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다니는 건가요? 엄마가 다니는 건가요?
듣고 싶어서 들은 건 아니다.
너무 시끄럽게 크게 카페를 차지하고 있어, 인상을 찌푸리게 하는 단체 엄마들이 있다.
파트너 사장님들과 미팅을 위해 자리 잡은 카페, 카페 선택이 오늘은 옳지 못했다.
물론 이 상황을 다 알고 들어온 건 아니지만 말이다.
이상하게 저항감이 생긴다.
엄마들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한숨이 나온다.
혀를 차게 된다.
내가 이상한 건가 모르겠다.
4인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에 처음 4명이 앉아 있었다
한 명의 엄마가 더 들어온다.
잠시 후 또 한 명이 들어온다.
다른 테이블에 있는 의자를 붙여서 ㄷ 자로 만들어 카페를 점령한 엄마들은
며칠 동안 말 못 해서 힘들었던 사람들처럼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라
서로 자기 말을 하느라 시끄럽다. 그건 대화가 아니라 소음이었다.
어떤 애가 수학학원을 다녔는데 그 엄마가 그 학원 다니는 걸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좋은 학원은 혼자만 다니고 싶어서 그렇단다.
헐..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그 자리에 있지 않은 다른 엄마 이야기를 꺼내서 하면서 하하호호 시끄럽게 웃어댄다.
교양이라는 건 찾아보기 힘든 무리의 엄마들이었다.
잠시 뒤에 두 엄마 일어선다.
“언니 여기 있을 거지? 나 **이 학원에 넣고 다시 올게.”
언니도 갔다 올 거지?
그렇게 두 엄마가 나간다.
아이 학원에 넣어주고 다시 온단다.
두 엄마가 나가고 나서 나머지 네 명의 엄마 중 가장 나이 많은 언니처럼 보이는 엄마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방금 같이 웃고 떠들더니, 일어나서 나간 엄마 중 한 사람의 험담이 시작되었다.
만나서 점심을 먹고 차마 싫어 모여 앉았다가
아이 학교 마칠 때쯤 서둘러 학교 앞에 가서 아이들 데리고 학원에 보내고
다시 그 자리로 모이겠다는 엄마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모든 엄마가 같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엄마들이 너무 안타까웠다.
나는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워킹맘이었다.
어쩌다 녹색어머니회를 나가면 끝나고 차 마시며 엄마들이 나누는 대화에 끼어있는 게 힘들었다.
대화의 주제가 늘 어떤 학원이 좋아? 어떤 과목을 어떻게 공부해야 해.
중학교 어디 보낼 거야? 고등학교 어디 보낼 거야?
그 틈에 끼는 것이 그냥 너무 힘들어서 큰애 초등학교 이후로 녹색어머니를 나가더라도
마치고 차 마시는 자리는 바쁘다고 하고 참여하지 않았었다.
학교도 학원도 아이가 다니는 것인데
내가 보기엔 엄마들이 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의 일과가 자신의 일과인 엄마
자신의 발전을 위한 시간보다 아이를 공부 잘하는 아이로 만들기 위해 시간을 몽땅 사용하고 있다.
나는 그런 희생이 불러올 나중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을 나중에 줄줄이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아이의 선택이 아니라 엄마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알면 좋겠다.
아이를 키우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독립이었다.
독립적 사고, 독립적인 행동, 스스로 사고하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아이들로 키우는 것이
엄마와 아이 모두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어린데 어떻게 그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학교를 다닐 정도의 나이가 되면 아이는 얼마든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할 수 있다.
아주 어릴 적부터 그런 훈련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저 다 해주는 것 만이 사랑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학원은 아이가 다니는 거지.
엄마가 다니는 게 아니다.
그 시간에 엄마도 공부를 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