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우리가 했는데, 영광은 그들이 훔쳐갔다.

일인자 뒤에 숨어, 일은 아래로 전가하는 사람들 — 얄미움의 심리학

by 근노보

우리가 만든 결과물은 늘 조용하다.

누가 마지막까지 붙잡았는지, 어떤 시간들을 흘려보냈는지는

회의실 문을 여는 순간, 쉽게 지워진다.


그날도 그랬다.

밤을 지새워 만든 자료가

전혀 다른 사람의 목소리로 발표되고 있었다.


성과를 훔치는 사람들, 그들은 조직 어디에나 있다.

사회생활을 해 본 당신은, 만나보았는가?

'보고는 우리가 했으니, 일은 너희가 해라' 종족을.


종족명부터 얄밉기가 그지없다.

저들은 권력자의 뒤에 숨어 자신의 무능을 포장하는 사람들이다.

“이건 일인자 지침입니다.”

“윗선 지침이시니 긴급히 처리해 주세요.”


이 글은 일인자 보좌 부서라는 프레임 뒤에 숨어, 그 권위와 무게가 자신의 것인 양 굴던 K 전무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부서에서
정신줄을 팽팽하게 당겨가며 만든 보고 자료가 있었다.
초안 → 수정 → 수치 변경 → 재수정 → 수치 오류 조정 → 재재수정 → 숨 고르기.
나중엔 'Ctrl+S'를 누를 때마다 좌측 새끼손가락이 저려왔다.


드디어 보고일.

대면 보고는,

우리 없는 자리에서, 일인자 옆에 찰싹 붙어 있는 보좌 부서의 K 전무가 했다.


쩝... 뭐 상관없다.

우리가 만든 자료 가지고

국을 끓여 먹든, 점을 치든

보고가 무사히 마무리되어 정시퇴근만 하면 된다.


마치 클라이언트에게 메일로 자료만 제출하고 사라지는

숨고에서 만난 프리랜서의 심정으로 조용히 결과만 기다렸다.




비서를 통해 보고가 끝났다는 연락과 함께,

K전무 부서에서 보낸 메일도 왔다.


오늘 최고경영진께서 추가로 질문하실 만한 예상 Q&A를 정리해서
금일 퇴근 전까지 전달해 주세요.

잠시 화면을 응시했다.

'내가 뭘 잘못 읽었나?' 싶었다.

...?


보고는 이미 끝났다.
하지만 예상 Q란다.
우린 그 자리에 없었다.
하지만 그 회의에서 나왔을 법한 질문을 정리하란다.


회의록도 없다.
실제 질문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디서 갸우뚱했는지, 어디서 고개를 끄덕였는지도 모르는데?


아—

어쩌면 저들이 바라는 우리의 역할은

회사의 근로자가 아니라
회사에 있는 21세기형 궁예의 환생인 걸까.


“내가 뭘 궁금해할지 넌 이미 알고 있노라!!!”




대면 보고에 참석한 건 그쪽 부서다.

K가 최소한의 정상적 사고가 가능한 사람이었다면

“오늘 요런조런 질문이 나왔습니다. 여기에 대한 A 작성 부탁합니다.”


근데?!!

자료도 우리,

Q도 우리,

A도 우리.

그럼 본인은 그 자리에 왜 있는 건데?

의자 역할인가?

아니지. 의자는 말이라도 못 하지. 의자였으면 Q&A는 요구 못했겠지.


“우리는 영광만 가져가겠다.”

"나는 VIP를 모시는 중차대한 일에 몰두 중이니, 생각은 너희 같은 조무래기들이 하거라."


아마 평가 시즌엔 이렇게 말하겠지.

“이번 업무는 저희 부서가 전사적으로 주도했습니다.”


이쯤 되면 성과가 아니라
허위·과장 광고 심의를 넣어야 한다.





진짜 문제는 그 황당한 요구가
그날로 끝난 비정상적인 해프닝이 아니었다는 거다.


그 이후로
그 어이없는 예상 Q&A는 자료의 부록처럼 매번 따라붙는 관행이 되었다.

기특하게도 제출 기한이 대면보고 사후에서 사전으로 제법 정상적이게 ‘개선’되기도 했다


처음엔 건설적인 고민도 해봤다.

“최고경영진께서 어떤 질문을 하실까?”
“리스크 포인트는 뭘까?”


그러나 세 번 정도의 시행착오 끝에 우리는 주로 아래와 같은 요령을 터득했다.


-. 자료에 이미 쓰여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기되, 서술어를 추가한다.

-. 자료에 이미 있는 표 내용을 서술형으로 바꿔 만든다.

▶ 즉 자료 외 추가 정보를 담지 않아도 문제없다.


더 웃픈 사실도 있다.

실제 Q&A를 최고경영진께서 열어 보시는지,

혹은 그 존재를 아시는지는 우리 중 누구도 알지 못한다.


수없이 많은 Q&A 제출에도 그 내용에 대해 단 한 번의 지적조차 없었다.

하여 우리는 나름의 합리적 의심에 도달했다.


이 Q&A는 최고경영진을 위한 게 아니다.
K가 혹시 질문받았을 때 입이 얼어붙지 않기 위한, 자기만족용 애착 서류다.


불안할 때 애착이불을 꼭 끌어안고 자는 아이처럼,

그는 예상 Q&A라는 애착 이불이 필요한 모양이다.




언젠가 그에게 이렇게 말할 기회가 오면 좋겠다.

“그 회의에 계셨던 분이니까요. 직접 Q를 뽑아서 저에게 주시죠.”


그런 의미에서 반면교사 하자면,

언젠가 내가 ‘지침’을 들고 서는 위치에 서게 되더라도

-.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을 남에게 전가하지 않겠다.
-. 생각을 하청 맡기며 기생하는 리더가 되진 않겠다.

-. 염치와 상식을 되새기겠다.



세상엔 참 다양한 빌런이 있다.
새벽 폰트 빌런, 점심 짜침 빌런, 피해자 코스프레 빌런,
그리고 이제는 관심법 Q&A 빌런.


공통점은 단 하나.


본인은 절대 안 힘들다.
대신 남이 죽어난다.


야만의 시대엔 야근이 미덕이었다면,

지금 시대엔 생각의 하청이 야만이다.


그는 오늘도 어딘가에서
‘예상 Q&A’를 염치가 있는지 없는지 모른 채 당당히 요구하고 있을 거다.


그럴 때
조용히 커서를 올리고 읽음 표시만 남기자.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리자.


“관심법은 궁예 무덤 가서 찾아라."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구독’과 ‘댓글’로 당신의 경험도 알려주세요.