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과 회사를 오가며 눈치 보는 고단한 직장인 부모의 하루
잠 잘 자는 아이? 우리 집엔 없었다.
자고로 아이가 잠을 잘 자면 효자라 했고.
그런 면에서 난 불효자, 아이는 날 닮았다.
신생아 때 산후도우미 여사님께서 “분 단위로 다 모아도 잠자는 시간이 하루 1시간 안 되는 아기는 처음”이라 하실 정도였다.
그 기질은 어린이집에서도 동일했다.
어린이집 등원 초기, 하원길에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낮잠 시간에 조금 힘들어했어요. 다른 아이들도 자는데….”
말투는 친절한데 내용이 영 불편하다.
분명 눈치 주려는 건 의도는 아님을 알면서도 괜히 움찔해서는.
“죄송해요. 원래 잠이 없어요.”
'잠' 얘기만 나오면, 냅다 사과가 자동이다.
그 순간엔, 괜히 내 아이가 집단의 질서를 어지럽힌 문제아처럼 느껴진게 사실이다.
낮잠 시간에 혼자 뒤척이느라 아이도 힘들었을 텐데.
그런 아이를 두고 선생님께 송구해하는 나와, 퇴근 시간에 혼자 가방을 싸는 내가 겹쳤다.
잘못이 아닌데, 괜히 내가 문제인 것 같았던 순간들.
예를 들면베프의 재수 결정으로 인해, 나의 대학 합격 기쁨을 애써 눌러야 했던 일이나.
옆팀 선배의 팀장 승진 누락으로 인해 나의 승진 소식을 축하해 달라 할 수 없던 일 따위.
다음날.
선생님께서 같은 질문을 다시 묻는다.
“원래 이렇게 잠이 없나요?? 오늘은 전혀 안 잤어요.”
“진짜 너무 죄송해요. 저희가 뭘 하면 도움이 될까요? ㅠㅠ”
누르면 사과가 나오는 사과머신 마냥 사과가 자동판매다.
그렇게 창과 방패의 싸움이 며칠간 반복됐고.
내 마음도 '그만 좀 묻지?' 라는 생각으로 점점 뾰족해지고 있었다.
이런 고민으로 며칠을 날 서 있던 중에, 인근에 또래 아이를 키우는 지인이 말했다.
“우리 애도 낮잠을 잘 안 잤는데, 안 자면 안 자는 대로 그냥 두는 어린이집이 있더라.”
순간 귀가 솔깃했다. 문젠 거리다. 차로 10분.
날 좋은 때야 유모차 태운다지만 한여름, 한겨울엔 어쩌고 비 오고 눈 올 땐 어쩌지?
우린 운전이라도 하지만 시터할머니 등하교 날엔 또 어째?
같은 단지 지하주차장으로 통하는 지금 어린이집을 두고 이럴 일인가.
'골치 아프다. 일단 맥주나 마시자'고 회의를 호다닥 마친 다음날.
아이를 하원시킨 배우자에게 연락이 왔다.
안 되겠다. 그냥 옮기자.
도파민이 터진다. 우리 부부가 모처럼 의견이 일치다니.
아이를 낳고 드물게 한 팀이 되어본다.
사실 난 애진작에 어린이집 이동으로 마음을 굳힌 터였다.
새 어린이집에서도 아이는 여전히 낮잠을 잘 자지 못한다.
그래도 선생님께서는_
“괜찮아요. 안 자면 안 자는 대로, 얌전히 혼자 잘 놀아요.”
그 한마디에 우리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하원길에 신명 나는 투스텝을 밟아 보았다.
돌이켜보면, 이전 선생님이 우리를 압박한 게 아니리라.
스스로 쫄이 되어, 자진납세한 꼴이었겠지.
낮잠을 안 자면 안 자는 대로, 야근을 못 하면 못 하는 대로.
그게 곧 나와 우리 가족의 리듬일 뿐이다.
하여 앞으로 우리 가족, 스스로 눈치 보고 살진 말자.
아이와 부모가 마음 편한 선택, 그리고 직장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버티는 선택.
결국 정답은 없다.
마음 편한 곳이 정답일지니.
다음 편 예고 :
“야근보다 지겨운 설거지 지옥, 식기세척기 구매 각.”
— 싸움거리는 그대로, 살림살이만 하나 더 늘어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