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임원의 새 차를 긁고 도망간 놈. 누구냐.
'내가 지금 이게 맞나...'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종종(또는 자주? 또는 매일?) 그런 순간을 마주한다.
그때는 그랬다.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말도, 공사 구분이란 개념도
아직 문서로 존재하지 않던 시절.
이 글은, 까라면 까야만 했던 '야만의 시대'를 버틴 모든 직장인에게 보낸다.
임원 P가 새 차, New Car를 뽑았다.
매일 아침, 그는 주차장에 서서 본인 차를 한 바퀴 돌며 감탄하는 모습이 목격되곤 했다.
“역시 차는 흰색이야. 긁히면 바로 보이거든.”
그 말은 나중에 자기 합리화의 부메랑으로 우리를 공격했다.
어느 날 오전,
임원 P는 씩씩거리며 우리 모두를 비상 소집시켰다.
“전원, 지금 지하 주차장으로 오세요.”
앞뒤 맥락 설명도 없이.
화재 대피 비상 훈련날도 아닌데.
엘리베이터 안에서 모두가 수군거렸다.
내려가 보니,
불이 난 건 건물이 아니라 P의 감정 상태였다.
유난히 반짝반짝 광이 나는 흰색 New Car의 운전석 도어에 유색 선명한 스크래치.
차를 모르는 문외한이 봐도 ‘스으윽--’ 긁고 도망간 흔적이었다.
P는 오른쪽 재킷 소매 끝으로 스크래치 부분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거 보이지? 내 차 쪽 페인트가 가해 차량 조수석 문에도 그대로 묻어 있을 거야.”
우리는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다.
“그럼... 보험사 접수라도 할까요??”
“주차장 CCTV는요?”
그때, P가 아주 또렷하게 말했다.
“너희가 찾아내야지.”
?????
“지하 2층부터 5층까지, 주차된 차들 조수석 문을 전부 확인해.
내 차 색이 묻어 있는 차를 찾으면, 그게 가해 차량일 거야.”
그날 우리 업무는
엑셀, PPT, 워드가 아니라 ‘주차장 스크래치 탐정단’ 즈음이었다.
누구 하나 대놓고 “이상하다” 말은 못 했지만
눈빛은 모두 같은 얘기를 하고 있었다.
“이걸 지금, 우리가 왜....”
이 와중에 누군가는 업무를 공정하고 성실하게 배분했다.
성별과 차주여부를 기준으로 고르게 층별 구역을 나눠 전담팀이 꾸려졌다.
누군가는 혼잣말로 말했다.
“혹시 우리 회사 사람이면 어쩌냐”
그걸 또 어떻게 들었는지, P는 단칼에 잘랐다.
“상관없어. 일단 찾고 보자.”
내색은 못했지만 여간 짜증 나는 게 아니었다.
PC 정리나 하면서 좀 느긋하게 하루 때울라 했더니만
어떻게 알고 이 개떡 같은 상황이 터지냐.
그 차가 찾아질 리가 없잖아. 이게 맞아?
대부분은 건성이었다.
멀리서 슬쩍 훑거나.
중간에 화장실 간다고 빠지거나.
찾았습니다.
“어... 이거, 색깔 좀 비슷한데요?”
지하 3층 구석, 기둥 옆에 세워진 어떤 차.
조수석 문 쪽에, P의 차와 거의 같은 색이 비스듬히 묻어 있었다.
그 순간 공기가 이상하게 변했다.
“설마... 진짜라고?”
“와. 이걸 찾았다고?”
운이 없는 건 저 차인가, 우리인가...
P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사진 찍어두고, 번호판도. 보안실에 전달해.”
우리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 이거 우리가 공범이 된 거구나.
2025년 지금이라면 어땠을까.
개인 차량 일에 전 직원을 동원했다?
직무와 무관한 사적인 심부름을 시킨다?
요즘 기준이라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이거, 직장 내 괴롭힘 아닌가요?”
“업무 범위를 벗어난 부당한 지시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달랐다.
당시 우리의 매뉴얼은 이랬다.
“임원이 '지침'을 주시었으면, 욕은 나중에 하고 일단 그냥 해.”
아! 우리팀 인재상도 바꿔야겠다.
MS Office Master 말고, Parking Lot Watcher 또는 Keeper 정도가 좋겠다.
그 일을 겪고 나서
두 가지 깨달음이 있었다.
'저걸 해내는 직원을 두다니. 저분 참 인복이 참 많다.'
'부당한 걸 느꼈으면서 꿍하게 숨기고 시늉만 하는 나란 놈이 참 별로다.'
‘아, 이건 아니다’ 싶은걸 그냥 넘기면, 그게 곧 문화가 되더라.
그때 우리는 아무도
'이건 부당한 지시'라고 말하지 못했다.
그냥 :
-. 웃으며 내려가고
-. 투덜대며 찾는 시늉만 하고
-. 다시 올라와서 뒤에서만 씹었다.
그러는 사이,
‘야만의 시대’에는 ‘원래 다 그런 거야’로 포장되었다.
돌이켜보면,
그 사건은 거창한 갑질 에피소드라기보다
'그냥 이 정도쯤은 시켜도 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만들어낸 작은 야만이었다.
작은 야만이 쌓이면,
누군가에겐 그게 곧 지옥의 매뉴얼이 된다.
그날 이후로 배운 것.
-. 작은 야만은 큰 지옥이 된다.
-. 부당함을 침묵으로 넘기면 그게 곧 문화가 된다.
-.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용기. 그게 당신을 구하리라.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단어가 생겨서 다행이다.
실제로 괴롭힘을 모두 없앨 수야 없겠지만,
적어도 “이건 아니다”라고 경각심을 일깨울 명분이 생겼으니까.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날 지하 3층에서 조수석 문을 들여다보던 우리의 얼굴도
어쩌면 누군가에겐 이렇게 보였겠다.
“그런 시대에, 그런 회사에,
그런 어른들을 '굳이' 맞춰주었던 사람들.”
야만의 시대를 버틴 우리 모두,
일단은 참. 기특하다만.
그런 시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이제 ‘아닌 건 아니다’라고 말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차는 보험으로,
사람은 상식으로.
당신이 겪은 ‘작은 야만’은 무엇이었나요?
‘구독’과 ‘댓글’로 그 시절 야만을 함께 나눠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