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나가면 더 힘들 거야” — 퇴사면담의 마지막 말

사과 대신 ‘관대함’을 스스로 챙긴 야무진 나의 빌런

by 근노보

퇴사자 면담은 어쩌면 ‘위로’를 가장한 ‘책임전가’의 자리가 아닐까?


지난 글에서 “열정이라 착각했던 불안”에 대해 고백했다.
이번엔 타인의 불안이 어떻게 시스템이 되는지를 이야기하려 한다.


이건 사과 대신 ‘관대함’을 스스로 챙긴, 야무진 나의 빌런 이야기다.



“너 여기 퇴사하지? 나가면 더 힘들다?!”
그 말이 진심이든 협박이든, 퇴사자는 결국 나갔다.
남은 우리는, 그 말이 퇴사자 본인보다도 더 듣기 지겨웠다.


퇴사한 동료 B는 무던한 사람이었다.
잦은 야근도 불평 없이, 제출기한이 당겨져도 묵묵히 처리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그의 얼굴이 달라졌다.
점점 피로가 아닌 체념이 묻어났다.


이유는 하나.

A상무 — ‘선제적 대응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남자.



그는 한... 열다섯 박자쯤? 빨랐다.
더 큰 문제는, 그 선제적 대응이 대다수 쓸데없다는 것.


주말도 팀즈가 울렸다.

“월요일 출근하면, 이 부분부터 확인하세요.”
“혹시 지금 그 부분 볼 수 있나요?”

아마도 '이 부분’이든, '저 부분'이든 '대부분' 긴급하지도 않았으리라.


폰트, 문단, 제목 줄 간격.
마이크로매니징의 정수였다.



한 번은 주말 내내 보고서를 수정한 B가

월요일, 가방을 내려놓기도 전에 A상무에게 불렸다.


“이번에 전사 변경하라는 폰트로 작업했나요?”

....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그는 '완벽함은 디테일에서 나온다'는 말에 스스로를 가뒀다.


더 싫은 건, 표에 대한 공개적인 지적이었다.

“이 표는 잘못됐습니다. 이러면 데이터 의미가 왜곡돼 보입니다.”

늘 그랬듯 구체적 대안 없이, 그저 ‘이건 아니다’는 일방적 주장만 있었다.


훗날 퇴사자로부터 듣게 된 그 지적의 사이다 결말은 —

본래 표에 있던 텍스트와 수치 모두 그대로 둔 채 방향만 90도 틀고 아이콘 색깔 바꿔 재보고 드렸고, 이내 A상무의 메일 회신엔


수고했습니다. 지난 버전보다 많이 개선됐습니다.


"봐봐, 이래서 내가 꼼꼼히 볼 수 밖에 없다니까. 이렇게 수정하니까 훨씬 좋잖아.”


그 순간 B는 확신했겠지.
그의 ‘꼼꼼함’은 통제였고, 그의 ‘피드백’은 자기만족에 불과하다.
그는 일보다 ‘본인이 옳다는 방증’를 찾는 데 더 열심인 사람이었다.


그 뒤로도 A상무의 불안은 폭주로 이어졌다.
예고 없이 업무를 던지고는 “퀵하게 확인해 주세요.”


그의 퀵은 본인의 불안에서 즉시 출발해, 타인의 밤늦게 도착하기 일쑤다.



결국 B는 퇴사를 결심했다.
그는 사직원 퇴사사유에 많은 것들과 함께,

‘상사의 과도한 마이크로매니징으로 인한 스트레스. 업무 효율 저하.’를 기재했다.


몇 주 뒤, B의 퇴사 당일. A상무가 B를 불렀다.
“B과장님. 회의실에서 봅시다.”

우리 팀 전원의 귀가 끝없이 커지며 그들의 멀어지는 발걸음 소리를 끝까지 바짝 쫓았다.


그날의 면담 내용은 B가 퇴사 후 단톡방에 요약해 주었다.


-. “네가 나 때문에 힘들었다는 건 알아. 근데 내가 안 챙기면 사고 나잖아.”

-. “나는 널 위해, 네 커리어를 위해 그랬던 거야.”

-. “근데 너 여기 퇴사하지? 나가면 더 힘들다? 그땐 내가 생각날 거야.”

-. (압권인 대목) "가서 힘들면 버티다 고생하지 말고, 그냥 다시와.”


세상에. 저건 진짜 병이다.

자기한테 상처받아 나간다는 사람을 붙잡고, 힘들면 다시 오라고?!!!

아무도 인정하지 않은 ‘상사로서의 관대함’까지 스스로 야무지게 챙기다니. 대단하다.


며칠 뒤, 나는 우연히 카페에서 A상무를 만났다.
그는 온화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B는 요새 힘들다지? 내가 그래서 붙잡으려 했던 거야. 거봐. 내 말대로 됐잖아.


난 그의 물음에 아직 아무 대답도 하지 않은 게 함정이다만, 그의 표정은 단호했다.

자신만 옳다는 확신으로 완성된 대화였다.


투머치 정보로는, 그는 카페인 섭쥐를 자제한다.

천만다행이다.

카페인이 그의 불안까지 각성시키면, 우리 모두의 매일이 힘들었을 테다.




불안은 통제를 낳고, 통제는 결국 민심을 잃게 했다.

그의 마이크로매니징이 조직을 무너뜨렸고,
나는 그 잔해 속에서 하나를, 아주 천천히 건져 올린다.


누군가의 불안이 얼마나 쉽게 시스템이 되고,
그 시스템이 얼마나 조용히 사람을 무너뜨리는지를.


A상무의 불안이 병이라면, 덕분에 그 병의 예방접종을 맞은 셈이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에게도 ‘너 잘 되라고’라는 말은, 이제 쉽게 꺼내지 않기로.


그리고,

대부분의 침묵이 말보다 덜 잔인하길.


덧붙여,

어쩌면 우리 모두

누군가에게 ‘좋은 의도’를 가장해 상처를 남긴 적이 있지 않을까.


당신의 ‘그때’는 어땠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 글은 쓰다 보니 좀 어두컴컴하네요.

이렇게 어두운 세상에서도 각자의 자리에서 잘 버티는 우리 모두에게 박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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