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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N잡러 Feb 17. 2021

[카페일기] 레트로의 정석 혹은 투머치

레트로의 이끌림, 레트로는 추억을 싣고


레트로를 좋아한다. 어느 날 타자기를 갖고 싶은 마음에 번개장터에서 검색을 시작했고, 내 취향에 딱 맞는 타자기들이 어느 카페에 몇 대 있음을 발견했다. 타자기 여러 대를 모으는 사람이라니, 이 카페의 분위기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결국 타자기는 좀 더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구입했지만, 이곳은 나에게 '레트로'로 기억됐다.



얼마 전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름은 간판없는커피집이지만 이미 그 주변에서는 간판이 없어도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카페로 이름나있는 것 같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레트로가 주는 그 특유의 케케묵은 냄새와 함께 따뜻함이 훅, 코를 찔렀다. 가게 전체는 각양각색의 소품으로 채워져있었다. 하나하나 보려면 시간이 꽤 오래걸릴듯 하여 메뉴부터 주문한다. '사약커피 주세요'



번개장터에서 보고 침을 흘렸던 타자기들부터 구경한다. 이제 나도 타자기 하나 갖고 있지만, 이 타자기란 것이 하나 있다고 만족이 되는 그런 게 아니다. 지금 갖고 있는 건 한글 타자기인데, 영어타자기도 조만간 구입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땐 이곳 사장님에게 구입할지도.



옛날영화에서만 봤던 '뻥이요' 기계도 한편에 자리한다. 그 앞에는 직접 볶은듯한 원두가 있는 것으로 봐선, 왠지 뻥이요 기계로 로스팅을 하는 것 같다. 사약커피와 뻥이요 기계로 하는 로스팅이라. 꽤 잘 어울린다.


도대체 이런 건 어디서 구한 건가 싶은 물건부터, 아니 이건 언제부터 갖고 있던 걸까 싶은 물건까지. 이곳 사장님은 초등학생부터 카페 사장님을 꿈꾸며 동아전과 가방을 버리지 않고 모아둔 걸까. 아니면 청소라면 기겁을 하며 그저 창고에 쑤셔 박아놓을 뿐이었는데 어느 날 개과천선해서 창고 정리를 하며 카페에 필요한 아이템을 몇 십 년 전의 것부터 꺼내어온 걸까. 정답은 모르지만 이 모든 것들이 이 카페와 참 잘 어울린다는 거다. 간판 없는 볼품없는 외관까지.


이제 커피맛을 논하자면, 이곳의 커피맛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일단 나는 풍부한 꽃향기와 새콤하면서도 끝맛에는 달고나를 한입 살짝 깨물은 듯한 단맛이 섞인 커피를 좋아한다. 뜨거운 커피의 경우 식었을 때도 맛이 유지되어야 하며, 차가운 커피는 얼음이 다 녹아서 밍밍해져도 꽃향은 오히려 더 풍부하게 나는 그런 커피를 으뜸으로 치니까. 그래, 까다롭다.


이곳의 커피는 쌉싸름한 맛이 강하고 카카오 80% 초콜릿처럼 쓴맛과 단맛을 함께 머금은 그런 맛이 난다. 나처럼 산미를 좋아한다면 휙 스쳐가는 산미를 느낄 수도 있겠다. 비중은 다르지만 쓴맛, 단맛, 신맛이 조화를 이루면서, 여느 카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맛이 아니기에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상당히 만족한 커피였다. 아참,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진짜 사약처럼 사발에 가득 담겨 나오는 비주얼도 일품이다. 숟가락으로 떠먹는 커피라니.



이 근방을 지나칠 일이 있다면 시간을 내어 또 올 마음이 있다. 그땐 좀 더 시간 여유를 갖고 느긋하게 즐겨보려고 한다. 레트로를 좋아한다면, 조금 다른 맛의 커피를 맛보고 싶다면 이곳을 추천한다. 한 번쯤 가볼 만한 카페가 아니라 여러 번 가볼 만한 카페다.



김천의 어느 카페, 간판 없는 커피집

인테리어: 레트로의 정석 혹은 투머치. ★★★★☆

커피맛: 색다른 맛이지만 호불호가 갈리지 않을 것 같은 특별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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