열심히 하자며 자신을 채근했다. 이 사회에서는, 예를 들어 IT 회사에서 전문 프로그래머로 일을 했더라도 나이가 들고 직위가 올라가면 회사의 일감을 따오는 영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외국에서는 나이가 들어도 경력이 쌓여도 한 번 엔지니어가 평생 엔지니어일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여긴 한국이다. 나이도 경력도 적지 않은 ‘기획 팀장’으로 입사했으니 당연히 회사에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고 나는 마음을 다졌다. 잘 모르는 일이면 억지로라도 배우면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에서 숫자가 가장 싫고(아니 무섭고),  ‘PPT’ 문서의 화려한 비주얼보다는 ‘워드’ 파일에 재미없게 써내는 글자뭉치들을 훨씬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내 나이와 직위에 그런 일을 하는 게 맞다면 과감히, 억지로라도 해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회사 일이 집안일보다도 하기 싫어지고 도무지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모르는 제안서를 써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래도 내가 책임감 가지고 해야 할 일’ ‘이거 아니면 나를 써줄 데는 없다’는 심정으로 꾸역꾸역 해냈다. 그렇게 일에 나를 맞춰간 시간이 족히 한 달은 되었다.

      

입사 3개월째, '도무지 안 되겠다' 싶은 순간이 왔다. 머릿속에는 엄마와 아버지에 관한 기록을 끝내야 한다는 부채감, 다양한 책을 읽고 중년과 노년 문제를 공부하고 싶다는 조급함, 일상에서 문득문득 만나는 글감을 글로 풀어내야 한다는 절박함이 온몸을 짓눌렀다. 일은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표는 이미 내가 작성한 제안서를 각 고객사에 뿌려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따 낼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면 안 된다고 누군가 내 등을 강하게 끌어당기는 느낌이었다.

    

결국, 퇴사 의사를 밝혔다. 이 일을 해 낼 깜냥이 안 되는 것 같다고. 의지박약이라 말씀하신다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나름대로는 많이 고민하고 견뎌보려 했었다고. 내가 사는 가까운 지역에서, 이 나이에, 이 정도 월급 받으며 일하는 것에 감지덕지해야 한다고 나 자신을 계속 독려했지만 잘 안 되었다고. 저는 이 일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대표는 의외로 잘 이해해 주었다. 물론 업무를 달리해서 더 일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도 했지만 내가 거절하자 바로 다음 날 퇴사 처리를 해주었다. 마음 떠난 사람 잡아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안다고 했다. 합격 통지만큼이나 신속한 퇴사 처리, 정말 감사했다.


퇴사를 하자마자 내 마음속에 단단히 응어리져 있던 아버지에 관한 글을 브런치에 쏟아냈고 1월 말 그 글을 완성해냈다. 아버지 일을 상기하는 것은 괴로웠지만 쓰고 싶은 갈망을 풀어내는 과정은 짜릿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글을 쓰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상태다. 온라인 서점에서 잔뜩 주문한 책들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



      

고백하건대 나는 아이들에게 부지런하고 살뜰한 엄마가 아니다. 아이들을 방치하는 합리화를 위해 나는 서슴없이 이런 이유를 댄다.

“엄마가 시키고 알려주는 일 말고 너희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해야 해. 너희가 원하는 일을 할 때 가장 열심히, 행복하게 할 수 있어.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가장 잘하는 일이 될 거야."

   

아닌 게 아니라 그게 내 잊었던 신조였음을, 짧은 시행착오를 통해 다시 한번 상기했다. 아니라고, 이 나이가 되어서 무슨 꿈이냐고, 이 나이엔 그저 적당히 경력에 맞는 일만 있어도 감사한 거라고... 상황에 나를 맞추고 생각을 고쳐먹으려 애써봤지만 결국 안 되고 말았다.


다시 한번 느꼈다.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 한다는 걸.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그건 진리다. 그래야 가장 열심히 할 수 있다. 내 안에서 흐르는 강렬한 욕망과 조금이라도 가까운 일을 해야만 나의 최선을 발휘할 수 있다. (물론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이 훨씬 많다는 걸 알고 있다. 그걸 알기에 나도 더 버텨보려 했는데, 결국 잘 안 됐다.)


그래서 나는 다시 글로 돌아왔다. 본업을 따로 두고 취미로 글을 쓰는 건 내 방식이 아니었나 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해서 전업으로 글 쓰는 사람이 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글로 돈을 벌지 안 벌지는 둘째 문제다. 이제 난 할 줄 아는 것이 정말, 이것밖에 안 남았다.


안타까운 것은 내 월급을 그리도 반기던 남편이 당분간은 좀 더 홀로 가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거다. 쩝. 미안하긴 하다. 그래도 남편은 좋단다. 하기 싫은 일 한다고 징징대던 내 짜증을 이제 안 받아줘도 된다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짜증을 냈었나? 뭐 돈보다 그게 좋다면 그것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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