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통해 알게 된 어른되기 숙제
교육에 대한 이런 나의 ‘까탈’은 결국 두 아이를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초등 혁신 학교를 거쳐, 지금의 ‘인가형 대안 중고등학교’에 입학시키는 데까지 이르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다행히, 아이들도 엄마의 권유에 동조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에는 아이에게 선택을 맡겼지만 둘 다 같은 학교를 선택했다.
대안학교지만 인가를 받았기 때문에 일반 공교육과 같은 무상교육이다. 고등학교는 '대안형 특성화고'로 분류된다. 교육과정도 일반 학교와 큰 틀에서는 비슷하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문제 풀이보다는 사고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교육 과정을 조정해서 가르친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은 끊임없이 서로 혹은 선생님과 토론하고 질문한다. 철학, 진로, 환경 교과가 중시되고 이론 위주로는 예체능 수업도 다양하다. 평가는 프로젝트성 수행 평가나 서술형 위주로 이루어진다. 적성과 진로 탐색을 위한 다양한 활동 기회가 있는데 생기부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 좋아하는 것을 경험하고 찾아내기 위해 대부분의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이런 활동에 참여한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사교육 금지다. 모든 학부모들은 사교육 금지에 동의하는 서약서를 쓰고 아이를 입학시킨다. 그래서 학원 수업이 학교 수업보다 중요해지는 주객전도는 없다. 고3 때까지도 이 학교만의 고유한 커리큘럼이 진행되므로 아이들은 학교 생활에 집중해야 한다. 입시 위주 교육은 없다. 졸업한 아이들은 스스로 준비해서 대학교에 진학하기도 하지만 비진학을 택하기도 한다. 그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인생을 살며 미래를 모색한다. 고등 졸업 직후 진로를 확정지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온전한 성인으로 독립하기 위해 몇 년간의 좌충우돌의 시간은 필요하다는 생각에 학생들도 학부모도 동의하는 편이다.
현재 고 2인 첫째 아이는 대학 입학를 염두에 두고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정했기 때문이다. 학년 당 인원수가 적어서 좋은 등급 받기도 어렵고 입시 공부량은 현격히 부족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말하는 ‘대학의 수준’은 낮아질 가능성이 높다. 재수를 하게 될지 어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이가 하고 싶은 학문을 정하고 꿈을 키워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모르겠다. 앞으로 아이가 일반 학교에 다니지 않은 데 대한 불이익을 당하거나 스스로 후회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어쩌면 향후 10년간 대안학교 출신으로서 이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아이들 교육에 다른 선택은 못했을 것 같다. 그럴만큼 나에게 이 나라의 일반 교육은 이상해 보였으니까.
그래서, 왜 이 학교를 선택했냐고 묻는 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저는 현재 대한민국의 일반 교육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이들이 학원 숙제하다가 밤 샜다며 학교 수업 시간에 자거나, 학원 숙제해야 하니 학교 숙제는 내주지 말라고 선생님에게 요구하기도 하죠. 입시에 성공하려고 일부러 고2 쯤에 자퇴하고 학원다니며 시험 준비하는 아이도 늘어나는 걸 보면 공교육에 대한 가치는 무너진 듯 보여요. 사교육은 금지하고 학교 생활의 가치를 중시하는 저희 아이의 학교에 그래서 만족합니다.”
다수의 선택지를 비판하고 내 선택이 옳았다고 말하는 것 때문에 결국 나는 꼰대가 될 수 밖에 없으려나. 중요한 것은 아이가 무언가 성취하길 바라고 이 학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그저, 진짜 교육이 무엇일까 계속 고민을 했고 이 방향이 맞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이제 개인적으로는 청소년기 교육에 관심을 멀리해도 될 때가 점점 다가오지만 그 관심을 내 아이들로 끝내지는 못할 것 같다. 어찌해야 할까? 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교육 혁명>에는 일 중독의 사회, 경쟁을 당연시하는 차별화된 사회부터 바꾸고 탈성장을 지향하며 인간을 중시해야 교육이 바뀔 수 있다고 하던데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너무 가슴 답답하고 요원한 해결책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그동안 꼰대처럼 주장해 온 교육에 대한 생각을 잊지 않기 위해, 삭막한 대한민국의 교육에 작은 물 조리개가 될 수 있을 방법을 찾아 나의 ‘좋은 어른되기 프로젝트’에 포함시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