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다음카페 기획자

요즘 다음카페 누가 써? 01

by 앎의 삶

올 7월이면 카카오에 입사한 지 만 7년이 된다. 즉 다음카페 서비스에서 기획자로 일하게 된 것도 벌써 7년이나 되었다는 뜻이다. 돌이켜보면 7개월 같은 7년이기도 했고, 70년 같은 7년이기도 했다. 매년 새해 다짐을 할 때 서비스 기획자로서 내가 일하고 있는 서비스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고 신년 계획을 세웠는데 벌써 7년을 못 지켰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올해는 정말 뭐라도 남겨 봐야지. 럭키 세븐의 기운을 담아 ^^7




어쩌면 다음카페에서 일하게 될 운명이었을까. 일단 나의 다음카페 서비스기획자 입성기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입사 1년 전, 나는 카카오 채용 최종 면접에서 떨어졌었다. 그땐 회사명이 다음카카오라는 이름이었고, 나는 다음 포털사이트 메인 기획자라는 공고에 지원했었다. 1차 실무진 면접은 몹시 긴장했지만 그럭저럭 대답을 해냈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면접관 중 한 분이 나에게 다음 서비스 중에서 어떤 서비스를 잘 사용하고 있냐고 질문했고, 나는 다음카페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좀 더 자세히 얘기해 달라고 해서 진땀을 흘리며 답을 했었는데 요행히 그분의 마음에 들었는지 다정한 눈웃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1차 분위기가 좋았던 탓에 나는 오늘 면접 찢었다며 자만을 했었고 2차 최종 면접은 진짜 한마디로 말아먹고 대차게 떨어졌다.


당시 탈락 메일에는 향후 1년간 재지원이 불가능하다는 문장이 적혀있었고, 그후 1년동안 머리를 감을 때마다 자책하며 벽에 이마를 박았다. (머리 감을 때 오만 잡생각이 다 하는 n) 그러다 N사 웹툰 서비스기획자로도 최종 면접까지 올라갔었는데 탈락했다. 왜 나는 자꾸 최종에서 떨어지는 걸까, 매일매일 자책했다. 최종 임원진 면접은 보통 인성 면접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높으신 분들께 내 드러운 성격이 걸렸나보다.


아무튼 그렇게 1년쯤 지났을까, 어느 날 다음카페 서비스 기획자를 뽑는 공고가 올라왔다. 채용사이트를 들락거린 지 몇년만에 보게 된 공고라 내가 헛것을 보는 줄 알았다. 당장이라도 지원서를 넣고 싶었지만 솔직히 객관적으로 붙을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내가 서비스기획자로 경력이 꽤 있긴 했지만 포털이나 커뮤니티 도메인이 아니었고, 앱이 아니라 웹 중심의 프로젝트들이라 그다지 경쟁력있는 포트폴리오도 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근거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초등학교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써온 다음카페 골수 유저라는 자부심, 그거 하나로 무작정 들이밀기로 했다.


1차 실무진 면접은 말그대로 재미있었다. 7년 전이라 흐릿하긴 하지만 면접관 모두가 서비스 하드유저인 내 말에 굉장히 집중하고 있다는 게 느껴져서 답변을 하면 할수록 상기되었던 기억이 난다. 가운데 있던 면접관이 나한테 자꾸 앱기획도 잘할 수 있겠냐고 물어봤고 나는 웹밖에 안해봐서 솔직히 자신없다고 했는데 그게 나를 앱 메인기획자로 점찍은 거였다는 걸 입사 후에 알았다. (저기요) 아무튼 이건 붙었다는 직감이 들었고, 흥분한 나는 면접이 끝나갈 무렵 마지막 질문타임에 지금 생각해도 굉장히 미치광이 같은 질문을 했다. 저 ... 사무실에서 개인의자 써도 되나요? (당시 3개월 전에 허리 디스크가 터져서 사비로 비싼 의자를 구매했었음) 저런 또라이같은 질문을 하고도 내 손에 쥐어진 1차 합격 목걸이.


