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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리 Jan 08. 2021

'인생 의미 없다'는 말, 함부로 하지 말아야겠다

무심코 TV 프로그램을 보는데, 얼마 전 정년퇴직을 한 60대 남성이 출연했다. 안타깝게도 그는 퇴직을 몇 개월 앞둔 어느 날 병환으로 아내를 떠나보냈다. 은퇴 후 더 많은 시간을 아내와 함께 할 생각만 했었는데. 슬픔에 잠긴 그가 말한다.

"아내가 매우 좋아하던 이 프로그램에 제가 출연하게 되었는데, 모든 것들이 어떤 면에서는 의미가 없게 느껴집니다."


그래, 저거였다. 저 기분. 내가 엄마를 보낸 뒤 '이제 아버지에게 모든 효도를 다 하리라' 생각했는데 갑자기 아버지마저 떠나고 난 뒤 기분이 딱 그랬다. 한 동안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렇게 가버릴 텐데 도대체 삶이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것이 소중하겠는가, 어차피 가 버릴 인생인데.


그런 기분이 오래갔다. 엄마가 떠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아직도 가끔씩 든다.

어차피 떠날 인생, 의미도 없이 뭐하러 이렇게 길까. 참 지루하다.


며칠 전 남편과 차를 마시다가 그런 마음을 내비쳤다.

"아무것도 의미 없게 느껴질 때가 있어. 그냥 지금 바로 떠나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생각이 들어."  

두 아이의 아빠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니었지만 남편은 그저 덤덤하게 내 이야기를 들었다.


그 대화를 나누고 몇 시간 후 우리는 외출을 했다. 남편이 운전을 하고 내가 보조석에 탔는데 좌회전 신호를 받아 진행하던 중 갑자기 속도를 줄인 앞 차와 순간적으로 간격이 좁아졌다. 그런데도 서둘러 브레이크를 밟지 않는 남편을 향해 나는 크게 소리를 쳤다.

"꺅, 뭐 하는 거야, 빨리 밟아야지! 부딪칠 뻔했잖아!!"

잠시 놀란 듯한 남편은 그러나 역시, 무덤덤히 말한다.

"호들갑은. 아까 집에서 한 말이 무색하다."


무슨 소린가 싶어 멍하니 남편을 바라봤다가 순간 머쓱해졌다. 얄미운 눈초리로 남편을 쳐다보고는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뭐, 기분이 그렇다는 거지, 진짜로 죽어도 상관없다는 건 아니잖아. 다 알면서, 쳇.




난 요즘 회사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마음속 갈등이 심하다. 재밌을 것 같아서 다시 시작한 편집일, 하지만 노인 문제와 인생에 대한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시간이 줄어든 데 대한 불만을 어쩌지 못하고 매일매일 고민만 하고 있다. 어떡하지, 어떻게 시간을 조절하지. 어떻게 하면 원하는 일을 모두 하면서 살 수 있지?


괴로움의 근원은 욕심이다. 내 가족을 위해서도, 나 자신을 위해서도 더 시도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일이 계속 떠오른다. 그건 떠난 부모님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는 근거 없는 합리화마저 생긴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실천력은 그 욕심을 따라주지 못하는 것 같아 매일 머리를 뜯는다.


이렇게나 하고 싶은 게 많은 걸 보면 난 아직 인생에 많은 의미를 두고 있음에 분명하다. 앞의 차와 부딪칠까 봐, 사고로 죽을까 봐 겁내는 것으로 굳이 증명하지 않더라도, 인생은 살아 볼 만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면서 뭘, 인생 허무하다고. 삶이 뭐가 의미 없다고.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죽고 싶다는 말도, 정말 낭떠러지 앞에서 발걸음을 뗄 용기가 없다면 안 할 말이다. 진정한 죽을 위기에 처해서 정말 처절하게 삶을 갈구해보지 않았다면 아무리 '그냥 하는 말'이라도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뱉어야 할 표현이다. 진정 삶이 절실하기에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이들도 있을 텐데. 더 처절하게 하루하루를 견디는 이들도 있을 텐데.


올해 40대 후반이 된 나도, 아직도 이렇게 자기모순에 부딪친다. 다행인 건 그런 모순의 발견이 그나마 작은 반성을 불러온다는 것이다. 인생, 아직도 배울 게 많다. 그래서 인생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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