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두께는 얇았지만, 내 피로는 두꺼웠다.
새벽 네 시.
팀즈 알림이 울렸다.
누군가의 불안이 나의 밤을 갉아먹는다.
아이가 깰까 봐 진동으로 해두었건만,
그 짧은 진동에도 아이는 뒤척이더니 연신 기침까지 했다.
“오늘 출근하면 바로 메일 확인해서 오전 회의 전까지 처리해 주세요.”
아이와 메일 사이에서
나는 잠시, 어느 쪽을 먼저 봐야 할지 고민했다.
'다 됐고, 그냥 좀 자고 싶다.'
새벽 4시에 받은 메일 내용은 이랬다.
“보고서 폰트가 다른데 톤 앤 매너 맞춰진 건가요?”
“표 선 두께 일치시켜 주세요.”
“Appendix 페이지마다 상단 제목에 [Appendix]라고 넣어주세요.”
“전반적으로 톤 앤 매너가 맞지 않고 자료 수준이 떨어집니다. 내일 회의 전까지 다시 점검합시다.”
폰트, 선 두께, 어펜딕스.
이따 8시 출근하자마자 작업하면 10분도 채 걸리지 않을 일이다.
당초 어제 발생한 긴급 보고였고,
상무님 본인이 “초안이라도 먼저 달라” 셔서 미완성 버전을 드린 것뿐이다.
내용상 큰 오류 없음을 확인하면, ‘그렇잖아도’ 오전 출근해서 바로 마무리할 작정이었다.
새벽 4시에 받은 메일이 고작 ‘폰트 두께’ 라니,
폰트 두께는 얇아지고, 조직생활 피로는 두꺼워졌다.
아무리 불안해도 그렇지. 이걸, 왜 굳이 새벽 4시에?
불안은 사람의 이성과 상식을 어디까지 잡아먹는 것인가.
그때부터 나에게 그는 안쓰러운, 아니 — 조금 불쌍한 존재가 되었다.
우리 팀 채팅방은 24시간 열려 있다.
모두가 집에 있을 출근 전 이른 아침, 알림음이 들리면
누군가는 “지금 답해야 하나?”를 고민하고, 누군가는 “읽음 표시라도 남겨야 하나?”를 망설이겠지.
리더의 불안은 이렇게 팀 전체로 번진다.
불안한 마음 하나가 조직 전체를 흔든다.
A상무는 ‘선제적 대응’이라며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챙기기로 유명하다.
그날도 그랬다.
우리가 예약한 항공사에서 ‘파업 예고’ 소식이 떴다.
“예고일 뿐, 실제 파업은 미정입니다.”
여행사는 '좀 지켜보자'고 했지만,
A상무는 이미 상위자에게 ‘선제적 대응 보고’를 마친 뒤였다.
파업 영향이 우려되어,
선제적으로 다른 항공편으로 변경했습니다.
..... 진짜 극성이 풍년이다.
변경한 항공기는 더 작은 기종이라 비즈니스석은 이미 전석 매진이었고,
그 후로는 '그 항공기의 비즈니스석을 확보하라!!!!'는 새로운 명령이 하달됐다.
팀원들과 외주업체는 시도 때도 없는 취소 티켓 확인으로 시달려야 했다.
그 '유난'의 말로는,
결국 상위자께서 “장거리 이코노미, 오랜만이었다”며 그 일을 A상무와 대면하는 술자리마다 안주로 삼았다는 후문이 돈다.
고거 참 쌤통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인데,
왜 저렇게 지팔지꼰일까 생각해 보면 답은 명확하다.
그는 불안을 ‘열정’으로 착각하고 있다.
게다가 그는 진심으로 “중요한 일”이라 믿는 눈치지만, 그 뒤엔 언제나 ‘나를 위해 안심하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다.
결국 그 열정은 팀의 사기를 꺾고, 남은 에너지마저 다 빼앗았다.
내가 아는 한, 하나같이 그 때문에 퇴사 탈출을 시도하고 있으므로.
한편 그의 불안이 병이라면
우리 모두 — 아니, 적어도 나는 그 증세를 조금 앓기 시작했다.
스스로 방 정리를 하고 있는 아이에게.
“이건 다 했어?” “그건 왜 거기 놔둬?” 하며 자꾸 중간에 끼어들며 지시를 한다.
“다 끝나고 봐주면 안 돼?”
아이를 믿고 기다리면 될 것을,
‘교육’이라는 포장지로 내 불안을 감추려 했다.
결국 나도, 새벽 4시에 팀즈를 켜는 사람 중 하나가 되지 않으려면 바짝 긴장해야겠다.
기억하자.
불안을 들키면 우스워 보인다.
어쩌면 평정심은, 능력보다 더 큰 리더십일지 모르겠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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