2차 임원진 면접은 1차보다 어렵고 무서웠다. 외양이 무서운 분들은 아니었는데 그냥 임원진이란 명함이 가져다주는 공포감 경외감 몰라 뭐야 무서워 그런 게 있었다. 역시 오래돼서 면접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억나는 것은 아니나 커뮤니티 서비스를 얼마나 써봤는지 대충 짬바에 대한 질문이 있었다. 내가 자신있게 전 어릴 때부터 엔티카라는 센세이셔널한 커뮤니티 서비스에서 ... 라며 입을 털기 시작하자 왼쪽에 있던 임원분이 풉 하고 웃으셨던 기억이 난다. (알고보니 본인이 만든 서비스라 그러셨다고) 아무튼 머리가 하얗게 되도록 답변을 마치고 내시 걸음으로 총총 뒷걸음질쳐 문을 닫는데 면접관 분들이 노트북을 닫으며 나누는 이야기가 들렸다. 뽑으시면 되겠네요.


크으, 영어이름 뭘로 하지.




그렇게 무사히 합격을 했고 2017년 7월에 판교 테크노밸리 땅을 처음으로 밟아봤다. 수년 전 취업준비생일 때 넥슨 계열사에 합격했었는데 머나먼 판교에 회사가 있다고 해서 입사포기를 했던 바보같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땐 강북에 살아서 판교가 거의 땅끝마을 해남 수준인 줄 알았다.) 당시 내가 맞닥뜨린 판교의 첫 인상은? 와 ... 길에 이상한 육교가 있네.


나는 심각한 길치에 안면맹이라 첫날부터 사무실을 헤맸고 팀원들과의 인사자리에서 얼굴과 이름을 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뭔놈의 회사가 직급도 없고 책상도 많고 생소한 영어이름을 불러야 해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그전 회사는 수직적이었던지라 관료제의 폐혜에 익숙해진 나는 갑작스런 수평문화에 반쯤 얼이 빠져있었다. 왜 사장님을 사장님이라 부르지 못하고 이름을 바로 불러야 하는지 ... 왜 영어이름에 확장자까지 있는 거지 ... 얼레벌레 첫 인사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조직장님이 나를 보며 빙긋 웃으며 말했다.


- 나 기억 안나죠?

- 네? 실무진 면접에서 뵀었는데 ...

- 아니 그 전에

- ... ?

- 나는 기억했는데 ~ 모르는 것 같더라고 ...

- 네에?! 으에?! (경악)


그렇다. 1년 전 최종에서 탈락했던 다음 포털의 1차 면접관 중 한 명이, 눈앞의 내 조직장이었던 것이다. 내 진땀 흘리는 답변에 다정한 눈웃음을 주었던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나를 기억하고 계셨고 다음카페 채용공고를 내며 내가 지원하면 좋겠다고 생각까지 하셨다고 한다. (입을 틀어막는 원숭이 짤방)


만약 내가 당시 다음 포털 메인 기획자가 되었다면 나는 그분과 다시 만나게 되지 못했을 것이고, 지금 생각해도 그건 정말 아찔하다. 이 커다란 회사에서 다른 채용공고로 같은 면접관을 두번 만나게 될 확률이라니, 그리고 그 면접관을 조직장으로 만나게 되다니, 운명처럼 신기한 일이었다. 과거의 내가 최종 면접에서 연거푸 고배를 바셨던 건 결국 다음카페에서 7년이나 몸담게 하려는 신의 거대한 계획이었던 걸까? 아무튼 그렇게 나는 2017년 중순부터 다음카페의 서비스 기획자로서 앱 메인 담당자가 되었다. 앞으로 서비스기획자로서 선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여러가지 다음카페 썰을 풀어 어그로를 끌어보려고 하는데 잘 될지 모르겠다.




* 기획자 개인의 사적인 브런치 공간이므로 서비스에 대한 문의사항은 카카오 고객센터로 남겨주세요.









작가의 이전글커피는 모르지만 카페에서 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