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통해 알게 된 어른되기 숙제
‘사회에서 제시한 성공의 이상에 부응하지 못할 위험에 처했으며, 그 결과 존엄을 잃고 존중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현재 사회의 사다리에서 너무 낮은 단을 차지하고 있거나 현재보다 낮은 단으로 떨어질 것 같다는 걱정. 이런 걱정은 매우 독성이 강해 생활의 광범위한 영역의 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
‘우리가 사다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의 자아상(自我像)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예외적인 사람들(소크라테스나 예수)은 다르겠지만, 세상이 자신을 존중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하면 스스로도 자신을 용납하지 못한다.’
알랭 드 보통이 저서 <불안>에서 말한 불안을 느끼는 이유다. 한 마디로, ‘사회적 지위에 대한 욕구에서 불안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읽고 오랜 시간 내 마음의 기저에 자리 잡고 있던 불안의 실체와 이유를 깨달았다. 그런데 나는 이런 불안을 가끔 남편을 보면서 느끼곤 한다.
‘정상인’을 이상형이라 내세우며 남편을 선택했지만 나는 배우자 직업의 종류나 연봉 등에 있어서는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을 갖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아, ‘출근할 때 정장을 입지 않는 사람’이 좋다고 말했던 기억은 있다. 결혼 당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출근하던 남편은 그마저도 내 이상형에 부합했다.
당시 통신회사의 협력업체 직원이었던 그의 연봉은 그리 많다고 볼 수 없는 나의 것보다 훨씬 적었다. 단순히 정장을 입지 않는 것에 만족했던 나는 결혼 후 살림을 하면서 서서히 경제적인 현실을 깨달아갔다. 철이 없었다며 후회를 하는 것은 내 선택을 부정하는 것 같아 싫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대신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결국 내가 정직원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었을 때 그 현실은 더 뼈저리게 다가왔다. 결혼 전에는 자신의 커리어에 특별한 생각이 없던 남편도 아이를 낳고 가정 경제를 들여다보며 도약의 필요성을 느낀 듯했다.
좀 더 대우가 좋은 직장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남편은 실직과 재취업을 반복했다. 나 또한 프리랜서로 일했다가 정기자로 일했다가를 번갈아 가며 했지만 두 번의 산후조리 기간 2~3개월을 제외하고는 일을 놓은 적은 없었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직장에 다니던 남편이 다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최종 도약을 위해 IT 관련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겠다는 것이었다. 겉보기에는 순둥해 보여도 한 번 마음을 먹으면 남의 말은 전혀 듣지 않는 남편은 ‘일을 하면서 공부를 병행하지 그러냐’는 내 말은 귓등으로 흘려버리고 내게 퇴사 결심을 통보한 지 단 며칠 후 회사에 사직서를 내버렸다.
나는 돈을 벌면서, 그가 최대한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거의 모든 살림을 도맡아 했다. 그렇다고 내가 묵묵히 뒷바라지만 하는 양처(良妻)는 아니었던 듯싶다. 불확실한 미래에 시간을 투자한다는 불안감에 자주 잔소리를 해댔고 어차피 내 얼굴에 침 뱉기인 것을 알면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남편에 대한 안 좋은 말을 쏟아냈다. 일하면서 아이까지 돌보고 살림도 도맡아 하는 내가 얼마나 불쌍한지 알아달라고 하소연하는 심정이었다. 뭐든 결정을 빨리 내리는 것을 선호하는 내게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은 감옥과도 같았다.
결국 공부한 지 3년 만에 남편은 자격증을 손에 쥐었고 그 후 지금까지 가족에게 나름 안정적인 수입을 가져다주고 있다. 괴로움과 막막함의 3년을 생각하면 남편이 얄미우면서도 그런 도약의 시도 끝에 얻은 지금의 결과에 감사한다.
반면 나는 편집장으로 있던 마지막 잡지사와의 계약을 2019년도에 끝내고 지금까지 휴업상태다. 물론 일하지 않는 시간 동안 기본적으로 두 아이를 돌보고 살림을 해왔고, 한 해에 같이 떠난 엄마와 아버지와의 사별과 관련한 책을 냈으며 마을에서 돌봄 관련 시민 활동에 참여했고 사회복지 공부를 하는 등 바쁘게 지냈지만 그럼에도 내가 직업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직면하는 것이 아직 어색하기만 하다. 남편이 실직했을 때 가장 노릇을 하느라 아등바등할 때는 ‘제발 남편이 벌어오는 돈만으로 살아봤으면 좋겠다’고 바란 적도 있으나 막상 그런 상황이 되니 사회와 접점이 없는 지금의 나는 허공에 둥둥 부유하는 기분이다.
이 감정을 정확히 말하면 불안이다. 일을 그만두기 전까지 나름 치열한 생활을 해왔기에 이제는 일이 없는 시간을 편히 즐길 법도 하건만 이토록 불안해하는 이유를 한동안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뒤늦게 알랭드 보통의 책에서 그 이유를 깨달은 것이다.
커리어에서 점점 더 전문성을 갖추어가는 남편을 바라보며 나의 지위에 대해 상대적인 불안감을 키우고 있는 이 감정을, 나조차도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가장의 직업적 안정에 마땅히 기뻐하고 응원하면서도 상대적인 위축감을 갖는 이 마음이 다른 이들에게 이해받을 수 있을까? 방송에서 나오는 황혼 이혼의 사례에서 보면 평생 남편 뒷바라지만 하던 아내가 중년이 되어 자신의 독립적인 생활과 일을 원하던데, 그에 비유하면 쉬우려나?
돌아보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위 욕구가 매우 컸던 것 같다. 학창 시절엔 공부에 대한 불안감으로 한시도 마음 편하게 놀 수가 없었다. 아무도 성적에 대해 질책하지 않아도 그저 나 혼자 등수가 뒤로 밀리는 것을 힘들어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에도 제대로 된 타이틀을 얻기를 원했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잡지 기자의 길을 선택한 것은 물론 적성에 맞은 것도 있지만 향후 대리, 과장 등의 직함 말고, ‘기자’ 같은 전문성 있(어 보이)는 지위를 얻고자 하던 이유도 있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 별다른 타이틀도, 소속도 없다는 것이 불안하다. ‘지위로 인한 불안은 비통한 마음을 낳기 쉽다’고 말한 알랭드 보통의 명제와 정확히 일치한다.
사회에서의 안정된 지위를 그래프 위의 ‘상승’으로 표시한다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남편과 나의 지위는 정확히 X자를 그리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바뀐 것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지위에 대한 욕심을 내는 것은 스스로 아직은 젊고 기회가 있을 것이라 느끼기 때문이다. 이제 곧 50이니 60이 되기 전에 모종의 지위를 다시 얻어야겠다는 조급한 마음, 그것이 노년에도 내가 불릴 이름이 되리라는 믿음, 그리고 남편을 비교 대상으로 이런 불안을 느낀다는 미안함. 이 감정들은 내가 스스로 만족할만한 사회적 지위를 다시 얻거나, 혹은 훨씬 더 나이를 더 먹어서 마음을 접게 되지 않는 한, 나와 계속 함께 할 감정이다. ‘이 불안을 어떻게 해소할까’하는 문제는, 50을 앞두고 내게 놓인 가장 큰 숙제 중에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