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나는 장례식도 못 갔어.” 야만의 시대 이야기

그땐 다들 비정상이었는데, 아무도 몰랐다.

by 근노보

세상 모든 직장인은 두 부류로 나뉜다.

병원을 다녀온 사람과, 곧 병원을 다녀올 사람.

그만큼 조직생활이란 게 얼마나 사람을 병들게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때는 한창 바쁜 시즌이라, 모두가 야근 랠리에 동의하던 시기였다.

저녁을 먹고 한 시간쯤 후, 한 직원이 조심스레 빌런에게 다가가 말했다.


“실은 오늘 오후에 제 여자친구 오빠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바쁜 시즌이라 못 간다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이라도 조문을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비보가,
타자 소리만 가득하던 사무실 공기를 멈추게 했다.


그리고 잠시 후 —
빌런의 입에서, 믿기 힘든 말이 나왔다.


야. 나는 예전에 친척분이 돌아가셨는데도 못 갔어.


당시엔 모두 얼마나 비정상이었던지,
조문을 못 가게 하는 빌런에게 누구도 반하지 않았다.


결국 그 직원은 그해 연말 회사를 떠났고, 나중에 들은 소문으로는 상담도 받고 약도 복용했단다.


이 이야기는 내 지인이 직접 겪은 빌런의 일화다.




A상무가 있는 한 우리 팀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다.


알게 모르게 전문의에게 상담과 약물을 처방받은 직원들이 있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고통을 딛고 이직에 성공했다.


그럼에도 단 한 명,

B형님*만큼은 보법이 남달랐다. (*B형님은 여자분이지만, 존경의 마음을 담은 저만의 별칭입니다.)


그녀는 A상무의 끝없는 ‘스몰토크’를 전담했다.
그의 극성맞은 ‘선제 대응’을 한없이 받아주고, 그의 불안을 ‘유머’로 진정시켜 주는 대단한 능력자였다.


겉보기엔 평안-했다
항상 웃고, 유머러스하며,

늘 “괜찮아요”를 입에 달고 다녔다.


하지만 얼마 전 들은 이야기로는 그녀조차도 전문의 상담을 몇 차례 받았다고 했다.
고혈압 진단까지 받으면서도 단 한 번의 티도 안 냈다. (다시 생각해도 대단하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그녀가 달리기 시작했다.

진짜 두 다리로, 씩씩하게 달렸다.


러닝을 시작한 지 6개월쯤 지나자 체중 감량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이후엔 그림, 댄스, 여행까지 —
취미부자로서의 삶을 즐기며 자기 세계를 넓혀갔다.


바쁜 와중에도 ‘꾸준한 이직 시도’를 이어가더니, 지금은 훨씬 좋은 회사로 이직에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무조건 될 것 같던 면접에서 떨어져 속상해한 적도 있었지만, 금세 이렇게 말했다.


어쩌겠어요.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내가 바뀌어야지.

그녀는 그렇게, 진짜 '선제적 대응'을 하고 있었다.


불안을 통제할 수 없을 때,

그녀는 몸을 움직였다.



문득 A상무의 밤이 떠오른다.

폰트 두께와 라인 간격을 지적하던 새벽 네 시.

그 불안은 ‘열정’이 아니라 ‘병’이었다는 걸
다시금 인정하게 된다.


악의로 퍼뜨린 누군가의 불안에,
누군가는 고스란히 감염됐으며,
누군가는 그 불안을 딛고 더 높이 일어섰다.


A상무는 반면교사,
B형님은 타산지석이다.


지금 나는,

타산지석과 반면교사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중이다.


그럼에도 이따금

중심이 흔들릴 때에는,

그마저도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드는 시간이라 믿으며 이겨내 보겠다.


당신은 지금, 어떤 불안을 딛고 서 계시는지요?


(사진 : 타산지석 형님 제공 _ 한강을 뛰던 중 어느 날)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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