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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유리 Oct 14. 2024

나의 '그릇'

가족을 통해 알게 된 어른되기 숙제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하기 전, 마을에서 시민 활동을 할 기회가 있었다. 뜻있는 마을 활동가가 공모 사업을 통해 주민 대상 활동을 주최한 것이었는데 주제가 ‘돌봄’이었다. 육아, 간병은 물론 자기돌봄에 이르기까지 돌봄에 관한 다양한 교육을 받은 활동가들이 마을에서 각자 상황에 맞는 돌봄 활동을 진행해보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부모님을 보낸 지 얼마 안 되어 노인돌봄에 천착하던 때라 몇몇 활동가들과 함께 노인 대상 활동을 진행했다. 지역 노인복지관에서 연결해 준 노인들을 찾아가 매주 손수 만든 반찬을 전달하고 정기적으로 함께 모여 놀이마당도 열었다. 

    

첫 만남은 각 노인의 집에서 이루어졌다. 복지관 사회복지사들과 동행해서 찾아간 노인들은 대부분 혼자 사는 어르신들이었으며 모두 다 환영의 얼굴로 맞아주었다. “뭘 나까지 신경쓰느라 고생을”이라며 미안해하고 고마워했다. 그런데 담소 가득 훈훈한 것은 첫 만남뿐이었다. 사회복지사 없이 활동가들끼리만 찾아갔을 때 노인들의 태도는 많이 달랐다. 어떤 노인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끝도 없이 풀어놓는 통에 말을 끊고 일어날 타이밍을 잡지 못해 난감한 적도 있었다. 다른 분은 반찬을 가져다드렸을 때 어떤 것은 짜다, 싱겁다, 어떤 것은 덜 익었다며 투정을 심하게 하셨다. 찾아온 게 고맙다며 커피를 타주셨는데 “왜 뜨거울 때 먹지 않느냐”며 구박 아닌 구박을 들은 경우도 있다. 장보는 것을 도와드렸는데 ‘이것도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며 까다롭게 제품을 고르시는 통에 마트에서 티격태격할 뻔 했다. 그분은 귀가 잘 안 들려서 내가 큰 소리로 말씀드려야 했는데 주변에는 노인에게 소리치는 되먹지 못한 사람으로 비칠까봐 걱정스러웠다.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한 남성 어르신 때문이었다. 우울증과 경증 치매 증상이 있던 분이었는데 만날 때마다 나에게 “나랑 같이 살래?”라는 말씀을 반복하길래 내가 “농담도 잘하신다”며 몇 번 웃어넘겼다. 그런데 어느 날 어르신들이 함께 모여 놀이 활동을 하는 자리에서 갑자기 내 엉덩이를 툭 치시고는 실실 웃으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적으로 모멸감이 느껴져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벌게진 얼굴로 정신없이 활동을 마쳤다. 그 후로도 며칠 동안 ‘아, 이것이 바로 돌봄 노동자들이 겪는다는 성추행인가?’ 싶어 가슴이 벌렁거리고 심란했었다. 그런데 그 이후 마음에 더 큰 상처가 된 것은 그 사업 주최자의 반응이었다. “노인들이 그럴 수도 있죠. 그것 때문에 당황하는 유리님이, 좀 귀엽네요. 하하”   

  

또 다른 봉사에서도 껄끄러운 마음이 든 적이 있다. 마을 경로당 어르신들의 식사 준비를 위해 마을에서 모인 봉사자들이 반찬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의 요리법을 가지고 다투는 것이었다. “저는 이런 방식으로 하는데요?” “저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거든요?”라며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것이 큰 소리를 내는 것보다 더 조마조마했다. 나는 슬슬 눈치만 보다가 일찌감치 싱크대 앞에 붙박이처럼 자리 잡고 봉사가 끝날 때까지 설거지만 열심히 해댔다.     




좋은 마음으로 참여하는 봉사활동에는 다들 천사같이 친절한 봉사자들, 감사하고 고마워하는 봉사 대상자들만 있을 것 같지만 사실 그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의 복합적인 감정이 마구 섞여 있고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 이들은 튕겨 나가기도 한다. 부모님 사후, 노인 문제 전문가라도 될 듯 그 분야에 파고들었다가 현장에서 받은 작은 상처에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친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사회복지 대학에 들어가 책 뒤로 ‘일보 후퇴’를 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경험 뒤에는 꼭 자책이 뒤따른다. ‘이런 활동을 하기에는 내 그릇이 너무 작은가’라는 생각이다. 올해 공부를 마치고 나서도 복지 분야에서 일하기가 두려워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나에게 누군가 귀에 대고 속삭이는 듯 하다. “하다보면 익숙해질텐데, 뭘” 그래, 그럴 것도 같다. 노인들의 아집에 적당히 맞춰드리는 것과 때때로 있을 수 있는 성추행도, 활동가들 사이의 성격 차이와 돌봄 방식의 차이를 조율해가는 것도 다 익숙해지면 견딜 만해질 것이다. 이미 많은 돌봄 활동가, 노동자들이 이를 감당하고 있다. 그리고 그 ‘희생정신이 대단하다’거나 ‘아무나 못할 일’이라며 치켜세워지고 있다.      


그런 예찬에 비해 복지 분야 노동자들의 처우는 참담한 수준이다. 요양보호사의 경우 거의 기본급 수준의 월급을 받지만 그마저도 퇴직금을 지불하지 않기 위해 11개월 꼼수 계약을 제안하는 요양센터들도 많다. 개인 간병을 하는 요양보호사들이 보호자에게 지나치게 많은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또한 기본적인 구조상 돌봄 노동이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의 상황도 그리 다르지 않은데, 그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면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이 있다. ‘희생정신’과 ‘인간존중’을 실천해야 할 복지 종사자들이 돈 욕심을 낸다는 것이다.     

 

경제학자인 장하준 교수는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에서 ‘돌봄 노동이 저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뿌리 깊은 성차별적 고정 관념’이라고 말했다. 돌봄 노동을 집에서 아이나 부모를 돌보던 무보수의 노동이 시장으로 나온 것뿐이라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수는 가정 내에서의 이러한 ‘무보수 돌봄 노동’을 당연시 여기는 것 조차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 첫 번째 해결책으로 ‘돌봄 노동이 인간 생존과 복지에 얼마나 중요하고 핵심적인 활동인지를 인식할 필요’를 든다. 또 돌봄 노동이 여성만의 일이라는 생각과도 이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이건 원론적인 해결책이긴 하다. 하지만 이를 통해 세계적인 석학마저도 돌봄 노동의 현실에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원론적인 답이 가장 기본적인 필요한 답이라는 것을 상기해보면 어떨까? 

  

그러고보면 나 자신의 그릇을 탓하기만 할 일도 아닌 것 같다. 그러느니 차라리 방송대 사회복지학과에서 배운 구조주의와 제도주의의 관점에서, 이 사회의 돌봄 문제를 더 치열하게 고민해 보는 것이 해결책에 더욱 더 가까워지는 길일 수도 있다.      


마음 속에 숙제는 점점 더 쌓이고 있다. 복지에 대해 이만큼 배웠고 접했으면 됐다며 외면하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다. 오십대가 되어 어떤 선택을 하고 살지는 아직 모르지만 이렇게 경험한 복지에 대한 생각이 어떤 형태로든 내 삶에 녹게 될 것은 분명하다. 아직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채 어정쩡하게 경계선 줄타기를 하는 나에게 시간을 더 주고 기다려 볼 생각이다. 방향이 중요할 뿐, 결정은 조금 늦어도 괜찮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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