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때는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요즘은 내신 1등급 아니면 교대 입학도 어렵다며? 근데 그런 인재들을 데려다가 공교육 선생님을 시켜놓고 왜 사교육을 따로 하는 건데? 그렇게들 돈이 많은가? 공교육에 국민의 세금이 얼마나 많이 쓰이는데 왜 개인이 또 돈을 써서 학원을 보내야 하지?”
나는 분명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에 대한 개탄을 한 것이지만 함께 있던 다른 부모들은 사교육에 매달리는 자신을 비난한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내 주장만 강조하며 타인을 가르치려하는 꼰대로 바라보는 눈빛을 그때 느꼈다.
학창시절, 수업태도도 좋고 열심히 공부하던 나는 그러나 한국의 교육 현실에 대해 점층적인 불만을 쌓아갔다. 미국에서는 대학에 쉽게 들어간다던데. 대학교에 들어가는 것보다 졸업하는 게 더 어렵다던데 그게 진짜 공부 아닌가? 교복도 입지 않고 선생님에게 질문도 자유롭게 하며 선생님들도 학생들을 동등하게 대우한다던데. 친구들과 이런 대화를 하고 살면서 주입식 교육으로 점철된 입시 지옥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었다. 학교 다니는 내내 성적에 대한 불안에 떨었고 그 불안 때문에 다른 취미활동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나는 졸업한 후 오로지 나쁘지 않은 대학의 레벨을 얻어내기 위해 온 10대를 다 보낸 기분이었고 그 외에 공부한 것이 내게 남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결혼 후 엄마가 되어 다시 들여다본 교육 현실은 불만이라기보다는 의문투성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왜 그렇게들 학습지를 시켜대는 것인지, 아이에게 필요한 많은 것을 학교에서 다 배우면 안되는건지, 왜 일부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학원에서 다 배웠지?’라며 진도를 빨리 나가는 것인지, 왜 수업 시간에 마음대로 질문도 못하는 것인지, 왜 아이들의 정서와 감성에 꼭 필요한 예체능 수업 시수는 적은 것인지, 왜 시대가 변해도 지식 습득 위주의 입시 교육만 하는 것인지, <스카이 캐슬> 등 입시 현실을 비꼬는 드라마들은 많이 나오건만 왜 세상은 바뀌지 않는지, 왜 학교에서는 사회에 나가서 타인과 함께 더불어 살기 위한 공동체 교육이나 건강한 부모가 되기 위한 임신과 육아에 관한 교육, 지나친 빚을 지지 않게 하는 경제 교육 등을 하지 않는지…. 주변 학부모들에게 쏟아내던 토로는 이런 의문을 풀어놓을 곳이 마땅찮았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사실 이런 의문에 세상이 어떻게 답할지 나 또한 모르지 않았다.
‘당연히 좋은 대학을 가야 하니까, 그렇지. 좋은 대학을 나와야 무시를 당하지 않으니까! 사회에서 고개 들고 살려면 어느 정도 수준의 대학은 나와야 하는 거잖아. 그 현실을 누가 무시할 수 있겠어?’ 하지만 이런 대답이 이상한 한국 교육을 해석하는 데 명쾌한 답이 되지는 못했다.
두 아이를 낳고 보니, 같은 뱃속에서 키워 낳은 자식임에도 성격과 취향, 능력 하나하나까지 어찌나 다르고 개성이 강한지 신기할 노릇이었다. 그걸 보며 생각했다. 아이들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아이들이란, 이 세상 단 하나뿐인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물’이 떠올랐다. 네모 그릇에 담으면 네모가 되고 세모 그릇에 담으면 세모가 되는. 아무 그릇에도 담지 않으면 자유롭게 자신만의 모습으로 흘러갈 그런 물. 그러다보니 이 아이들을 어떤 그릇에 담을지 고민이 많았다. 자신만의 온전한 개성을 가지고 자라려면 그 어떤 그릇에도 담지 않는 것이 맞겠지만 굳이 담아야 한다면, 그 물이 고여서 굳게 만드는 그릇은 택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어릴 때 사교육을 거의 안 시킨 이유였다.
창의력 향상에 효과가 좋다는 그 어떤 사교육이라도 아이들의 자유로운 시선을 가두는 ‘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도 자신만의 느낌과 생각이 있을테니 되도록 자유롭게 놀게 놔두고 대화를 많이 하며 그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잘 감지해서 잘 반응하는 것이 아이가 되도록 오랫동안, 세상의 틀에 갇히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함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 여겼다.
아이 교육에 돈을 많이 쓰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지만 ‘돈을 들여야 아이가 잘 된다’는 명제 자체를 거부하고 싶었다. 교육이란, 누구나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었고 그래서 공교육이 아이들의 학습 수준이나 인성, 사회성을 발달시키기 위해 충분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이 나라는 더 이상해 보였다. 학교의 역할은 최소한으로 축소되고 굳이 학교 밖에서 돈을 들여 사교육을 통해 실력을 쌓아야 하는 것이 ‘정상’으로 인식되며,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이상하게 여겨지는 현실이 매우 모순되고 기형적이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