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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상잔상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by 조유리

아이 병원에 데려다주려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올라탔는데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모든 전원이 켜지다 말고를 반복하고 브레이크도 잘 밟히지 않았다. 아이에게는 걸어가라고 한 뒤 남편에게 전화를 하는데 그도 어쩌라고 딱 잘라 말을 못하고 주절주절이다. 실망한 채 나는 알아서 보험사에 전화해 출장 기사를 맞고, 배터리도 교체했다.

집으로 올라와, 정체 모를 분노에 휩싸여 집에 있던 와인을 까서 몇 잔을 마셔버렸다. 고작 한 시간 남짓 당황하고, 일을 치르고 마무리한 건데 난 무엇에 그리도 화가 났던 것일까.


저녁, 편안한 얼굴로 퇴근하는 남편을 보자 내 분노의 이유를 알것 같았다. 지난 주 자동차 점검을 하겠다고 해놓고 하지 않은 것, 내가 전화를 했을때 보험사에 전화를 걸라하든, 배터리 문제 같으니 자기가 어떻게 하겠다는 등의 말을 기대했는데 그런 말을 해주지 않은 것. 집안일과 더불어 차까지 내가 다 신경써야 하나, 하는 생각. 다른 것에 쓰려했던 나의 한 시간이 예정되지 않은 일에 쓰인 것. 생각 외의 지출이 발생한 것.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난 것에 이 나이에도 그렇게나 당황하고 화가 난다는 것이 새삼 놀랍다. 화가 난다고 바로 술이 땡기는 것도. 아닌가? 화는 술의 핑계일 뿐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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