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통해 알게 된 어른되기 숙제
누군가에게 ‘사회복지를 공부한다’고 말하면 ‘으응, 국민 자격증, 사회복지사!’라고 반응한다. 40대 이상, 특히 여성 중에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에 도전하는 이들이 정말 많다. 관련 교육원도 넘쳐난다. 그야말로 ‘너도나도 자격증’이다.
반면 부모님을 떠나보낸 뒤 노인 문제에 대한 자각이 일어서 복지 공부를 시작한 나는 사실 자격증에 큰 관심은 없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겠다는 욕심도 크지 않았다. 그래서 짧은 기간 안에 자격증을 따는 교육원보다는 복지 이론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학교를 선택했다. 작년 방송통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3학년으로 편입했고 이제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있다.
다른 학교에서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서는 ‘사회복지는 정치’라는 개념을 모든 수업 내내 강조한다. 처음에는 사회복지학과란 ‘취약 계층을 돕기 위한 이론적, 실천적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란 나의 예상이 벗어난 것에 무척 놀랐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개론 첫 수업에 교수가 ‘세월호 사건은 누구의 잘못으로 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에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라며 괜히 내 공부방에 있지도 않은 다른 학생들의 눈치를 살피기도 했다. 자칫 정치 편향적으로 취급될 수도 있는 주제라고 생각했었으니까.
공부를 하다 보니, 대학 강의의 요점은 이러했다. 복지는 생산이 아닌 분배의 문제고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국가의 자원을 어떤 계층의 사람들에게 분배할지 결정하려면 정치적인 논의가 필요할 수 밖에 없다. 그 결정을 위해서는 빈곤 등 인간의 어려움을 개인의 잘못으로 볼지, 사회구조로 인한 결과물로 볼지 그 관점부터 정해야 한다. 전자를 잔여주의, 후자를 제도주의 혹은 구조주의라고 하고 그 관점에 따라 자원을 얼마나 어떻게 분배할지 결정하게 된다.
나름 단순한 이유로 공부를 시작한 나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리고 좀, 좌절스럽기도 했다. 정권의 성격에 따라 복지 방향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는 말 아닌가. 취약 계층에 대한 지원이 정권에 따라 유동성을 갖는 것은 삶이 힘든 이들에게는 너무도 괴로운 일일텐데 말이다.
그런데 복지가 정치인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같은 이익을 가진 이들끼리 뭉쳐서 연대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 또한 정치 행위라고 봤을 때, 복지의 역사는 이러한 정치 행위를 통해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역사 속 많은 여성들이 오랜 시간 빵(경제권)과 장미(시민권)를 요구해왔기에 투표권이 없었던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권리가 주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생긴 것은 이동권 투쟁을 지속한 장애인 단체가 요구한 결과다. 그래서 소외된 계층일수록 같은 상황에 놓인 이들끼리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인 문제와 관련해서도 관점의 변화가 있었다. 방송대 사회복지학과에서는 ‘선배시민’이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노인을 그저 나이든 사람이 아닌, 시민적인 권리와 의무를 가진 이 사회의 ‘선배’라고 칭하고 그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노인이 자신을 선배시민으로 인식하기 위해 노인복지관에서 이 개념에 대한 교육을 받고 노인들끼리 모여 지역사회 문제를 파악하며 지자체에 민원을 제기해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을 한다. 또 노인들은 무조건 봉사활동의 수혜자가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체력과 능력, 마음이 있다면 봉사의 주체로 다른 이들을 돌볼 수도 있다. 절에 다니시는 나의 시어머님이 지난 어버이날에 본인도 연로하심에도 다른 노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봉사활동을 하셨다던데 ‘우리 어머님이야 말로 선배 시민이네’하는 생각이 든다.
막상 복지 공부를 하고 나니 지엽적인 복지 제도에 대한 정보 습득을 넘어 사회 구조와 흐름에 대한 시각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가끔 오프라인 수업 때 학생들을 만나면 ‘전 국민이 이 사회복지학 수업을 들어야 할 것 같다’고들 말한다. 상식의 수준을 넓히는 차원에서도 많은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지 공부의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어려운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분야다 보니 우울감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공부를 할수록 더 많은 사회 문제를 자각하게 되는데 그 해결책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가슴이 답답해지고 좌절감이 드는 걸 수시로 경험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과연 사회복지사로 일할 수 있을지도 가늠이 되질 않는다. 처음부터 자격증이나 이 분야에서의 일에 대한 욕심없이 배움에 대한 욕구로 시작한 공부라 관련 직군으로 진출할 의욕을 갖지 못했다. 게다가 노인들을 직접 돌보는 것은 한 달 기간의 실습마저 두려울 정도로 엄마에 대한 트라우마가 깊다. 아동 돌봄이라고 잘 할 수 있을까? 방송대의 교수들 말로는 현장에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법제와 행정을 공부해서 제도를 개선할 수 있는 복지사가 되는 것도 필요하다고 하던데 그런 능력을 갖출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이 나이에 그리고 내 적성에 복지와 관련되어 어떤 일을 할 수 있고 하고 싶은지 아직 잘 알지 못한다.
어쩌면 나도 졸업을 한 후 ‘국민 자격증’ 하나를 가지게 된 것으로 만족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요양보호사나 심리상담사 등 추가적인 자격증 공부를 하고 서서히 길을 모색할지도. 그것도 아니면 이렇게 글 뒤에 숨어서 계속 문제의식만 외치고 살지도 모르겠다.
아는 게 병이라고, 공부를 해서 새로운 시각이 생긴다는 것은 어쩌면 괴로운 일이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지 못한 채 문제들만 잔뜩 품어버린 느낌. 아직은 간헐적으로 하는 봉사활동만으로 그 감정을 해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