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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언니 Jan 25. 2022

엄마 돈 주는 게 재밌어

아르바이트하러 간 아들

" 엄마! 나 겨울방학에 아르바이트 다니게 허락해줄 수 있어? "


3월이면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아들이 방학 시작하면서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했다. 안 했으면 좋겠다. 솔직한 엄마의 마음으로는 방학 동안 2학년 대비 공부 좀 했으면 좋겠고, 책을 보며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위험할 수도 있고 다치면 안 되고, 그런 마음이  먼저 들어서 반대를 했다. 며칠이 지나 또 말한다. 안된다고 했다.


며칠이 지나 또 말한다.

"엄마 친구들이 다녀왔는데 위험하지 않고 괜찮데, 나 잘할 수 있어. 보내주면 안 돼? 걱정 좀 하지 말고 보내줘. 집에 있으면서 친구들이랑 컴퓨터 게임하는데 시간 보내는 것보다 낫잖아? "


하긴 집에 있다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녀석은 아니고,  조금씩 아들 설득에 흔들린다.

먼저 보낸 아이 친구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어떻게 다니는지, 그쪽 사장님은 어떤 분인지, 아이들이 할만한 일인지, 기타 등등 궁금한 점들을 물어보고, 고민을 나눴다.


"언니 나도 처음엔 좀 멀기도 하고 걱정했는데, 사회경험이기도 하고 꾸준히 가면서 배우는 것도 있는 것 같고 한번 보내봐요. 안 그래도 우리 애가 같이 가고 싶다고 하던데.."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곳이 이천 물류센터 쪽이라고 했다. 천안에서 가려면 한 시간 넘게 가야 하는 거리고, 전화를 끊고도 고민하는 나에게 아들은 말한다.


"엄마 내가 돈 벌어서 엄마 줄게, 해보고 싶어. 걱정 안 시킬게 허락해줘."

'아니... 어른되면 벌라고 안 해도 벌어야 할 거고, 군대 다녀와서 벌어도 되고.... '나는 혼자서 중얼거린다.

엄마가 주는 용돈이 적어서 그런 건가 물어봐도 아니라고 한다. 결국 허락했다.


아침 6시에 집에서 나간다. 천안아산역에서 전철 타고 오산역까지 가면 거기서 사장님이 데리고 출근한다고 했다. 저녁 6시 혹은 잔업이 있는 날은 8시  마치고 집에 오면 10시가 넘는다.

다시 잠자고 6시에 나간다.

하루 일당 9만 원 혹은 10만 원이라고 한다. 첫날 일하고 와서 재미있다고 전혀 힘들지 않다고 한다.

이틀째 되는 날, 마치고 돌아오기 전에 가족 톡방에 엄마 아빠 내일 일정을 묻는다. 그리곤 집에 돌아온 아들이 나에게 봉투를 건넨다.



"엄마! 처음으로 내가 번 돈 9만 원인데 교통비 빼고 8만 원, 내일 아빠랑 맛있는 거 먹어! 꼭"


18살이 되어 아르바이트를 한 첫 일당을 엄마에게 건네며 뿌듯해하는 미소를 보며 이 녀석 진심 엄마 주고 싶었던 거네. 느껴졌다. 그 뿌듯함을 느껴보고 싶었던 것일까. 큰아들 역할 제대로 하고 있는 이 녀석이 가끔 안쓰럽기도 했는데, 너무 든든하게 잘 자랐구나. 진하게 감동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첫 주말이 왔다. 아르바이트는 평일만 간다. 주말 저녁 아들이 번 돈으로 치킨을 시켜서 같이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같이 가던 친구 중 두 명은 그만둔다고 했단다. 힘들다고. 그럼에도 우리 아들은 계속해본다고 한다.


 처음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했을 때도 하던 친구가 하루하고 안 가서 빈자리에 자기가 가는 거라고 했었다. 그때 나는 말했었다. 너무 힘들면 그만둬도 되지만 엄마는 책임감 없이 조금 힘들다고 그만 할 거면 시작하지 않는 게 좋을것 같다고  말했었다.


냉동식품  포장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박스테이프 붙이고 송장 붙이는 일, 45분 일하고 15분 쉬면서 계속 서서 하는 일이라고 했다. 환경이 그러다 보니 발이 좀 시린데, 그래서 양말 두 개 신고 갔단다. 그동안 말없이 스스로 방법을 찾았던 것이다.


다녀오면 붙잡고 서서  힘들지 않냐 물어보면 안 힘들고 재밌다고 했던 녀석이 주말 식구들 모여 앉아 이야기하는데 발이 시리다고 하니., 그만 하라고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아들의 결정을 믿어주기로 했다. 명절 연휴에 할아버지 할머니 용돈도 챙겨 드린다고 한다. 방학 동안 다녀서 100만 원 버는 게 목표라고 한다.


스스로 일어나 6시에 나갔다. 어쩌다 내가 늦게 일어나는 날, 방에 가보면 이불 정리해두고 나간 흔적만 있다.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던 18살 아들이 듬직하게 느껴진다. 기특하다. 무슨 일이든 잘 해낼 것 같은 믿음을 준다.


" 엄마 공부보다 돈 벌어서 엄마 주는 게 더 재밌어."

근래 들었던 말 중 가장 달콤한 말이었다.


공부 잘하는 것으로만 세상을 잘 살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어른이 되면서 알았지만 , 그래도 공부도 해야지라고 말하는 아직은 그런 엄마이다. 하지만 아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살아갈 수 있게 믿고 지지해주자는 마음을 갖기 위해 나름 매일 마음수련하는 엄마이다.


사소하고 작은 사건 하나하나들로 엄마 마음을 가장 시리게 했던 둘째, 이 아들을 키우면서 그 순간순간마다 이놈이 커서 나한테 제일 잘할 거야.라고 내뱉으며 참아왔던 시간들에 대해 제대로 보상받아 가고 있는 것 같다. 아직 갈길은 멀지만 앞으로도 쭉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며 아들을 믿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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