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때리지 않았는데, 매일 맞은 표정으로 산다.
옛 말 틀린 것 없다더니, 과연 참말이다.
인사는 만사였다.
이 글은 책임은 미뤄두고, 권리만 챙기던 사람 ‘C’의 이야기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로 인해 내가 조용히 무너진 이야기다.
팀장님, 직원 C, 그리고 나.
당시 내가 근무하던 팀은 단 세 명이었다.
C는 책임감과 경계심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같이 할까?” 물으면
“아니에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얼핏 성실하게 들렸지만, 결과는 달랐다.
기한은 밀리고, 아웃풋은 기대에 못 미쳤다.
팀장님이 챙기실거라 믿고, 나 역시 애써 눈 감았다.
솔직히, 관여하기 싫었다.
그러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C는 보고 메일 참조자에서 나를 빼고, 팀장님에게 단독 직보고를 시작했다.
고작 세 명이 있는 팀에서.
애석하게도 그 결과물은 형편없었고, 수정은 내가 맡았다.
그게 몇 번 쌓이자 C는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고, 나도 그에게 피로감이라는 벽을 세웠다.
서로의 신뢰는 서서히 사라졌다.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어느 날, C가 팀장님께 면담을 요청했다.
“제가 만든 자료가 바뀌어 있더라고요. 아까 회의 때 팀장님께서 지적하신 부분도 어제 야근하면서 수정해 놨는데, 오늘 아침 보니 달라져 있었습니다.” (* 참고 : 우리는 원드라이브로 공동작업을 하는 팀이었음.)
“난 그 자료를 오늘 처음 열어봤고, 작성한 네가 아니라면, 쟤(본인)가 바꿨단 얘기야?”
C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날 이후로, 나는 그를 조용히 ‘손절’했다.
팀장님도 늘 고민이 많으셨단 걸 안다.
사실 팀장님은 다른 직무를 하다 우리 팀으로 발령받은 분이라, 업무가 익숙지 않았다.
하여 인사팀에 고충을 토로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노답이었다.
팀장님이 직접 뽑으셨잖아요?!
때문에 C는 가장 여유 있는 프로젝트 하나만 맡게 됐다.
팀장님은 처음 해 본 실무를 챙겨야 했고, 나는 그보다 더 많은 업무를 해치워야 했다.
하루가 분 단위로 돌아갔고, C에 대해 고민할 여력조차 없었다.
그러던 어느 마감 전날이었다.
C가 말했다.
“OO팀이 자료를 안 줘서 아무것도 못 했어요. 억울해요.”
이내 팀장님은 나에게 '오늘만 야근'을 말했다.
하필 내가 픽업 담당인 날이었으므로, 배우자에게 아이 픽업을 부탁했다.
“오늘만 좀. 미안해.”
배우자 역시. 회사에 '오늘만 좀' 조기퇴근을 송구히 요청하며 꽤 난처했을 것이다.
다음날, 그 프로젝트의 수정 보고가 있었다.
결과물은 또다시 엉망이었다.
팀장님은 다시 한번 나에게 SOS를 보냈다.
마침 그날 아침 출근 준비 중, 배우자는 나에게 단단히 당부해 둔 터였다.
“오늘은 진짜 픽업 못해. 어제도 눈치 보였단 말이야.”
그런데 또 야근이다.
...
나는 고민 끝에 팀장님의 SOS를 꾹꾹 눌러 담아,
그걸 그대로 배우자에게 넘겨주었다.
배우자는 어린이집 1시간, 지인에게 2시간만 부탁한다며 여기저기에 사정해 아이를 맡겼다.
배우자도, 지인도, 어린이집 선생님도
모두가 나 대신 한 조각씩 감당했다.
아니다. 나를 포함해 모두가 C로 인해 고생이었다.
그럼에도 C는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끝까지 숨겨뒀다.
그 순간의 침묵은, ‘민폐를 꾸역꾸역 부정하려는 무례함’ 임을 그는 모르는 듯했다.
대신 C는 말했다.
배고픈데, 저녁 먹고 와서 하면 안 될까요?
팀장님과 나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만 '너 먹고 싶은 거 ㅊㅁ.....'
C는 늘 스스로를 피해자 자리에 두었다.
아무도 공격하지 않았는데, 상처받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필 이번에 바뀐 규정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야근까지 했는데 끝내진 못했어요.
그리고 어제 야근 시간은 조기퇴근 처리하겠습니다."
한결같이 공교로운 사정이 생겨 마무리를 못했고, 그런데도 자기 권리만큼은 또렷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어제 야근했으니 오늘은 일찍 들어갔다.
조기퇴근과 업무 마무리는 늘 평행선이었다.
그럼... 소는 누가 키우란 말이냐.
세상 모두가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믿었고, 그 믿음 안에서 그는 늘 가드를 올리고 있었다.
결국, 그는 회사에서 보기 드문 ‘당일 퇴사’로 우리의 악연을 스스로 끊어내주었다.
그래, 소는 내가 키우겠다.
돌이켜보면, 그도 참 많이 힘들었겠다.
모든 게 자신을 향한 비난처럼 들리고, 세상이 자신을 몰아붙인다고 느꼈다면,
하루하루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내가 좀 더 챙겨줬더라면 조금은 달라졌을까?
...
.......
아니네.
미안하지만, 아마 다른 가해자를 방어 삼아 당일퇴사 결말은 동일했겠다.
세상은 넓고 빌런은 많다.
불안한 사람, 예민한 사람, 피해의식에 빠진 사람.
각자의 상처와 사정이 있겠지만, 그 모든 걸 내가 다 보듬어 줄 순 없다.
결국 각자의 흠결은 각자가 책임져야 한다.
성인이라면 자기감정은 스스로 돌볼 줄 알아야지.
그게 조직 안에서 서로를 지키는 최소한의 예의다.
달리다 넘어져 생긴 게 진짜 상처다.
넘어지면 상처가 아프니까 달리지 조차 않겠단 건, 건강한 성인의 사고가 아니다.
내 아이만큼은 자기감정과 책임을 스스로 질 줄 아는, 건강한 성인으로 키워야겠다는 양육관이 생겼다.
C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진심으로, 느린 걸음이라도 좋으니 쉬지 않고 달리고 있길 바란다.
부디 달리다가 넘어져보길.
그래야 비로소, 남의 발을 밟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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