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거리는 그대로, 살림살이만 하나 더 추가.
로봇청소기에 이어 이번엔 식기세척기다.
우리 부부가 전자제품을 사는 이유는 단 하나, 싸우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니 이 글은 리뷰가 아니다.
야근보다 지겨운 설거지 지옥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록이다.
우리 집 살림 분담은 단순했다.
배우자가 대부분의 살림을 담당하고, 나는 설거지를 맡았다.
표면상으론 공평하다 못해, 오히려 나에게 조금 더 유리하다 믿었다.
그러나 세상살이 어디 그리 쉬운가?
회사에서 일이 몰려 며칠을 내리 야근랠리가 이어진 때였다.
편도 90분 출퇴근이니 회사에서 저녁 먹고 업무 처리 조금 하다 집에 도착하면 이미 자정이다.
업무 처리도 채 마무리 짓지 못했구만,
싱크대 위에도 쌓여있는 그릇과 냄비들이 내 처리를 대기하고 있다.
피곤에 절어 '내일 하지 뭐' 할 수도 없는 게.
당장 내일 우리 아이 어린이집에 보내야 할 숟가락, 젓가락, 텀블러가 대기 중이라 미룰 수도 없다.
“야근으로 늦은 날엔 아이 것만이라도 해 줄 수 없어?”
“겨우 설거지 하나 하면서 그걸 못 해?”
서로 틀린 말이 아니다.
아니지. 오히려 둘 다 정답이다.
그래서 더 얄밉다. 더 기분이 상한다.
원래 맞는 말일수록 더 얄미운가?
그래서 회사에서 선배가 나에게 밉상이라 하신 건가?
앞으로 회사에서 맞는 말이라도 조심해야겠다. 이렇게 인생의 지혜가 하나 더 추가된다.
며칠간 집안 공기는 에어컨이 따로 필요 없었고,
그러든가 말든가 아이는 해맑았다.
그래서 우린 이 싸움의 종결을 '현명한 소비'에서 찾았다.
식기세척기.
정말 이거야 말로 현명한 소비다. 다툼의 소재를 없앨 수 있다면야 가성비를 운운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기대기보단, 기계에 기대 보기로 했다.
“이제 얘가 알아서 해줄 거야.”
“앞으로는 설거지 때문에 싸울 일 없겠네.”
과감하게 결제 버튼을 눌렀고, 공동 통장에서 생활비가 왕창 빠져나갈 예정이다.
평소처럼 반반 입금했고, 이번 달은 식기세척기 가격의 절반씩 더 넣어야 한다.
이 달 가계부 어플에는 지난달과 달리 ‘식비’보다 ‘쇼핑’ 비중이 더 도드라지겠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일부터의 평화를 기대해 본다.
식기세척기 속에서 그릇의 기름때와 함께 부부싸움 소재도 씻겨 내려가길.
몇 달 뒤,
마찬가지로 야근을 마치고 늦은 밤 귀가한 어느 날.
다시 또 싱크볼엔 한국인은 삼시 세 끼라는 말을 증명하듯 그릇들이 여전히 수북하다.
순간 또 화가 치밀었지만, 이번엔 배우자에게 내뱉지 않았다.
속으로만 '이 정도는 식기세척기에 넣어줄 수 있지 않나…' 생각하며 화를 애써 삭혔다.
헛돈 썼다.
이거 뭐. 어차피 나 혼자 이렇게 참고 넘어갈 수 있는데 식기세척기 왜 산 거지.
싸움거리는 그대로인데, 살림살이만 하나 더 늘어났고 애꿎은 집만 더 좁아진 꼴이네.... 라고 생각하던 찰나!
.....!!
불현듯 본가가 생각난다.
!!!!!
왜 부모님 댁엔 웬만한 가전제품이 다 있었는지. 이제야 알았다.
다음번 집에 가면, '엄마 이런 건 왜 샀어?' 대신
'이거 어디 모델이에요?'라고 여쭤봐야지.
다음 편 예고 :
"연차에도 소환당한 직장인 = 아이에겐 VIP"
- 회사에서도, 브런치에서도 VIP가 아니지만. 아이와 함께라면 VIP 대우를 받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