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영화 감상평
영화 <미키 17>을 보았다.
작품 선택의 이유에 개인적인 취향보다는 '봉준호'라는 이름값에 무게를 두었음을 굳이 숨기고 싶지 않은 것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역시나, 내 취향은 아니었던 것으로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가장 애정하는 봉준호의 영화는, 단연코, 초기작 <플란다스의 개>. 하찮은 일상에 시선을 두고 결국은 관객의 뒤통수를 칠 줄 아는 작품을 선호하는 나는 점점 더 스케일이 커지는 그의 작품들을 만날 때마다 마치
속절없이 앞서가는 버스 뒤에서 무용한 손을 휘젓는 노년만큼이나 버거운 추격을 해내는 기분이다.
설국열차가 그랬고 옥자도, 기생충도, 메시지는 충분히 알겠으나 그래서 도대체 이 작품을 내가 좋아한다고 말해야 할지 말지 결론 내리기 전에 세간의 열광에 '그런가 보다'며 수긍하고 잊어버리기를 반복한 기억.
이번 <미키 17>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에야 말로 감독은 '인간은 어디까지 비인간적일 수 있는가'를 질문하는데 이전 작품들에서보다 훨씬 더 서슴없고 집요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전 작품들에서 보인 것보다 더 비인간적인 '휴먼 프린팅'이라는 기술을
이전 작품들에서보다 훨씬 더 당연하고 일상적이며 무기력하게 '수용'하는 주인공들로 인해
(여기서 '수용'이라 함은 단순히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는 것뿐 아니라
자신들을 비인간적으로 대우하는 독재자가 아닌
희생량들끼리 서로를 공격할 정도로 누가 적인지 망각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면)
관객들마저 이를 당연시 여기게 되는 '비인간적인' 상황에 빠져든다.
물론 영화 후반부에 '각성'하는 인물들로 인해 인간성은 되찾아야 하는 것임을, 우린 인간으로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임을, 그게 당연한 것임을 상기하게 되지만 러닝타임 내내 놀라웠던 것은 영화의 내용보다도 영화 속 비인간적인 설정을 더 현실적으로 느끼고 있었던 나 자신이었다.
그랬구나, 우린 이런 게 당연하게 느껴지는, 그런 세상에서 살고 있었구나. 씁쓸하다.
개인적으로 판단한 이 영화의 최대 매력은 주연 배우인 로버트 패틴슨의 압도적인 연기.
가장 아쉬운 점은 여러 설정과 주제의식 등이 <설국열차> 와 너무도 닮았다는 점.
비인간적인 '휴먼 프린팅'을 소재로 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셀프 프린팅'을 하고 만 봉준호를 만나게 되는 안타까움이랄까? 봉준호라는 이름값과 거대 자본의 투입으로 인한 기대감이 이미 너무 높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호평과 혹평이 공존하는 것은 어쩌면 이 영화의 숙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